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따코 Apr 16. 2022

우울증 자가진단을 해보았습니다.

요즘(이라기엔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집 밖에 나가는 일이 없고, 그러다 보니 대화할 상대가 없다.

그러다 가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면 친구와 했던 대화 내용과 현실의 괴리가 느껴져서 오히려 자괴감에 빠지거나 무기력해지는 일을 반복하는 중이다.


태생이 나태하고 낙천적인 면이 있어서  게으름을 그냥 친구처럼 안고 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또한 비겁한 자기변명이고, 그러나 천성이란 것은 쉽게 버려지지 않아서

평생의 딜레마다.


이상은 높고 실천력은 없다.

정승제 선생님이 유튜브에서 그러던데

"꿈은 높은데 실천하지 않은 삶이 얼마나 불행한 삶" 이냐고

목표를 낮추든지 행동을 하든지 하라고 그랬다.


확실히 나는 이상이 높다.

그러나 가끔은 내가 꿈꾸는 이상이 그렇게 높은 것인가?

꿈꾸는 것의 한계를 인정해야 할 만큼 대단한 것인가?

싶긴 하다.

나는 그렇게 큰 꿈을 꿀 그릇도 못 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뭐 요즘 우울한 감정이 나를 많이 지배하는 것 같아  '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라고 구글에 검색해 나오는 테스트들을 해 보았다.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제공하는 테스트의 질문 항목들은 거의 비슷해서, 보건소 제공 테스트,

그냥 구글 사이트 테스트, 그리고 심리상담센터 제공 테스트를 해보았다.


1. 보건소 테스트



2. 구글 사이트 테스트






2. 심리상담센터 테스트



결과는 이러하다. 보건소와 구글은 나를 우울 상태로 보았고, 심리상담센터는 나를 정상으로 진단했다.

정상이 무엇이냐. 정상은 뭣도 아니다.

그냥,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있으면 그래도 아직 괜찮다는 것이다.


이런 테스트를 해 본 이유는 문득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내가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무기력한 사람들, 불만만 가득하고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순을 내가 그대로 이행하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여름이 오면, 나무의 초록과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넘쳐나는 도파민에 몸부림치던 내가 커튼을 치고, 빛을 막고,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을 거북해하고 있었다.

더운 날은 더워서, 추운 날은 추워서,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부추기고, 조롱하고 있다고 느꼈다.


부정적인 감정을 토해낼 구멍을 도저히 찾지 못하고 내 안에서도 그 탈출구를 찾아낼 희망을 보지 못했다.

어제가 내일이고, 내일이 오늘 같을 숨 막히는 하루들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랫동안, 사실은 내 하루를 내가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 날들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나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더 이상 이 불안과 초조를 동력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이것은 과정일까?

데미안처럼 한 세계를 깨고 나오는 과정일까?

멀리 뛰려고 웅크려 있는 중인 걸까?


그렇다기엔 별로 나은 미래가 지금에서 기대되지 않는다.

이 구렁을 헤쳐나갈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이라면 성취해내려는 노력과 의지는 한순간 부지불식간에 부서져 버리는 그런 허망한 실패의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 우울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을 알고 싶어서 오늘은 도서관에서 자연과학 서적을 잔뜩 빌렸다.

그동안 소설 외의 책은 읽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실, 소설에는 피상적인 것들만이 가득하다.


진짜 진리는 담겨 있지 않다.

소설에는 스스로가 진리라 생각하는 주관들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진짜, 고정된 사실들.

증명된 이론들, 수 십 수 백 년을 할애해서 연구된 가설들을

내 머리에 집어넣고 싶었다.


그것들은 실재하니까.

물리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고

뇌과학은 인간을 설명할 수 있고

우주는 모든 것의 이전에서 존재해 왔으니까.

그런데 그것들이 아직까지 실재하니까.


그런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믿음을 길러 보고 싶었다.

더 이상 이상, 꿈, 행복, 성공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믿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내가 존재함이 세상의 한 부분이고 원리임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리고 아주 두꺼운 책을 빌렸다.


아마, 이렇게 두꺼운 책에도 답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이 우울도 어떻게든 끝나 있을 것이라는 것도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의 날씨는 없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