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그리고 2021년입니다.
저는 어느덧 20대 중반이 되었네요.
7년이라는 시간, 7번의 4월 16일이 지나가는 동안
다들 각자의 시간과 자리에서 조금은 자라고, 조금은 깎이기도 하는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19살에서 26살이 되는 동안 내가 많이 자랐나? 생각해 봅니다. 제 집 옥상에서 발을 구르며 악을 써대던 그때의 저에서 지금의 저까지 그다지 달라진 건 없는 듯합니다. 가끔은 그 자리에 멈춰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멈춰있었다는 말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나는 지금 7년 전의 세상보다 괜찮은 세상에 살고 있다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라는 만큼, 자고 일어나면 변해있는 것 같던 세상도 이제는 더디게 자랍니다. 세상은 패턴화 되고 혁신도 진보도 더 이상 와 닿지 않습니다. 그 탓이 혹시 나에게도 있나 의심하고 확신하고 또 의심하는
생각이 많아지는 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리곤 깨달았습니다. 나는 4월 16일에 제대로 된 추모를 해본 적 없다는 것을.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추모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추모와 기억이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하면 사실 오늘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추모란 특별한 오늘 하루만의 이벤트가 아니니까요.
세월호 참사의 기억과 잔상은 일상 속에 스며 있습니다. 맛있는 카레를 먹다 문득, 날 좋은 거리를 걷다 문득, 딱딱한 의자에 앉으면 문득, 바빴다 게을렀다를 오가는 틈틈이, 내가 잘하고 있나 라는 의심이 들 때마다 필연히 4월의 바다를 떠올립니다.
굳이 추모란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제 치아에 명치에 발뒤꿈치에 그날의 기억과 분노가 아로새겨 있습니다.
7년입니다. 앞으로 10주기, 20주기, 30주기가 올 거고 나는 그때마다 나의 동생, 언니, 오빠, 친구가 되었을지 모를 그들을 지금보단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608개의 눈이 전망했을 세상이 좀 더 괜찮아지는 데에 일조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잡으며
흐린, 4월 16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