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서 탈이다
결핍은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주는 열쇠다. 자본주의의 팽창과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은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과유불급이라 하였는가 소비를 미덕으로 아는 물질 만능주의는 결핍의 필요성을 간과하게 만들어 버렸다.
주변에 매일 접하는 각종 편의시설과 풍족한 식사 그리고 따뜻한 의복에게 조차도 아무런 감사를 느끼지 못한다. 하물며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즐거움이나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서점에 가면 많은 이들이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지식을 습득하기에 여념이 없다. 지하철에서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하고 있거나 드라마를 보고 있는 이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계발을 위해 쉬지 않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독서와 배움을 통해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의 빈 곳을 채우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다.
결핍이 없는 사회는 공백의 여유를 허용치 않는다. 모든 것이 가득 차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이제는 무엇인가를 얻는 기쁨보다는 비움에 대한 여유를 갈구하는 시대로 변모해 버렸다.
넘치는 사회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깨닫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10을 가진 사람은 100을 가진 사람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100을 가진 사람은 1000을 가진 사람을 보고 좌절한다.
이제 우리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있기에 그것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어 버렸다.
COVID19으로 촉발된 팬데믹 사태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평소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마스크 없는 거리, 그리고 일상 속의 자연스러운 만남은 이미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초유의 전염병 사태가 없었다면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 이제서야 우리는 평범한 생활에 대한 소중함과 일상에 대해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그 소중함과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다. 채움의 즐거움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버려야 한다. 빈자리가 충분했을 때 채움에 대한 진정한 기쁨도 그 깊이가 더 할 것이다.
비움과 포기엔 이유가 없다. 그저 빈자리를 남겨 놓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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