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축소판
세상은 고독함의 연속이다.
인생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탄생과 죽음은 그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 스스로의 사건이다.
이는 마치 여행에 비유해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난 항상 혼자서 여행한다.
여행의 기원은 과거 종교적인 이유나 전쟁 혹은 외교사절과 같은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 관광 형태의 여행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남짓 산업화 시대 이후의 일이다. 여행을 뜻하는 'Travel'이라는 단어의 어원도 고대 프랑스어 'travail(일하다)'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진다. 이처럼 고대 시대의 여행은 매우 고단하고 힘든 과정의 여정을 뜻했으며, 목숨을 담보로 하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과거 시대에 비하면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행은 그저 낭만적이고 멋지게 보이기만 한다. 나는 이런 여행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순순한 창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떠돌아다니며 평소 내가 알던 상식과는 다른 환경을 경험하는 행위이다. 이런 생소한 경험을 통해 항상 예측 가능한 상황과 익숙한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있다.
출생 = 이륙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임과 동시에 군사적으로 대치중인 국경선이 대륙을 막고 있는 관계로 비행기가 아니면 해외로 나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서 가장 먼저 겪는 과정이 비행기를 타는 경험이다. 나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 잠시 눈을 감는다. 이는 마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다.
초등학교 입학 = 게스트하우스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게 되면 가장 먼저 지도를 펼치고 내가 묵어야 할 숙소를 찾는 것이 급선무이다. 배낭여행객들은 유스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매우 선호하는 편인데, 아마도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객들이 모여드는 장소는 마치 학교와 비슷하다. 특히, 도미토리룸에 옹기종기 모여서 숙식을 해결할 때는 처음 오는 손님을 신입생처럼 반갑게 맞이해준다.
유스호스텔이나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 전 세계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각자 그들만의 방식으로 나와 친구가 되어주는데, 가끔은 그들의 문화가 나와는 사뭇 다르기에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어가 마치 세계 공용어처럼 쓰이기에 영어 정도만 조금 할 줄 안다면, 다들 금세 친구가 된다는 것이다.
관광 그리고 여행 = 사회생활
문화유적지와 관광지를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구경을 하다 보면, 수많은 또 다른 문화를 배우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도 잠시 며칠 시간이 지나면 주변에 것들이 더 이상 신기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저 생활의 일부가 되어있을 뿐이다. 그리고 점점 내가 떠나온 고향 대한민국이 얼마나 좋았던 곳인지 상기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애국자가 되려면 해외에 나가 보라고 조언한다. 나는 이 말에 백번 공감하게 되는데 타국에서 생활해보지 않은 사람은 내가 사는 이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른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시켜먹던 김치찌개나 한식이 그리울 때면 마치 향수병에 걸린 것 마냥 그저 한국에 있을 때가 그리워진다.
가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친구들도 만날 때가 있는데, 나는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대한민국이라는 고국이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럽다.
만남 그리고 헤어짐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들은 결코 나와 같은 곳에서 함께 떠나온 친구들이 아니다. 그저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뿐이다. 이런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많다. 그런데 즐거운 시간 동안 마치 이 시간이 계속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심지어 여행 중간에 새로운 친구들과 며칠 동안 숙식을 함께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젠가 때가 되면 정든 그들과 반드시 이별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진리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동반된다는 것,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인간관계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 보면 당연히 내일도 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게 인간이다. 특히, 부모님은 영원히 내 주변에 계실 것 같다는 착각 말이다. 인생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부모도 자식도 그리고 친구나 형제자매도 마찬가지다. 그저 잠시 스쳐가는 인연일 뿐이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이 짧은 시간 동안 인생 전반의 축소판을 경험할 수 있다.
귀국 = 인생의 마침표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다들 기념품을 사고 지금까지 여행했던 자료를 정리하는 등 정신이 없다. 그리고 한편으론 지난 여행기간 동안 더 즐겁게 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귀국 일정이 정해진 이상 그것에 맞춰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직장인은 다시 일터로 돌아갈 생각에 남은 기간 여흥이 안 날 수도 있고, 여행에 지친 사람은 어서 빨리 한국에 돌아가 익숙한 생활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여행의 추억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생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인생의 큰 물줄기를 따라 마지막에 다가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기도 하고, 지난 시간을 곱씹어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그 당시에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항상 현재에 충실하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라는 그 진리 말이다.
나는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항상 내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친구들이 내게 여행에 관해 묻곤 할 때, 나는 이렇게 조언한다.
한 번쯤 아주 멀리 눈 색깔도 머리색도 사는 집도 다른 곳으로 가서 여행을 해보라고, 그리고 절대 아는 사람과 함께 가지 말고 혼자가라고 말이다.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해야 하고, 그것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