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꽃 능소화

여름이라는 계절의 시작

by 서미



나는 6월에 피는 능소화를 좋아한다.

능소화는 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고 나팔모양의 꽃을 피우며 큰 나무나 벽을 감고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다. 능멸할 능(凌), 하늘소(霄), 꽃 화(花)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늘을 업신여기듯 흐드러지게 높이 피어나는 꽃이라 하여 능소화라 한다.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덩굴 빨판을 이용해 결국은 하늘을 능가하게 된다는 꽃.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피어나는 꽃이라니, 매력도 이런 매력이 없다.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듯 높이 피어난 능소화를 보고 있으면 ‘괜히 능소화(凌霄花)란 이름이 붙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선 느낄 수 없는 굳건한 외풍과 압도하는 자신감이 꽃에 그대로 스며들어 능소화를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능소화는 금등화(金藤花)라고도 불리는데 쇠 금(金), 등나무 등(藤), 꽃 화(花)로 황금빛 꽃을 피우는 등나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듯 한자 풀이를 볼 때면 저마다의 이유로 붙여진 이름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 항상 길 가다 새로운 꽃들을 마주치면 한자부터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능소화는 양반집에서만 심을 수 있는 꽃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주황빛을 잔뜩 머금은 꽃잎은 곧 터질 듯 아름답고 대여섯 갈래로 나눠진 꽃은 신기하리만큼 화려하고 세련됐다. 옛날에는 양반집에서만 키울 수 있는 꽃이었으나 지금은 길을 걷다 보면 어떠한 꽃보다도 자주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꽃이 되었다. 그럼에도 한자의 뜻은 똑같다. 희소성이 감소하고 개체수가 증가하였대도 ‘하늘을 업신여기는 화려한 주황색의 꽃’이라는 능소화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능소화라는 꽃을 알게 된 건 어느 한 작가님 덕분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좋아해 온 작가님이었는데 능소화를 정말 좋아했다. 매년 매월 같은 형태로 피고 지는 능소화 사진을 SNS에 업로드한 후 능소화에 대한 작은 소개글도 항상 덧붙여 올렸다. 처음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꽃이, 길거리에 있어도 한 번도 눈길을 준 적 없었던 꽃이 내게 가장 예쁜 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엔 더욱더 애착이 간다. 가령 관심도 없던 무명밴드의 곡들을 오로지 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전체 듣기를 하는 마음이라든가 또는 같은 취미를 갖고 싶어 듣지도 못할 LP판을 지나치지 못하고 구매하는 마음들이 있다. 호감이라는 감정은 같은 사물을 보며 같은 감정을 느끼고 싶고 그 사람의 취향이 내 취향과 같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능소화라는 꽃을 알고 난 후부턴 매년 초여름의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쯤 능소화 사냥을 나갔고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능소화가 활짝 핀 곳이 있으면 그곳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약속 장소에 갈 때마다 보이는 능소화를 하루에도 몇 장씩 찍어댔고 SNS에 여러 번 올리길 반복했다. 사진을 찍는 게 취미인 사람인지라 주변 친구들은 내가 올리는 능소화 사진들을 보며 예쁘다고 연신 좋아해 주었고 꽃에 관심이 없는 몇몇 지인들은 무슨 꽃이냐며 꽃의 이름을 종종 물어보기도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심 뿌듯한 마음과 동시에 능소화 전도사가 된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후덥지근했던 한여름, 전기세가 무서워 선풍기 바람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을 무렵 연락 안 하던 고등학교 친구에게서 사진 한 장과 함께 짧은 메시지의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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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야 네가 좋아하는 능소화! 지나가다가 보이길래 찍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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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정한 연락이 어디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꽃이라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는 그 사랑스러운 마음에 한없이 무너졌다. 이런 마음만 가득하다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사람이 떠오르는 무언가를 보면 고민 없이 연락을 할 수 있는 마음 말이다.


나는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의 언행을 동경한다. 누군가에게 과장이나 거짓 없는 나의 진실된 감정을 표현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좋으면 좋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표현하면 될 일인데 또 혼자 고민하고 생각만 하다 결국 쌓이고 쌓여 전하지 못한 편지들이 되어버린다. 표현에 서툰 나 같은 사람들의 방치된 마음을 상대방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 현실이 얼마나 슬프고 한탄스러운 일인가. 하물며 긍정적인 감정마저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없이 이어진다. 어차피 이러한 생각의 끝은 표현을 하며 살자 라는 결론에 당도할 것이지만.


능소화를 보면 그 친구가 떠오르고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매번 표현의 중요성을 깨닫곤 한다. 사랑하며 살아야지. 수많은 감정을 나누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지. 이러한 경험 덕에 여름 한정 나는 더 다정하고 의식 하에 긍정적인 일에는 한없이 솔직한 사람이 된다. 가을로 넘어가면 다시 또 사골처럼 우려 회상이 될 여름이라는 계절 아래 나는 모두에게 능소화를 좋아하는 사람, 여름이 될 때마다 ‘요즘 들어 표현을 자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