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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맞은 행복

말라사다 도넛



 필요한 살림살이 몇 가지가 똑떨어져 데이트도 할 겸 남편과 함께 나섰다. 운동 삼아 천변을 따라서 가까운 시내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수다쟁이인 나는 가는 길 내내 겨울바람에 바싹 오그라진 나뭇잎이며 길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앉은 꽃의 몽우리까지, 보이는 것마다 예쁘고 귀엽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입술을 꾹 붙이고 걸으면서 자꾸만 바깥으로 삐져나가는 내 손을 자기 겉옷 주머니 속으로 끌어당기며 ‘그러냐’는 의미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예쁘장하게 생긴 작은 단독 주택을 지나쳤는데, 남편이 그 집을 한 번 힐끗 보고는 한마디 했다.

     

 ‘(이렇게 걸으니까) 아 좋다. 여기서 돈만 더 벌면 딱인데’     


 남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양팔로 남편의 팔짱을 꽉 끼며 지금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건 100% 진심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잠들기 전 부동산 어플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그냥 구경만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남편에게 즉시 전송했던 나의 행동을 반성했다.     




 우리 부부는 자주, 우리 셋이 함께라서 행복하다고 이대로가 참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종종 그 말끝에는 ‘돈만 더 있으면 좋겠다’라는 속마음이 아직 잘라내지 못한 새 옷의 상표처럼 매달려있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보다는 남편이 그런 마음이 더 자주 드는 것 같다.     


 가끔은 이 돈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아이를 보는 기쁨, 그런 자식을 통해 다 큰 줄로만 알았던 우리 부부에게도 한 뼘 더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지금의 이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꼭,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그 말에 퍽 동의한다. 하지만 돈 앞에서는 그 마음이라는 것이 자주 흔들리는 것이다.     




 어떤 날은 가계부가 마치 성적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출의 정도가 나의 살림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기분이랄까. 내 생각보다 카드값이 많이 나온 달은 뭐가 잘 못 된 거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없다. 그냥 우리가 많이 쓴 것일 뿐.     




 이날 우리는 빨랫비누, 욕실 세정제, 두루의 스케치북을 샀고, 평소 남편이 버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눈여겨봤다던 짬뽕 맛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근처 시장에서 두루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사서 손목에 걸고 다시 1시간이 넘는 시간을 걸었다. 남편은 자꾸만 흘러내리는 장바구니가 불편했는지 오른쪽 왼쪽 번갈아 맸는데, 그때마다 바뀐 손으로 내 손을 잡아 자기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정말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두루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인 포켓몬스터에서 주인공 지우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먹은 말라사다 도넛. 그 모습을 한참 뚫어지게 보던 두루가  “엄마 나도 말라사다 도넛 꼭 만들어줘”한다. 엄마가 만든 도넛이 최고라며 앉은자리에서 4개를 뚝딱 해치운 두루!

 뿌듯함도 잠시, 이렇게나 맛있는 도넛을 만드는 나란 인간의 재능이 퍽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나가서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 돈 앞에서는 이렇게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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