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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May 18. 2022

서울에서 1년 더

서울 서울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에게 으레 묻는 질문

“너 지금 어디 있어?”

특히 대학 친구들에게 그런 안부를 묻게 되는데, 내 대학 친구들은 영덕, 대전, 의정부, 천안 전국 각지에 본 뿌리를 두고 서울로 왔기 때문이다. 대학이란 그 점이 신기했다. 내가 아는 동네에 베란다에 빨래 건조대 모양까지 아는 빌라나 아파트에 살던 10대 친구들과 다르게 내겐 외국과도 다름없는 먼 동네에서 온 이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의 동네를 상상하게 된다는 점이 그랬다. 영덕에선 앞바다에 대게가 뛰어다니고, 제주에선 갈치가 공중제비 쇼를 한다던 애들의 말이 아직도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 이제 딱 만으로 2년이 되었다.

친구들도 나한테 묻는다. 서울에서 지내고 있느냐고. 그럼 나는 아직 서울에 있다고 하고. 그럼 친구가 말한다.

“잘 버티고 있네.”

그 말이 참 어이가 없기도 그래서 웃기기도 해서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안부가 빠지면 서운한 우리만의 인사법처럼 되었다.


사실 나는 꼭 서울에서 살아야겠다는 욕망은 없는데, 서울에서만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 교육의 기회, 교통의 편리 같은 것들을 사랑해 마지않는 이들도 종종 만나곤 한다. 그들은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을 사랑하고, 서울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대부분 서울과 어울린다. 그들의 앞마당처럼 서촌을 오가고, 놀이터처럼 홍대와 신촌을 누비고, 친한 언니나 선배를 만나러 가로수길이나 북촌길을 거닐기도 한다.  


그런 라이프 스타일은 존중할 만 하지만 내가 그들과 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서울 말고도 이 세상에 아름다운 곳은 많고, 오히려 서울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너무 많은 물자와 사람들이 과잉되어 있는 곳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에 살면서도 내가 서울시민이라는 소속감이 좀체 느껴지지 않았다. 2년을 지낸 동네도 내 동네 같지 않고 심지어 지내고 있는 방도 내 방 같지 않다 느껴지는 지점들을 일상 곳곳에서 마주했다.


오늘 지내던 방의 계약을 연장했다. 2년에 이어 1년을 더 보내 보기로 한 것이다. 이곳 서울에서. 그게 잘한 선택인지 도통 모르겠어서 심란한 마음이 몰려왔다. 심란하면 으레 그렇듯 그냥 드러누워 버리고 싶은 것을 어떻게든 떠나보내고 싶어 동네 곳곳을 거닐었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골목들을 찾아 들어갔다.


이 동네는 학교가 많고 주거단지가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오늘은 조금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거닐었다. 처음 가본 곳이었다. 길치인 내가 하염없이 걷다 보면 내가 어떻게 이곳에 다다랐는지 모르는 아득하고도 기묘한 상태에 이를 때가 오는데, 아파트 단지에 깊숙이 들어가면서도 그런 기분을 느꼈다. 목을 하늘로 꺾어 보일만큼 높이 솟지도 않고, 통창 유리라거나 겉면에 양각으로 멋진 브랜드 아파트 로고들이 박히지도 않은 그런 옛날 아파트 단지였다. 아파트 단지에 깊이깊이 들어갈수록 귀가 쨍하도록 새소리가 들렸다. 도심에서 이렇게 사방으로 생물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어본 게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도 함께였다.


5월의 초록이 무성하고, 나른한 오후를 보내는 어른들이 단지를 산책하고,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표지판, 교회, 성당, 붉고 횟빛이 도는 벽돌집, 한글로 오롯이 적힌 간판들, 손때가 묻은 자전거가 주차된 좁은 골목길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메고 있는 백팩으로 등에 땀이 차도, 얼굴에 닿는 바람만은 시원하여 오전에 내린 비로 맑아진 공기를 맞으며 2년 만에 처음으로 이 동네를 만끽해 보았던 것 같다.


아주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였다. 여전히 이 아파트는 얼마일까.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 집을 소유자산으로 획득했을까. 나도 이런 곳에 살고 싶은 걸까. 하는 세속적인 물음들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약간의 씁쓸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쨌든 지금 있는 곳이 꽤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래, 나는 여기서 1년을 더 보내기로 했다. 앞으로의 1년 동안 이 동네에 지난 2년의 시간보단 더 적극적으로 정을 붙여보려고 한다. 못 가던 곳을 돌아다녀 보고, 숨어있는 곳을 찾아다녀도 보고, 이웃과 인사도 나눠보며 그렇게. 서울이 내 동네 같다고 느껴질 때까지 그렇게.


심란해하지 마. 서울에서 1년 더 살기로 했잖아. 버텨 자식아.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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