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모님이 코로나에 걸렸다.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라, 하루에도 수십 명을 상대하는데도 여태까지 안 걸린 게 용하다 싶었는데 최근 재유행이 시작되면서 결국 코로나를 피해 가지 못했다.
그동안 코로나 상황으로 매출이 적어지자 장사를 하루 쉬는 것에도 예민해져 마음 놓고 쉰 적 없는 두 분이었다. 그러다 몇 주 전, 고모의 칠순잔치 겸 호텔에 뷔페를 먹으러 갔다가 거기서 탈이 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놀다가 벌 받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에게 ‘논다’는 것은 ‘벌’이 된다는 야속한 귀납적 증명이 또 한 번 이루어졌다.
내가 돈을 벌고 경제적 여유를 가지게 된다면 이루고픈 목표 중 하나가, 바로 부모님에게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마음 놓고 놀아도 괜찮다는 그 경험, 가끔은 쉬어가는 것이 삶을 한결 더 윤택하게 할 수 있다는 그 최초의 경험을 만들어드리고 싶다. 내가 아는 한 두 분 다 그런 경험은 없기 때문에.
코로나가 유행했을 시점부터, 두 분은 뉴스를 보며 혀를 차는 일이 잦았다. ‘젊은 애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유행을 하는 거다’ ‘외국에서 질병이 타고 넘어오는 거다’ 등등 역병이 나만은 피해 갈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잔혹하고도 은밀한 전염병에 몸과 마음이 강타당한 후에 말은 안 했지만, 두 분 다 느끼는 바가 있는 듯 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가장 힘든 것이 무기력함이었다고.
코로나를 겪은 친구들도 흔히들 토로하던 후유증이었다. 코로나를 앓고 난 이후에 하루에 할당된 hp라는 것이 너무도 순식간에 달아버린다고, 몸이 무겁고 무기력하다고 그랬다. 그럼 나는 농담 식으로 말했다 “코로나 때문 맞지?" 혹은 "나는 코로나도 아닌데 왜 그러지?"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살면서 그런 기분을 처음 느껴본다고”
무기력하다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껴봤다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오히려 충격을 받았다. 나에겐 숨 쉬듯 느껴지는, 이 세상 어떠한 감각보다 강렬하고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그 무기력의 감각을 아버지는 60평생 처음 느껴봤다는 것이. 그것도 심지어, 어떠한 질병의 후유증일지도 모르는 경로로 느껴봤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것이 곧 세대의 차이라는 것인가 생각했다. 세대 차이란 단순히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다른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인지함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의 부지런함이 그에겐 나태함이고, 그의 꼿꼿함이 나에겐 아집이고, 나의 어우러짐이 그에겐 변절이고 오염으로 인식되는 것. 또한 그의 어우러짐은 가식이고 위선으로 느껴지는 것. 그것은 우리가 사고하는 방식, 아예 그 회로의 설계가 다름을 예상케 한다.
아무리 깨어있는 사람이라도, 자신은 시대정신에 결코 젖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부한대도 어쩔 수 없는 것. 도저히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깨달아질 수 없는 그 감각의 영역이 바로 세대 차이라는 것이다. 무기력이라는 감각도 그 무수한 감각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니, 도대체 왜 우리 보고만 뭐라 하냐고, 도대체 왜 우리를 이렇게 취급하느냐고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갈등한다는 것이 결국 무슨 소용이겠냐는 허무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른 차원에 살고 있다. 서로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감각의 간극이 세대 간에 존재하고 있다.
무기력과 우울이라는 두 키워드를 빼놓고 현재의 청년 세대를 논할 수 없다. 언제 안 그런 세대가 있었겠냐고 반문한다면 단언컨대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아니, 나도 너와 똑같았다고 말하는 사람 또한 다른 감각의 차원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습지만, 그것이 또 괴롭지만, 그 세대의 감각은 오직 그 세대에서 가장 젊은 뇌로 가장 젊은 몸으로 부딪치고 있는 사람들만의 것이다.
세대는 변하고, 우리도 변한다. 현세대가 구세대가 되는 것은 더더욱 시간문제다. 세상의 흐름은 너무 빠르고, 세상의 파괴도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가시화된다. 애써 외면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했던 시절도 분명히 지났고, 외면이 불가할 정도의 속도와 정성으로 수많은 재앙의 신호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하루마다 일어나는 그 많은 일을 함께 사건으로 목격하고 있지만, 결코 같게 인지하고 있지 않다. 넘을 수 없는 장벽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로써 느꼈던 건, 내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만큼, 아버지도 나와 나의 형제를 이해하기가 정말 어려웠겠구나. 라는 것.
아버지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이런 감정을 매일같이 겪는 것이라면 오히려 나보다 너희들이 더 강할 수 있겠구나”
경험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감각해 보지 않았기에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공감과 이해의 영역은 엄연히 분리되어 있지만 공감할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몇 년을 누구도 만나기 싫어하고 어떤 일도 하기 싫어했을 때, 가장 답답해하고 분노했던 이 또한 나의 부모였다.
나는 그런 부모를 또다시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시간을 왜 그들의 시간인 냥 아까워하는지. 나의 소모되는 육체를 그들의 몫인 냥 애달파하는지. 내가 중히 여기는 것들을 왜 그리 함부로 취급하는지. 그것은 아마 서로의 감각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 감각, 무기력의 감각은 병의 감각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병에 걸려야만 조금 체감해볼 수 있는 감각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무기력한 일상을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 와선 상관없어졌다. 이렇게 알아간다고 생각하면 기다리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되니까.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고 빠르게 변하는 것은 비단 젊은 세대의 일만은 아니다. 생존과 적응의 본능은 인간 고유의 것이고, 전체의 것이기에 나의 부모도, 아무리 나이가 들더라도 변하고 있고, 나 또한 나이가 들며 변하고 있다. 내가 감각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나의 부모는 나보다 더 치열하고 고통스럽게 이 세상에 적응하고 변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떠한 중간 지점에 다다랐을 때, 최적이라 생각되는 중립의 영역에서 만나는 순간이 있기를,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비무장 상태로 서로가 서로의 파이고 쓸린 곳들을 매만져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부모님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나에게 무엇보다도 가장 겁나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절대 부재하지 않기를. 오직 존재만을 바라는 그 감각을 나도 조금씩 깨우쳐 가고 있어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