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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아저씨 Oct 29. 2021

미래의 인재상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가치를 지키는 법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 인재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력서를 준비하면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기업은 나를 원할까?'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한국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 발전을 이루어 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흔한 아파트 한 채를 확보하지 못하셨다.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삼성과 같은 세계적 기업이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미래를 준비하였을 것이다.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그리고 미 증시에 상장된 100조 기업 쿠팡을 바라보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역동적인 시대는 기대만큼이나 부담스러울 것이다. 나 역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서점에 가면 많은 미래 예측 서적들이 있다. 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미래를 바라본다. 독자들은 그 예측에 감탄하기도 안도하기도 한다. 미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련의 거시적 정부 정책과 최신의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다가올 시대에 대해 추론한다. 그러한 예측이 맞는다 할지라도 또다시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기다리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양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는 '본인이 직접 미래를 개척하며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내가 어렸을 때 미래의 모습에서 빠지지 않는 그림이 날개를 단 멋진 자동차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주변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볼 수가 없다. 그만큼 미래 예측은 너무나 다양한 변수와 불 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럼 다시 한번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보자.'


1) 각종 행정업무 및 전문가 집단의 자격증을 비롯한 업무가 AI에 의해 인공적으로 대체될 것이다. (공과금 지출 세금처리 및 행정의 맞춤형 처리와 집행의 완전 자동화)


2) 대량 생산은 우리에게 공산품의 일상화를 가져다주었다. 데이터의 자유로운 유통은 정보 비대칭에 의존한 많은 직업군을 없앴다. 그리고 물류비용은 점점 제로점에 수렴하고 있다. 대량 생산시대가 저물게 되면 가정마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맞춤형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다.(공산품의 소량생산 시대)


3) 국가단위의 화폐 개념이 무너질 것이다. 화폐에서의 투자 기능은 사라지고, 오직 가치 교환의 기능에만 충실해질 것이다(은행업무의 종료 및 글로벌 통화의 등장). 자산의 기능에서 화폐가 아닌 다른 가치 보존 수단이 등장할 것이다.


4) 끊기지 않는 완전한 네트워크망이 구축됨으로 개별 디바이스에 의존하지 않는 IoT 환경이 완성된다. 이를 통해 개인은 대량의 정보 생산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고유 데이터의 생산과 소비는 곧 우리의 삶을 정의하는 지표로 작동한다. (모든 활동 및 일상생활 등이 모두 데이터로 기록됨) 또한 휴대폰 대신 몸에 걸치는 모든 것들이 네트워크에 연결되며, 주변의 평평한 면은 전부 디스플레이로 뒤덮인다.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가구, 건물, 교통수단 등에도 상시 온라인 환경에 맞춰 반응하게 된다. 이것은 휴대폰과 같은 전통 네트워크 기기가 필요 없어짐을 의미한다.


5) 정치외교적인 방면에서 국가의 의미는 점점 퇴색될 것이며, 대부분의 사회집단은 개인의 역량이나 소속집단(회사나 단체)등에 의해 정의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해외여행이나 장거리 이동시 여권이나 신분증보다는 회사 사원증이 더 큰 기능을 할 수 있다. 또한 멀티 국적의 시민들이 증가할 것이다. 한 사람의 신분을 한 개별 국가의 국민으로만 규정하는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위의 변화들은 짧게는 6~7년 사이 길게는 15년 정도면 우리 현실에 와닿을 정도로 빠르게 변할 것으로 예측되는 사항들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 앨빈 토플러-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하루에 15시간을 쏟아붓고 싶은 학생과 학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사실 조금은 철학적인 문제에 대한 고찰일 수 있다. 직업과 직장이란 한 사회의 경제활동을 위해 조직된 집단일 뿐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적 수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이것을 목적으로 착각하고 있다. 직업과 직장이라는 개념은 미래가 어떻게 바뀌든 계속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결국 '뭐든 간에 돈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만 하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은 은퇴 후 상실감을 갖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결국 내가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고 해야 할 일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한다. 다음으로 그것을 완성하려는 학습을 꾸려가는 것이 대학교육 및 고등기술교육의 올바른 취지다.



