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여름이 왔다. 거리엔 녹음이 가득하고 살갗에 조금씩 소금기가 어린다. 기다렸던 그러나 내심 오지 않기도 바랐던, 여름이 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색 하늘에 구름 모양 구름이 떠 있는 것이 영락없는 여름 하늘이다. 5월의 봄은 물에 씻은 듯 사라지고 30도에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올여름엔 비가 많이 온다고 예보되어 있어 여름이 벌써 불청객 취급을 받고 있다. 나는 여름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라고 하면 질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여름에 대해 싫어하는 모든 요소를 초월한 여름에 대한 나의 사랑은, 저 한 김 식어 보이는 그믐달도 태양처럼 타오르게 한다.
여름이 왜 좋냐고? 그냥 좋다냐옹
더움을 깨는 시원한 것들, 바람, 아이스크림, 피서를 사랑하고
초록, 파도, 태양같이 강렬한 색채와 온도가 퍼뜩 떠오르는 단어에 마음이 녹는다.
뙤약볕을 맞으며, 자외선 고민도 살짝 해주고, 비타민D 합성도 살짝 해주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느끼며 노래를 듣는데, 노래 가사 중 ‘거머쥐다’라는 표현이 문득,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머쥐다’라는 표현과 비슷한 말을 헤아려 보았다.
움켜쥐다, 쥐어 잡다, 부여잡다, 마주 잡다, 휘어잡다 등등.무엇도 ‘거머쥐다’만큼 강렬한 느낌을 주진 못했다. 그 어휘 안에 어떠한 목적을 완전히 소유하거나 성취해 낼 것만 같은 강렬함이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름이 왔다. 근데 왜 이렇게 두려운 마음이 가득한 것일까. 꼭 해내야 하는 일의 데드라인을 올해 여름으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일까. 나는 올여름을 기점으로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를 진지하고도 고통스럽게 다시 계획해야 하기 때문일까. 결국 나는 이 초록을 거머쥐지 못하고 영영 달아나도록 놓쳐버릴 것 같아서일까.
초록의 뒷모습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나?
우거진 나무 뒤론 짙은 그늘이 졌다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건 맞다. 여름이 왔으니 두려워도 여름을 기꺼이 맞아줄밖에. 최선을 다해 더워하고 지치고 이겨내고 즐겨줄 수밖에 여부가 있겠는가. 이제 곧 6월이다. 부디, 어떠한 큰 피해 없이 이 여름이 지나가기를. 고된 이의 발을 한 풀 식혀주는 정도의 파도만 치고 가기를 자꾸만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