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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아저씨 Aug 15. 2021

Q:뭐 먹을래? A:아무거나.

심리적 계약을 바탕으로 한 서면계약 사회

'너 성공하면 너 밑에서 청소부 할게'


큰 성공을 위해서 도전하는 사람들 주변에는 이렇게 얘기하는 친구들이 몇 명쯤 있다. 그렇다면 이 친구는 정말로 우리 회사의 청소부를 하고 싶은 건가? 당연히 아니다.


오랜만에 길에서 마주친 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 때..


"우리 나중에 점심 식사라도 같이해"

"좋아! 그럼.. 내일 2시 어때? 나 내일 시간 돼"

'..........'


이렇게 반응하는 친구가 있다면 정말 부담스럽다. 이것은 정말 식사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렇게 헤어지긴 아쉬우니 다음에 또 볼 수 있도록 노력하자라는 진심을 보여주기 위한 행위다.


이처럼 한국사회는 모든 관계에서 상대의 진심을 테스트하는 게임 속에 살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여자 친구가 "아무거나 먹자"라 대답하면 무조건 파스타 먹기로 약속을 했다는 커플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린다. - Pixabay로부터 입수된 FatherSecret님의 이미지입니다.

심리적 계약은 사회생활에서 많은 모순점을 만들어낸다. 공정한 경쟁에서 학연이나 지연처럼 사적인 관계에 의한 잘못된 평가를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기 쉽다.


과거 규모가 작고 검증 시스템이 미비했던 농업기반의 사회에서 경험에 기반한 심리적 계약은 매우 유용하게 작동했다. 구성원의 변수가 적은 마을에서 비교적 나이가 많은 한 사람의 빅데이터는 상당히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직관이라는 뇌의 기저 작용은 우리 생활에서 꽤 유용한 도구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대 도시 사회는 휴대폰이 없으면 상대방의 이름조차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의 방대한 데이터와 변수로 가득하다. 오늘 당신이 마주친 모든 사람의 이름이나 특징을 모두 기억할 수 있나? 버스기사님과 편의점 종업원을 포함해서 말이다. 아마도 절반만 기억해도 대단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하물며 일주일 전 내가 먹었던 식사 메뉴조차 다 기억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대규모 도시기반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규칙에 의해 운영 및 유지 관리된다. 이는 바꿔 말해 '일관적인 사회 규약이 있어야 대규모 시스템이 문제없이 작동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나는 빨간색을 좋아하니까, 적색 등에 출발해야지!'라고 해석하면 매우 곤란해진다.


그럼에도 유독 동아시아권 문화에서 이런 심리적 계약 형태의 사회적 현상들이 자주 일어난다.


고려대학교 허태균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마음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에 반해 "서양인들은 보편적으로 마음과 행동이 일치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한다.


얼핏 생각해보면 '마음이 하라는 데로 행동하는 것은 자기 멋대로 산다는 것인데, 마음과 행동은 당연히 달라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생각과 행동은 이성이라는 필터에 의해서 통제되니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가?


마음과 행동이 다른다면, 당연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말하는 '진심을 다 해라'라는 요구가 존재한다. 상대의 마음과 행동이 다른데,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마음의 진위 여부를 가릴 수 있단 말인가?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다 - Pixabay로부터 입수된 StockSnap님의 이미지입니다.

반대로 서양에서는 행동이 곧 저 사람의 의도와 마음이라는 것이 확실하다고 믿기 때문에 행동이 친절하면 곧 마음이 친절한 것이고 행동이 불쾌하다면 저 사람 마음이 지금 불쾌한 것이다. 간혹 서양 친구들과 식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피터 너 이거 먹을래?"

"No Thank you"


상대에게 음식이나 무엇인가를 권유할 때 단 한 번이면 족하다.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렇다.


"철수야 우리 라면 끓였는데 같이 먹자?"

"아니 괜찮아 너희들끼리 먹어.."

"야, 그냥 같이 먹자 너 혼자 두고 우리만 먹으면 미안하잖아"

"진짜 괜찮은데, 그럼 뭐 한 입만 먹지 뭐.."


과연 철수는 라면을 한 입만 먹었을까? 내가 장담하건대 결코 한 입만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철수는 분명히 한 그릇을 다 먹었을 것이다 - Pixabay로부터 입수된 Andreas Breitling님의 이미지입니다.


