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드러내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있고, 나를 설명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전자를 희망하는 후자에 가깝다. MBTI 문항 중 ‘나는 종종 나를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도 나는 ‘매우 그렇다’의 동그라미를 가득 채워버리는 인간이다.
정세랑이나 황정은의 소설을 읽고 나면, 작가의 모습보다는 이야기 자체의 감촉 같은 게 잔상으로 남는다. 그것은 끈적할 때도 이불처럼 포근할 때도 있어서, 다시는 들여다보기 싫기도 하고 보고 또 봐도 매일 읽어봄직하기도 하다.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사람은 줄줄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구나,라는 것보단 아, 이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구나.라는 감상이 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미, 늦어버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 글에서조차 나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를 버리는 과정은 어렵다. 자아에 집착하는 사람은 결국 ‘나’라는 굴레에 갇혀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하기까지의 연습과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이가 없어 그저 황망한 기분 속으로 빠져버리곤 한다.
그래도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 써 내려가다 보면 조금씩 버려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버려지는 기분. 나를 버리고 오직 화면 안의 텍스트에만 몰두하게 되는 느낌은 그 어떤 것보다 황홀할 때가 있다. 그리고 버림으로 충만해진다.
요즘 읽는 데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려고 한다. 그렇게 나를 덜어내는 사람들을 읽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일종의 내가 찾아낸 나만의 훈련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을 너무 무거워하는 이들을 보면, 글을 써보라고 말하고 싶다. 일기든, 포스트잇에 갈겨쓴 낙서든, 뭐라도 복잡한 것들을 활자로 버려내다 보면, 조금은 가벼워지는 때가 있다고, 내가 그랬다고 말해주고 싶다.
문득, 내게 글이 있음에 감사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