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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따코 Oct 28. 2021

나의 냄새

 사람마다의 냄새가 있다.

냄새로 사람을 기억하기도 한다. 스치듯 맡은 냄새로 까맣게 잊고 지냈던 초등학교 동창이 떠오른 적도 있다.

그래서 나는 늘 나의 냄새는 어떨까 궁금했다. 나는 나의 냄새를 느낄 수 없으니까.

친구들에게 몇 번이고 나의 냄새가 어떠냐 물어보았지만 한 명도 제대로 답해준 적 없다.


 그냥 “네 냄새, 딱히 좋은 냄새도 나쁜 냄새도 아닌 네 냄새가 나”라는 식으로만 말했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설렜던 일 중 하나가 바로 냄새를 채우는 일이었다.

디퓨저, 섬유향수, 세탁세제, 섬유유연제, 샴푸, 바디워시까지 부모님과 함께일 땐 나의 재량이 아니었던 것들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채워 놓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들뜨게 했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이 향이 좋다고 칭찬을 해주면 괜스레 뿌듯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를 아주 오래 본 친구들은 자취방에 들어서자마자  “네 냄새난다”라는 말을 줄곧 했다. 나는 그것이 아주 신기했다. 향이란 향은 다 바꿨는데 어떻게 같은 냄새가 날 수 있지? 그 친구는 옷장을 열더니, “이렇게 네 냄새를 잔뜩 가져왔으니 네 냄새가 나지" 라고 했다.


 그때 알았다. 보통 사람에게 나는 냄새는 그 사람의 ‘집’ 냄새라는 것을. 향을 내는 향료들이 아니라 그 자리에 붙박여있는 옷장, 침대, 책상, 화장실, 벽재, 바닥 같은 ‘공간’의 냄새가 사람한테 배는 것이라는 걸.


 얼마 전, 본가를 찾아 며칠을 보냈다. 며칠을 엄마가 세탁해놓은 옷을 입고 생활했다. 그러면서 어떤 향이 난다는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늘 그랬듯. 이제 다시 집에 갈 때가 되어 본가에 올 때 입고 왔던 옷을 다시 입는데 그때서야, 얼마전 새로 장만했던 섬유유연제의 자몽향이 훅 끼쳤다. 사놓고는 향이 별로 안 난다며 불만족스러워했었는데, 다른 공간에서 그 향을 맡으니 꽤 진한 향기가 확연히 와닿았다.

 어느덧 내가 자취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나 있었다. 본가에서 가져왔던 옷들도 이제는 자취방의 옷장에서 2번의 겨울과 여름을 보냈고, 새로운 세재와 섬유유연제로 수십 번 빨아졌다. 침구도 새로 산 것들로 갈아졌고, 새로 들인 책상, 책장, 의자들에 1년 동안 몸을 부볐다.


 나에게 이제 이곳과 다른 냄새가 배어 있었구나. 생각했다.

조금은 다른 냄새를 밴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것이 진짜 내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고, 냄새에서 확장된 공간의 개념은 나를 두 개의 공간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이게 했다. 나는 두 개의 공간 중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처럼, 혹은 두 곳 모두에 평행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도 ‘내 냄새’라는 것이 달라졌을까 궁금했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청결하게 관리하고, 좋은 냄새가 나게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혼자 지내며 깨달았다. 나쁜 냄새는 아주 빠르고 진하게 퍼진다. 그 냄새를 없애려면 그 냄새가 퍼진 곱절의 시간을 들여 공기를 환기하고 새로운 냄새를 들여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냄새가 난다고 한 적이 있다. 그것이 ‘나의 냄새’에 대한 어쩌면 가장 정확한 묘사였을 지도 모른다. 엄마가 내 옷을 분리하고 빨래하고 볕이 좋을 날에 맞춰 널고 개켰던 시간들을 사랑이 아님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나의 냄새가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줄 정도가 아니었음은 모두 엄마의 공이며, 그렇게 만들어준 엄마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스스로의 공간을 가지게 된 지금, 나의 냄새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매일 아침 환기를 시키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비운다. 나쁜 냄새는 재빨리 찬 공기에 희석시켜 날려버린다. 그러면서 나는 그저, 나의 냄새가 누군가에게 나쁜 냄새는 아니기를 바란다.  엄마에게 그렇게 길러왔듯이.

그리고 나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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