우리나라 특히 동아시아권에서 많이 나타나는 행동과 마음의 괴리는 현대 도시 문명사회의 관계 형성에 아주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나의 진심이 상대방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소위 '갑'의 위치에 해당하는 구성원은 불쾌한 감정을 상대에게 표출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원하는 수준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 입장인 '을'은 본인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바로 과도한 충성을 보여줌으로 진심을 증명하려 한다. 이것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서면계약의 일관성과 객관성을 파괴하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또한 심리적 계약관계는 그 기준점이 각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는 태생적인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비스 센터나 콜센터에 전화할 때 사람들은 기본 매뉴얼에서의 정상적인 수리나 서비스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상품권이나 새 상품으로의 교체처럼 더 과도한 보상을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서비스 제공자와 소비자의 심리적 계약관계 때문에 진심으로 고객을 대응하는 직원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형태이다. 또한 직장생활에서도 정해진 시간 외 야근이라는 행동을 통해 진심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역시 같은 맥락이다.


영어와 한국말의 차이


나는 해외여행을 참 좋아한다. 특히 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어울려 배낭여행을 떠날 땐 정말 설레고 재미도 있다. 예전에는 유럽에서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통용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이 시대에는 당연코 영어가 세계 공용어의 지위를 차지한다.


그런데 가끔 내가 느끼는 영어에서 굉장히 헷갈리는 표현이 한 가지 있다.


'Don't you like a coffee?'

너 커피 싫어하니?


한국어라면 간단하다 '어, 난 커피 싫어해' 그런데 이것을 영어로 바꾸면 이상한 표현이 된다.


'Yes, I don't like a coffee'  (이건 잘못된 표현)

'No, I don't like a coffee' (이게 맞는 표현임)


서양의 언어에서는 어떤 사실을 표현할 때 사건 자체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한국에서 언어는 상대방과 나의 관계에 의존하여 사건을 기술하거나 표현한다.


즉, 한국에서 언어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완전히 변한다. (존댓말도 이런 이유에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예로,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조차 나의 메뉴 선택에 상대방의 의사가 반영된다. 서구 사회에서는 함께 식사를 할지라도 상대가 무엇을 먹을지 별로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서양 친구들은 자기 것을 알아서 챙겨 먹는다 - Pixabay로부터 입수된 Anastasia Gepp님의 이미지입니다.


예전에 나는 여행을 다니며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며 내 것을 나눠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미국 친구들과 유럽 친구들은 나의 이런 행동이 조금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매번 내 음식을 덜어주려 할 때마다 친구들은 감출 수 없는 어색함을 보였던 것이 기억난다.


'네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하나 더 주문해서 먹어, 그리고 내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직접 물어볼게 이제 그만 물어봐도 돼'라고 말해줬어도 될법하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들어주며 다른 문화권에서 온 엉뚱한 나를 이해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위해 배려한 게 아닌가 싶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심리적 계약관계
'신뢰'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심과 암묵적인 동의로 운영되는 조직이 있다.


바로 군대라는 조직이다. 그중에서도 특수부대와 같이 소규모로 장기간 함께한 집단에서 신뢰와 관습에 의존한 훈련은 극도의 효율성을 보여준다. 특수 전투를 수행하는 부대에서는 '합이 맞다' 또는 '합을 이룬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동서양의 군대를 막론하고 군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조직에서 공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다.


최첨단 무기로 현대식 군대에서도 과거의 전통을 따르는 제식과 의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서유럽의 군대도 예외가 아니며, 제식훈련은 상호 동질성과 심리적 소속감을 키우는 도구로 현재에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No-longer-here님의 이미지입니다.


통일성과 단결을 중요시하는 집단에서는 의외로 한국적인 혹은 동양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묻어난다. 특히 우리나라의 군심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전혀 일면 일식도 없는 성인 남자 둘이 만나 군대 얘기를 하게 되면 그 즉시 술 한잔 하고 바로 둘도 없는 우애를 다지게 된다.


군대 내에서도 잠수함처럼 팀워크를 매우 중요시하는 분야에서는 한국인 특유의 조직력이 더욱 빛을 발휘한다. 미 해군과 가상 전투 훈련서 혼자 핵 항공모함 15척 박살 낸 한국 잠수함 이야기는 밀리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하다.


그렇다면 서면적 계약과 심리적 계약이 거의 동일시되는 서구적인 일관성 문화와 심리적 계약을 중심으로 상대방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의 문화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갈라지게 된 걸까?


"쌀밥을 먹는 동양인, 빵을 먹는 서양인"


한 가지 문제를 낼 테니 한번 맞춰보기 바란다.


다음에 제시되는 3가지 단어 중 서로 연관 있는 두 개를 한 묶음으로 만들어 보자.


1번 문제)

호랑이, 바나나, 원숭이


2번 문제)

철도, 기차, 자동차


워낙 유명한 예시라 다들 알고 계실 수도 있지만, 결과가 상당히 재미있다.


쌀(밥)을 먹는 동양문화권 사람들은 바나나와 원숭이 그리고 철도와 기차를 묶는다. 반면 밀(빵)을 주식으로 삼는 서양문화권에서는 호랑이와 바나나 그리고 기차와 자동차를 묶는다.