 '기술은 가르치면 돼, 그런데 인성은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더군'


최근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의 세미나 또는 교육에 참여해보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 인격과 인성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는 것이다. 취업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예절교육 그리고 한 사람의 인격과 인성이 이제는 취업의 우선 조건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학벌을 보고 이력서의 토익점수를 보고 신입직원을 뽑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모두가 상향 평준화되어서인가? 인성을 채용 우선 기준으로 삼겠다니 말이다.


사실 그들의 고민을 잘 들어보면 일리가 있다. 기업은 이윤과 수익을 올리는 최우선 과제를 가지고 있는데, 수익을 아무리 많이 올려도 한 직원의 몰지각한 행동에 의해 기업 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지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십수 년간 쌓아놓은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기업의 중책을 맞고 있는 임원이 악의적인 부정행위의 유혹에라도 빠진다면 아무리 규모가 큰 기업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부족한 능력이나 새로운 기술은 재교육이나 협력을 통해 해결이 되지만, 잘못 형성된 인격을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나 인간의 인격은 토익 성적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의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더욱 민감한 문제이다.



'대기업 그리고 플랫폼 사업에서 1인 공방까지..'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대학생들과 젊은 청년들은 좋은 직장과 안정적인 직업을 꿈꾸며 자기 계발과 학습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는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배운 안정적인 직업과 직장의 개념은 영국의 산업혁명의 부산물로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의 자본주의와 만나며 80년대와 90년대 정점을 찍었다. 산업화에 따른 공장형 교육시스템은 좋은 직장과 안정적인 집단에 합류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보이도록 한다.


단순 노동과 대량 생산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아주 소수의 전문 인력이 그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다. 시장은 모든 것을 통합하는 플랫폼 기업들의 전성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역사의 반복에서 볼 수 있듯 몸집을 키운 플랫폼 기업들을 향한 정부 규제가 시작되고 있다.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단일 기업의 등장은 해당 산업의 끝을 보여주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주변에 도시재생과 청년기업 그리고 1인 카페와 같은 작지만 소규모 사업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때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던 목수는 요즘 핫 트렌드이다. 목수는 아니더라도 나무를 이용한 만들기 수업은 예약이 밀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 1인 유튜버와 같은 방송콘텐츠 제작환경은 기존 대형 종편 방송국의 형태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작은 규모다. 그럼에도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자영업자와 소형 기업들이 맞춤형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것은 규모의 경제로 시장을 압도해버리는 대기업이 뛰어들 수 없는 영역이다.


대량생산을 위주의 기업들은 선진국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사업의 형태와 기능 중심형 인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매번 그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특정 분야를 예측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세계 유수의 기업을 이끄는 CEO들 조차도 기업의 미래는 1년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고 하다. 어떤 분야든 내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기회가 될 수도 있고, 뼈아픈 실패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시각이 아닌 자신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젠 모든 것이 싫다. 조기 은퇴하고 편하게 살고 싶다.'


최근 신문을 보니 30대에 은퇴하는 파이어족이 유행이라 한다. 어찌 보면 나도 파이어족의 한 명이라 생각한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일찍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선진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은 경제활동 가능 인구의 20%가 상시 실업 상태일 정도로 '적당히 일하고, 나만의 인생을 찾겠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물질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겠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다.


