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청춘의 교집합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들

by 서미



온 세상이 흑백이었던 시기를 지나 세상이 꿈틀대는 생명체들로 활기를 띄는 계절이 돌아왔다. 이름하여 봄, 낭만의 대명사, 청춘 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다들 봄만 되면 왜 그렇게 들뜨고 상기되어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알지만 인지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벚꽃 잎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 허리를 감고 나란히 걷는 연인들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 보였다. 이제 막 풀린 날씨에 가볍게 입고 외출했다가 아직 가시지 않은 추위에 머쓱한 웃음을 보이며 서로의 체온으로 약간의 쌀쌀함을 버텨낸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 수 있는 게 사랑이라던가, 또 누군가는 연인이 없는 인생은 지루함의 연속이라 그랬나, 지나가는 연인들을 보면 위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람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랑에 눈먼 장인처럼 사랑스러운 서로의 얼굴이 네 개의 동공 가득 차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내 눈 안에 담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까.


중학교 입학 첫날, 칼주름이 완벽하게 잡혀 있는 빳빳한 교복을 입고 어색하게 강당에 서 입학식을 기다렸다.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를 나와 중학교에 입학한 친구들도 이미 구면이었기에 색다를 것 없는 초등학교의 연장선 같이 느껴졌다. 활짝 열려 있는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봄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칠 때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아마 그때 우린 줄 맞춰 서서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학교 행사의 개막은 항상 애국가로 시작되었고 방송부원들은 식순대로 애국가 음원을 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선 방송부 내부를 볼 수 있었는데 두 세명의 선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중 한 명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또래에 비해 조금 큰 키, 호리호리한 체형, 얄팍한 얼굴에 투박한 뿔테 안경을 끼고 있던 선배. 그 순간의 장면 하나로 나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보조개가 폭 들어가는 예쁜 웃음이 참 매력적이었다. 웃음이 헤픈 타입이라 시답잖은 농담에도 크게 웃었으며 내향적인 분위기를 풍기다가도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같은 학년의 다른 선배들과는 다르게 욕을 하지 않는 점이 더욱더 호감으로 느껴졌다. 천진난만하고 왈가닥이었던 초등학생을 졸업해 갓 중학생이 된 나는 이런 감정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런 내가 누가 봐도 티가 났던지 친구들은 순식간에 나의 짝사랑 상대를 알아냈고 매번 놀리면서도 이어주려고 노력했다.

그 선배도 내가 본인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하도 친구들이 티를 내기도 했고 나도 그 선배만 보면 붉어지는 얼굴을 감출 수 없었으니까. 귀까지 빨개져 대화의 길을 잃고 헤매며 횡설수설했으니까. 다른 이가 보면 아무것도 아닌 말과 행동에 나 혼자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 기뻐했다가 슬퍼하고 밤새 난리를 치곤 했다. 나의 중학교 1학년은 그 선배로 정의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중학교 시절 있었던 에피소드를 물어본다면 가장 먼저 생각날 정도로 그 시절의 나에겐 큰 사건 중 하나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 또렷하던 순간들마저 흐려진 덕분에 오랜 시간 붙잡고 있던 짝사랑의 타이틀도 내어주었지만 가끔 문득 드는 시큰함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순수했던 사랑이 있었나 싶다. 그때만큼 심장이 떨린 적도, 설레서 밤잠을 설친 적도, 누군가를 진심을 다해 좋아했던 적도 없었다. 친구들은 연애 좀 하라며 소개 자리를 만들어 주려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딱히 외롭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단순히 연애 경험을 쌓고 싶어 누군가에게 쉽게 내 맘을 주기가 싫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위해 드는 감정 소모가 싫었고 내 기분이 그 사람에 의해 제 멋대로 휘둘리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몇 번의 봄을 보냈다.


벚꽃이 흐드러진 뚝길 가운데 서있는 커플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친구와 이야기했다. 남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마음 공간을 만들자고. 올해는 꼭 연애에 성공해서 더블데이트를 하자고. 늦지 않게 청춘의 한 획을 그어보자고.


바람은 선선하고 햇빛은 세지 않아 딱 걷기 좋았던 날이 있었다. 언니와 산책을 하기로 하고 운동복으로 환복 후 밖으로 나와 평소처럼 걷는데 뜬금없이 언니가 한 마디 던졌다.


"야 넌 청춘이라고 부를 만한 시절이 있어? 난 왜 없는 것 같냐"


갑작스러운 질문이어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장면이 없어서 "딱히, 우리 둘 다 인생 헛살았네. " 하며 우스갯소리로 넘겼는데 이상하게도 그 후로부터 청춘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내 청춘은 어디 있지. 난 무엇을 하며 그 세월을 보냈을까.


나에게 청춘(靑春)은 가령 한여름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걸었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 운동장, 학창 시절 때나 느낄 수 있는 서툴고 풋풋한 사랑, 앞뒤 안 가리고 겁 없이 물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청춘으로 정의되는 것들도 지금에서야, 즉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청춘이겠지, 하나씩 생각해 본다. 내 청춘의 조각들을.


좋아하던 선배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방과 후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친구들이랑 사물함에 쑤셔 넣고 온 기억,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와 점심시간 때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비눗방울 기계로 학교 벤치에 앉아 서로에게 비눗방울을 불어줬던 기억. 또 뭐가 있을까. 아, 중학교 때 하교 후 친구랑 강에 들어가 수건으로 송사리를 잡고 한참을 구경하다 다시 풀어줬던 기억도 있다. 이제 보니 다 사랑을 기반으로 둔 기억들이다. 이런 거라면 청춘은 아직도 진행 중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마음만 갖고 산다면 어제의 일도,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도 청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짧았던 순간일지언정 기억에 유독 오래 남는 장면들이 있다.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모여 내 청춘을 만드는 거겠지. 그 질문을 들은 후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내 청춘도 마음 한 구석에나마 존재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