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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아저씨 Jun 10. 2021

귀는 왜 항상 열려있지?

눈은감을 수있고, 입은닫을 수있는데 말이야..

때로는 설득을 해야 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달래야 하고, 때론 강한 어조로 확신을 줘야 하는 언어가 지배하는 세상. 그래서 난 평소에 가사가 없는 노래로 마음을 달래준다. 그 언어에 실린 의미가 너무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 싫어서..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귀는 내가 듣고 싶지 않다고 닫아버릴 수 없게 설계되어있다.


굳이 억지로 듣지 않으려면 손으로 양 귀를 틀어막아야 하지만, 눈이라 입처럼 쉽게 봉해버리긴 어렵다. 혹여 불편한 상대와 함께하는 자리라면, 대화는 고사하고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succo님의 이미지 입니다.


어떤 책에서 대화에 기술에 대해 써놓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가장 뛰어난 화법은 가만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세상에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야기가 안 먹히는 사람들이 있다. 학식이 아무리 높고, 지식이 많거나 아니면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단지 자신의 감정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들은 끊임없이 본인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시도한다. 


이런 친구와 앉아서 열띤 토론을 이어가면, 마치 100미터 달리기라도 한 듯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야 듣든 말든 내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쏟아낸다. 

(사실 나도 이런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자리에서 상대를 논리나 이성의 늪으로 끌어와 가둬놓고 내 의견을 피력하려는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사실을 무기로 인식을 바꾸려는 행위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마케팅에서의  철칙이다. 


이미지 freepik.com (luis_molinero)


그렇다면 왜 우리 귀는 이렇게 항상 열려있는 것일까? 

아마도 추측컨대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일까? 과학자나 인류학자는 그렇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이다. 마치 두 남녀의 사랑은 인류의 번식을 위해서라 말하는 것처럼...

조금 생각을 바꿔보자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라는 뜻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유명한 심리 상담사가 있었는데, 그와 상담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가정사든 사업이든 개인사든 모두 해결이 가능할 정도로 만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심리 상담사는 상대방이 뭐라 하든 몇 시간이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기만 했다고 했다.

그렇게 계속 듣고 있으면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이 혼자서 무릎을 탁 치면서 "아! 상담사님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라고 하고 되돌아갔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커피숍을 밥집보다 많이가고, 만나서 수다를 떨고, 진지한 척 열띤 토론을 하며 그렇게도 대화를 갈구하는가..


결국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해서가 아닐까? 조언을 듣고 싶은게 아니라고.....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은 입이 아니라 귀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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