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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Aug 15. 2021

산적의 딸 리베라

여덟 번째 이야기


 게르다와 베에를 떠나보내고 산적의 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누군가 자신의 소릴 들을까  게르다의 토시를 낀 소매로 입을 틀어막았다. 토시에선 장미향이 났다. 게르다의 냄새였다. 산적의 딸은 얼굴에 흐르는 뜨거운 물줄기에 큰 당혹감을 느꼈다. 우는 것은 마음이 약한 아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했다. 울음을 주체할 수 없자 그제야 산적의 딸은 자신이 아직 아이임을 실감했다.

 “아!”

 산적의 딸이 끈적한 눈물을 닦아내다 눈에서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빠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이게 뭐지?”

 날카로운 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보니 작은 유리조각 같은 것이었다. 그 유리조각은 바로 호브 고블린의 거울 조각이었다. 선한 것을 악하게, 악한 것은 더 악하게 보이게 한다는 그 거울 조각. 그 조각은 산적의 딸이 게르다를 데려온 날 밤에 산적의 딸의 눈으로 들어갔다. 산적의 딸은 경계심이 심한 나머지, 손에 칼을 쥔 것도 모자라 눈을 뜨고 자는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산적의 딸이 게르다를 궁으로 데려올 때, 분명 게르다에게 겁을 줘 평생 자신의 궁에 가둬 놀 요량이었다. 그러나 거울 조각이 들어간 후부터는 여느 때와 같이 베에의 목에 칼을 가누며 겁을 주면 평소에는 행복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던 베에의 표정이 공포에 싸인 흉악한 표정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게르다와 호박마차에 타고 놀며 카이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게르다의 얼굴은 아주 흉하고 못생긴 얼굴로 보였다. 가둬두고, 겁을 주면 좋아하던 것들이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을 억압할수록 그것들은 더욱 흉악한 모습으로 산적의 딸의 눈에 비쳤다. 그래서 게르다가 카이를 찾아 떠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 게르다를 보내줘야겠다 마음먹었던 것이다. 악마의 거울은, 선과 악의 기준을 정해놓지는 않았던 것이다. 강도와 약탈을 일삼는 산적들 틈에서 선한 것이 악하고, 악한 것이 선하다 배운 산적의 딸의 눈엔 세상이 뒤집힌 것이었다.


 산적의 딸은 울음을 그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순록 베에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목걸이를 차고 사라졌고, 그 허름한 여자아이에게 자신의 털신과 식량을 내준 것도 모자라 엄마가 애지중지하는 털장갑까지 내줘버렸다니. 자신의 눈에서 빠진 거울 조각의 실체를 모르는 산적의 딸은 어리둥절했다.

 ‘아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뭐에 홀린 듯, 산적의 딸은 자신이 방금까지 한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정 자신이 뭐에 홀렸던 것인가.

'아이고 내가 미쳤지. 아이고 아까워! 내 빵! 내 햄! 내 순록!!!'

 게르다와 순록 베에가 떠난 길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산적의 딸은 자신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주머니에 있는 칼자루에 손을 얹고 걷지 않는데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다. 경계심은 허물렸고, 공포심은 설렘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힘찬 얼굴로 궁을 탈출하는 순록과 게르다의 모습은 그녀의 마음속에 각인되었고 그 모습은 곧 여러 조각으로 흩어지다 ‘자유’라는 글자를 만들어 산적의 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궁에 들어서자 산적의 딸의 엄마는 허리춤에 손을 짚고 잔뜩 성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어딜 나갔다 들어오는 거니”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 오늘은 웬일로 이 시간에 깨어 있는 거야?”

 “너는 가끔 나를 애 취급하더라. 애는 너야. 내가 아니라”

 “맞아, 애는 나지. 나 그걸 오늘에야 알았어요”

 “이 짐승 같은 녀석! 건방진 소리 그만하고 내 털장갑 어디다 뒀는지 말해”

 “뭐가 맞는 행동인지 모르겠어”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게르다가 그렇게 쫓는 카이는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나에게도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

 “너는 그저 약하고 멍청한 것들에게서 네가 원하는 만큼 뺏어 살면 되는 것이야”

 “아니, 어머니 그건 악한 짓이야”


 산적의 딸의 눈에 더 이상 유리조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쩐지 그 전보다 명확히 세상을 구분할 줄 알았다. 어른이야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다 말하지만, 아이에게는 존재한다. 선한 것은 선한 것이고, 악한 것은 악한 것이다. 악함은 선함을 표방할 수 없고, 선함은 악함과 타협하지 않는다.

 산적의 딸은 아이답지 못했다. 팔이 저려도, 베개 밑에 손을 넣고 자는 것이 습관이었다. 손에는 칼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고 배웠으며,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선 무력과 공포를 활용하라 배웠다. 그래서 산적의 딸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순록 베에의 목에 칼날을 갖다 대며 그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하지만 늘 외로웠다. 누구와 진정 교감해본 적이 없었다.

 게르다와의 만남 이후, 자신의 안에서 조각이 맞춰졌고, 산적의 딸은 배운 대로 세상을 보는 법을 잊었다. 그것은 그녀를 오히려 아이답게 했다. 세상을 경계의 대상이 아닌 탐구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산적의 딸은 궁을 떠나기로 한다. 게르다가 타고 왔던 말을 탄다. 산적의 딸의 뒤로 산적들이 배웅을 한다. 그중 그녀의 엄마가 다가선다. 그녀에게 다가가 속삭인다.


 “네가 드디어 이름값 하는구나”

 산적의 딸의 이름은 Livera(자유)였다.


 리베라는 아무도 없는 길을 말을 타고 거닌다. 밤과 낮이 반복돼도 그는 같은 고민만을 되뇌고 있었다. '무엇이 가치 있는가' 그때 까마귀가 날아온다. 리베라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디서 많이 본 말인 걸. 하지만 그 위에 올라탄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군”

 까마귀가 묻는다.

 “넌 어디로 가는 길이니?"

 “몰라, 목적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우선 북쪽으로 가볼 생각이야”

 “나와 같구나”

 “너는 왜 떠돌고 있는데?”

 “난 얼마 전에 사랑하는 이를 잃었어. 자유롭게 세상을 날아다니는 대신, 궁궐 부엌에서 찌꺼기로 연명하는 삶을 살았었는데, 사랑도 없는데 자유까지 없는 삶은 견디기 힘들 더라고”

 “자유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니?”

 “그럼, 그것을 간과했다가 결국 병이 들어버렸잖니. 우리도 모르는 새에. 날기로 태어났는데 날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야”

 “하지만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야”

 "맞아.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추구해야해. 끝까지 쫓아야 해"

 "자유를 포기하는 것도 자유가 아니니? 그것이 더 나은 삶이라면?"

 “감옥에 갇히는 편이 더 나은 세상이라면 그게 좋은 세상일까?”

 리베라는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너와 함께 갈게. 세상엔 무엇이 가치 있는 건지 더 알고 싶어 ”

 “좋아”


 그렇게 리베라는 까마귀와 함께 나고 자란 숲을 벗어났다. 바다를 보고, 큰 산을 넘었다. 길고 피곤한 여행 중에도 좀처럼 자유롭다 느껴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리베라 이 여행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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