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쫓기는 자와 시간을 다스리는 자
손목시계를 안찬지 꽤 된 것 같다.
휴대폰이 있어서 이기도 하고, 손목시계에서 나를 채찍질하듯 달려오는 초침을 보는 것에 지쳐서 이기도 하다.
한 때는 그것이 나를 상징한다는 듯 나름 칼같이 시간을 지키려고도 노력했다.
가끔 지금도 여행 계획이나 일정을 계획할 때 30분 혹은 15분 단위로 표를 그리고 일정을 잡기도 하는데, 사실 그 정도로 정확하게 나의 시간을 관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 약속을 잘 키기로 유명한 한 분의 일화이다. 그분은 항상 미리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기다린다고 한다. 책을 읽기도 하고, 상대방이 늦어도 인상 한 번을 안 쓴다고 한다.
순간 드는 생각은 ‘일정이 안 바쁜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결코 적지 않은 일들을 많이 하고 계신 분이다. 그럼에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 비법은 간단하다.
“약속을 여유 있게 잡아라.”
그러고 보니 나는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살려고 노력한 것 같다. 한때 친구들과의 약속조차 하루에 4번 5번을 잡고서는 정작 내 앞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에 집중하기보다는 시계만 바라보며 만남을 이어가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남의 질적인 가치보다 양적인 횟수에 집착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원자시계 가 발명되고 모바일 기기가 오차범위 1분 내로 버스시간을 알려주는 지금 이 세상은 꽉 조인 코르세 마냥 틈새하나 없이 내 허리를 졸라매고 있는 듯하다.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간관리는 시계로부터 지배받은 시간의 노예나 다름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웬만해서 일정표를 시간 단위로 계획하지 않는다. 세상일이 내가 종이에 끄적거린 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일수도 있고, 매일 일어나는 일과에서 오히려 매번 똑같이 반복하려 하는 시도가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서이기도 하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계획한 것을 정시에 맞춰서 하는 것은 신뢰 또는 신의와 관련이 있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것을 매우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고 여유시간 자체를 용인하지 못하는 태도야말로 원래 계획한 일정을 망가뜨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다 보면 시간에 쫓기며 손목에 찬 시계의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시간을 지배할 것인지 지배당할 것인지는 단지 조금의 여유시간이 결정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