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작부터 느닷없이 사람 놀라게 해서 가슴 뛰게 하더니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그 고조감이 끊기지 않아서 그 싸가지 없음에 그냥 헛웃음만 났다. 제작기 비하인드를 보니까 관객을 영화로 끌어오고 싶었다고 제작의도를 밝히셨던데, 정말 재수 없는 거 본인들은 아시는지, 그 제작의도 정확히 성공하셨습니다. 138분 동안 끌려 다니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다름 아닌 제가요. 저를 아주 갖고 노시더군요?
각 앵글마다 이미 본 건데도 신선해서 미쳐버리겠는 디테일들, 인물을 부감하는 기교, 카메라의 시선에 있어서도 절대 머물지 않으며 사물이 되어, 시선의 시선이 되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시전하더니, 매체를 통과하는 연출, 공간성 따위는 무시하는 대담함에, 이 악물리도록 공감각적인 장면들 때려 넣어 버리는 거 하며, 대사 한 줄, 한 줄, 버릴 게 없는 각본까지. 영화 값이 앞으로 만원은 더 오른대도 필히 I열 중간에 부득부득 앉아서 분하고 또 분해하며 박찬욱, 정서경 영화를 보고 있을 거란 아찔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을 것이란 것도.
"초밥은 아무거나 먹고 싶지 않아." 이 대사를 듣고서도 좋아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왜냐고? 이 모두가 공감하는 대사를 왜 이 영화 이전의 감독들은 아무도 쓰지 않았나 하고. 하다못해 나는? 왜 또 그들이 먼저 썼어야 했나 하고. 그는 안다. 똥을 싸도 박수 받을 걸 알지만, 자신은 절대 똥을 싸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그걸 몸소 보여주는 방식이 해준의 말대로 자부심에서 오는 품위로 가득 차서 그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이 영화가 그래서 그렇게 재미 있었냐고? 놀랍게도 딱히 그렇진 않았다. 아무래도 소재 때문이었다. 내가 공감할 만한 주제도 감정의 깊이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그래, 사회의 병적인 정상성 집착의 근간인 일부일처제에 도전하고 폴리아모리 시대의 사랑으로 나아가고자 함인가? 라는 되도 않는 스스로의 물음에, 어쩌면 그럴지도..? 라는 답이 속에서 튀어오르자 마자 그냥 웃겼다. 대단해서. 웃겼다.
유머를 행하는 방식도 그렇다. 그것은 잔잔하지도 경박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관객을 압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저항의 여지는 없다. 탕웨이와의 첫 만남에서 박해일이 누가 봐도 첫눈에 반한 눈으로 처음 건네는 말이 “패턴을 좀 알아보고 싶은데요” 라던가. 남편이 죽은 방식을 설명하며 “산에서 눈뜬 채로 발견 됐는데요” 라던가. ‘집에서 숨 쉰 채 발견’이란 밈을 그가 모르고 썼어도, 알고 썼어도, 사람을 웃기는 포인트를 짚는 방식이 절묘하지 않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어를 갖고 노는 방식 자체도 영화의 재미가 된다. 외국인이라는 설정으로 끌어오는 생소한 번역투에, 마침내. 라는 세 글자로 둘의 관계를 전부 설명하는 것 또한 감탄스럽다. 그것은 이 영화는 진정 활자를 말로, 그 말들을 영상으로 구현해내며 제대로 갖고 놀줄 아는 사람들의 것임을 확인하게 하고, 그 놀이의 수준이 이미 범접하기 힘든 영역에 도달해있음을 과시한다.
붕괴하는 인물들을 촘촘히 건설해 간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플롯으로. 요즘 극들의 몰입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개연성 부족이다. 주제나 메시지 그리고 끝도 없는 감성팔이로 공감만을 소구하다 보니 시청자는 쉽게 나가떨어지고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힐링물’ ‘막장극’이라는 허울 좋은 말들로 포장된 드라마들도 들여다보면 플롯이란 게 아예 없다고 무방할 정도로 쓰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박찬욱의 영화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가장 근간의 플롯이 절대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틈이 있어 보여도, 심심해 보여도 그것은 그렇게 되도록 설계된 것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란 없다. 영화에 담기는 인물들의 숨결까지 연출가와 각본가의 손에서 통제된다. 앞서 말했듯, 박찬욱은 <헤어질 결심>이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관객들이 향유하는 형식보다는, 관객들이 직접 영화의 참여자로 스미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내가 이 영화를 심심하다고 느끼고 그리고 공감의 부재를 느끼며 방구석에서 계속 이 영화를 곱씹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모두 그의 설계 안에 있었다는 소리다.
흔히들 말하는 이 영화적 경험을 느끼게 하는 영화는 점점 더 흔치 않다. 킬링 타임용 영화 카테고리가 있을 정도로 우리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혼자 밥을 먹을 때 거북하지 않은 선에서 시각적 무료함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영상을 소비한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은 이 영화가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각본, 연출, 미술, 음악, 의상, 편집, 그리고 연기까지 영화의 참여자들이 들인 정성과 공이 더할 나위 없는 협업을 이룬다. 자신들이 올라탄 이 승리호에 대한 자부심에서 비롯되는 품위가 영화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그렇기에 내내 화면을 가득 채우는 흐린 안개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스크린이라는 전반의 캔버스가 옥석처럼 빛난다. 박찬욱의 영화에서 보리라 기대하지 못했던 주옥같은 신예들의 연기도 볼만했다. 거 봐, 내가 너 된다 그랬지? 하며 어깨를 툭툭 쳐주고 싶은 (네가 뭔데) 전부터 지켜봐왔던 이학주, 정이서, 김신영(?)까지. 그들의 필모에 이 영화가 있다는 것에 내가 자랑스러워졌다. (그니까 네가 뭔데)
+박해일씨에게 회색 폴라 입히신 의상팀.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영화는 재미없었지만 영화가 너무 재밌어진, 사장님이 맛있고 음식이 친절했던 그런 영화 <헤어질 결심>의 리뷰를 마친다. 다른 영화적 해석들은 나도 유튜브 보고 곱씹을 거라 생략한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콘텐츠들에 지쳤다면 한 번쯤 보기를 추천한다. 아마도, 시간이 흐른다면 더 명작으로 고평가 될 그런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서른이 넘어서, 잠겨죽어도 좋을 만한 사람을 인생에 한번쯤 마주치고 나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