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즈 앤 올> 후기 / 스포일러 포함
we must feel something
우리는 무언가 느껴야 해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면서 아무렇지도 않아하고 있잖아.
괴물의 행동을 하면서도 인간과 괴물의 영역을 구분하며 인간의 쪽에 있길 원하는 매런. 그 경계에서 덧없이 매런이 있는 쪽으로 끌려들어가는 리. 이 둘의 여정은 단순한 끌림에서 시작된다. 인간에겐 자신과 같은 부류를 알아보고 또 끌리는 초능력이 있다. 마치 서로의 냄새를 맡은 것처럼 그렇게 이어지는 인연들이 있다.
인간이 인간을 먹어치운다. 어쩌면 유전적으로 그렇게 심어진 본능이라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끼고 억제도 해보지만 어쨌든 매런과 리와 같은 'eater'라 불리는 종족들은 누군가의 심장을 뜯기도 심지어 뼈까지도 모조리 씹어 먹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매런과 리가 속하는 'eater'와 그들을 소외시키는 '인간'은 무엇이 그리 다른 것인지, 어쩌면 대부분 비슷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인류가 종속하는 것만으로 방방곡곡 시시각각 착취의 이력과 부채의 의무가 쌓이는 것이 21세기 아닌가.
그럼에도 인간들에게서 격리된 매런과 리는 미래도, 행복도 꿈꿀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로 인해 스스로의 갈망을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한다. 욕망은 분명하나 욕망의 명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든 소속되고 싶으나 소속되도록 정해져 있는 부류를 아직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생존의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매런과 리는 충분히 커피를 마시고 잘 요리된 오믈렛을 먹을 수 있다. 식인은 다만, 욕구의 문제다. 행하지 않아도 되지만, 행하지 않고는 살기 힘든 것들의 문제다. 두 인물이 인간의 것을 향유하는 장면이 그들의 욕구를 생존과 분리시킨다. 예를 들면 음식과 음악이 그렇다. 사람을 먹지 않아도 분명히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행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선 사실 지금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도 충분하다.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한다거나, 몸을 은신하는 것 말고 ‘크고 넓은 집’을 원한다거나, 단순한 번식 행위가 아닌 ‘섹스 판타지’를 실현하고 싶다거나. 쾌락은 만족을 모른다. 매런에게 'eater'의 존재에 대해 알려준 설리가 말한다. "지금은 아니라도 시간이 갈수록 더 원하게 될 거야."
스스로 의식하게 된다. 나는 내가 진정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원하고 있어. 하지만 애석하게도 원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단순한 기능적 생존 상위의 영혼의 생존이 있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믿어지며 그 영혼은 대부분의 결핍과 욕구를 먹고 자란다. 오랜 시간 결핍되었던 것을 충족했을 때 영혼의 충만함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쾌락과 고통의 균형에서 고통받은 만큼 보상받고 싶어 하는 것은 비겁하지만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이를 해치고 먹을 수밖에 없다고 친대도 그 행위에 단 일말의 쾌락도 섞여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설리가 자신이 먹어치운 인간들의 머리카락을 새끼로 꼬아 전리품처럼 갖고 다니는 것에는 자신의 행위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어떠한 경솔한 강박에서 벗어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욕구‘라는 것을 이 영화와 함께 곱씹다 보니 얼마나 많은 것을 원하고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과 두 주인공에 이입해 매런과 리의 여정이 오히려 소박해 보이기도 한다. 식인을 하는데도, '어린 청년들이 참 건실하게 하네. 옷을 사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고. 필요한 만큼의 욕구만 해결하고 있잖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의 안정감에 잠시간 동화되며 편안해지기까지 한다.
매런과 리가 부리는 사치는 남의 집에 침입해 키스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것뿐이다. 둘은 안쓰러울 만큼 빼빼 말라 있고, 괴롭도록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문하고 갈등하며 이해받길 원한다. 트럭과, 출생증명서, 낡은 배낭이 가진 전부다. 둘은 서로에게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지만 그 욕구야말로 자신들에게 사치라 여긴다.
매런의 마음은 어땠을까. 도망친 아빠에게서 분리되어 카세트테이프를 늘어뜨리며 떠난 아빠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기로 한다. 리를 만나 드디어 나와 같은 부류를 만난 것에 기쁘면서도 그와 함께할수록 이대로 살다간 아무런 미래도 행복도 꿈꿀 수 없음을 깨닫는다. 찾아 헤매던 친모조차 자신을 살인하려 했다. 친모는 자신의 실패한 행복인 매런을 다시 제 손으로 파멸하려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없고 미래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런은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잠시간 도망쳤던 리에게 돌아가 사랑하기로 한다. 평범한 날들을 보내다 결국은 그들이 존재하는 바대로 그렇게 결말을 맞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말하고 싶을 때, 내 존재를 최대한 증명해 보이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 돈을 가진 이는 돈을, 시간을 가진 이는 시간을, 체력을 가진 이는 체력을.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면, 미래도 행복도 가질 수 없는 이들이 자신의 사랑을 처절하게 증명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코 충족된 적 없던 영혼이라도, 온기를 나눴던 피부라도, 보잘것없는 존재라도 바칠 수밖에.
몰아치는 혼란을 방어하느라 무감해진 중에, 무언가를 느끼게 해 준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벗어나고 싶던 괴물의 태양에서 여린 팔을 끌어와 한풀 그늘로 넣어준 사람을 위해 모조리. 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