서양에서는 물체에 대한 분류법으로 그것의 본질을 판단한다. 반면 동양에서는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 집중한다. 즉, 호랑이와 원숭이는 동물이라는 종으로 묶는 서양인들에게 원숭이와 바나나의 조합은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먹는 주식의 종류에 따라 언어와 문화가 갈리게 된 이유는 해당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과 자라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벼는 모내기라는 방식으로 단시간에 대량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품앗이라는 노동 방식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규모의 노동력을 동원하는 시스템은 강한 통제가 가능하고 집단을 우선시하는 문화에서 번영하기 마련이다.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반면, 밀을 재배하는 방식은 규모에 따라서 의외로 혼자서도 농사가 가능할 정도이다. 여기서 개인주의의 사고가 싹트기 시작한다. 또한 벼농사처럼 대규모 관개공사 등이 필요 없기 때문에 집단적 농사보다는 자율적인 농사의 형태를 갖는다.


잘 이해가 안 된다면 밀레의 작품 '씨 뿌리는 사람'만 봐도 알 수 있다. 밀씨는 혼자서 밭을 오가며 혼자서 흩뿌리면 된다.


밀과 벼농사의 차이는 해당 지역의 강수량이 가져온 변화이다. 기본적으로 밀은 강우량이 적은 단단한 땅에서 파종되며 벼는 강우량이 높은 지역에서만 농사가 가능하다.


밀과 벼 그리고 강우량에 의한 문화 차이에 대한 내용은 김현준 교수의 책 <공간이 만든 공간 - 을유문화사>에서 아주 잘 설명되어 있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는 자와 진심을 파헤치는 자


한국사회에서 대인관계는 어렵기 그지없다.

상대의 진심을 파악하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과정을 통해 상대와 나의 관계에 대한 확신을 검증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대 문명에서 특히나 자본주의 그리고 현재 도시 시스템은 대부분 서구 문명의 철학을 기본 바탕으로 두고 있다. 비록 우리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동양 문화 속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회 전반의 행정시스템과 법률 그리고 자본주의는 어느 아시아 국가보다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나 1945 일본제국으로부터 독립  아무것도 없는 대한민국에는 미국 군정에서 넘어온 첨단 행정 시스템과 사상이 아주 효과적으로 유입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사회 시스템은 서구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며, 아시아 동쪽 끝에 아주  발달된 서구의  나라를 옮겨놓은 듯한 느낌마저 준다.


한번 이렇게 상상해보자. 만약 지금 현재의 당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150년 전 어느 도시로 날아가 살 수 있다면, 장담컨대 아시아의 어느 한 국가보다는 유럽의 한 도시나 국가가 더 적응하기 쉬울 것이다.

1890년대 런던 옥스퍼드 거리 - Getty Image / NPR AUTHOR INTERVIEWS'Dirty Old London': A History Of The Victor


그만큼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서구화되어 있고,  다듬어진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도시 문명 위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선조들이 갖고 있던 사고와 철학 그리고 대가족 위주의 생활 습관은  어울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수많은 사회문제는 사실 필연적인 과정이다. 유럽의 수많은 국가들이 거쳐왔으며, 개발도상국이라면 앞으로 반드시 맞닥뜨리게 될 문제이다. 사회 부적응자처럼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사회 부조리가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 격동적인 근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는 한 개인에게 과도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적응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화된 문명과 생활양식이 서구의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넘어온 이상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주변의 사회문제를 차근차근 이해하고    어울리도록 개선해 나간다면 오히려 서양의 그들보다  세련된 시민사회로 만들  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이 최고라는 여기는 1차원적 사고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경제 성장보다는 각자의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는 선진시민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이다. 나의 인생을 스스로 행복한 삶을 설계하고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생각의 유연성은 마음의 창을 열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 이 글이 당신의 작은 샘터가 되었으면 한다.









자료출처

메인 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Myriams-Fotos님의 이미지입니다.


참고자료

<[장동선의 뇌가 즐거워지는 과학] 직관, 인간의 뇌가 개발한 비밀병기 - 장동선 뇌과학자·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 입력 2019.11.02 03:00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02/2019110200192.html>

<[박수찬의 軍] '구시대 유물' 군대 제식훈련, 계속하는 이유 - 세계일보, 박수찬 기자, 기사입력 2015.07.07  https://m.segye.com/view/20150707002969>

<‘천조국’ 미 해군과 가상 전투 훈련서 혼자 핵 항공모함 15척 박살 낸 한국 잠수함 - 2020. 9. 20. 인사이트 https://www.insight.co.kr/news/304693 >

<책 : 공간이 만든 공간 - 을유문화사 '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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