세계경제의 생산 주체가 인력에서 증기기관으로 넘어간 것이 1차 산업혁명이었다. 그리고 기존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크게 바꿔 놓았다. 재화가 넘쳐나니 자본의 축적이 시작되었고,  부유층을 시작으로 여가라는 개념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산업 혁명으로부터 약 2세기가 조금 더 지난 지금 우리는 또 한 번의 큰 변화의 파도를 앞두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적 노동은 인간 고유의 불가침 영역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최첨단 과학기술은 이런 인간 고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이미 대부분의 생산활동에서 인간이 직접 개입하는 비율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소위 전문가 집단이라 칭하는 회계사, 변호사, 의사 등의 고학력 인력들도 대부분 고성능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인강 1타 강사에 비유되는 교육 플랫폼처럼 소수의 최고급 전문가들에 의해 시스템에 통합될 것이며, 이는 국가 전체 시스템을 유지와 관리에 단 소수의 인력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종적으로 선진국의 대부분 시민들은 노동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획득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세대가 완전히 지나가기 전에 신성한 근로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큰 리스크가 따른다. 결국 국가는 국민들이 아무런 활동 없이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할 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주 7일의 여가 시간이 보장된다면 무엇을 할까? 소득은 국가에서 보장한다!'


사회활동이 왕성한 사람들 대부분은 명함을 가지고 다닌다. 그 명함에는 본인이 속해있는 조직의 로고나 회사명이 직함과 함께 큼지막하게 나와있다. 직업과 직장은 돈을 버는 것 외에도 나의 정체성을 각인시켜주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은퇴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그런 타이틀이 소멸되는 것이다. 그들은 은퇴 후 자신의 역할과 존재감이 상실되는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이 있다.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는 사회에서 본인의 역할을 스스로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주변의 많은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돈이 얼마 있으면 은퇴할 것이냐고, 대부분은 100억에서 수백억 정도를 충분한 자산의 규모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뚜렷한 계획이 없었다. 그리고 은퇴 후에 하고 싶은 것에는 '여행 가기' '지방에 별장 짓기' '건물주 되기' '낚시' '악기 배우기'등이었다.


불과 20 여전까지만 하더라도 일주일에 6일을 일하고 단 하루만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약 150여 년 전으로 올라가면 1년에 쉴 수 있는 날은 명절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주 4일 근무 혹은 자율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확실하다. 더 많은 시간을 나의 여가활동과 개인정비 시간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전쟁이 나거나 대공황처럼 망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하신 분들의 생활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거의 30년 넘는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 결과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어르신들이 참 많다. 그럼에도 발달된 의학기술과 사회보장 시스템 덕분에 그들은 앞으로도 최소 20년 이상 충분한 여가시간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지금 20대의 젊은 청년들에게 조기 은퇴란 60년 이상의 완전한 자유시간을 할당받게 된다.


음악과 그림, 여행, 스포츠는 취미생활의 베스트셀러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취미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당장 돈이 안되고 먹고사는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돈 안 되는 것들이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어쩌면 미래의 진정한 돈벌이는 이런 것들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도 유튜브에서는 1년 365일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돈도 버는 유튜버들이 수두룩하다. 취미생활은 앞으로 점점 더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행복이 중요하다.'


개인의 인생관은 행복 추구라는 가치에 의해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한 인간에게 행복한 삶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개인의 행복에는 나와 가족 구성원 내가 속한 사회의 행복도 포함된다. 이 행복에 기여하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본인이 즐기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학습과 탐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타인이 나의 입맛을 결정해 줄 수 없듯이 나의 행복에 대한 기준과 방법은 내가 노력해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행복은 쾌락과 같이 일시적인 것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나의 인생을 더 복잡하고 피폐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해도 프린터에서 출력된 그림을 명작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전공을 나눌 때 크게 인문학과 공학으로 구분을 짓는다. 혹시 이것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자료를 찾아보니 공학은 이 세계에 인간이 없어져도 변하지 않는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고, 인문학은 이 세계에 인간이 없어져 버리면 그 의미도 사라지는 학문이라고 한다. 참으로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다.


문학과 예술은 한 인간의 삶에 무형의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인문학적 배경과 학습이 앞으로는 경제활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주요 생산 활동과 경제력의 주체가 인공지능으로 넘어가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세상이 기계화된다고 우리가 기름을 먹고사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먼 과거의 귀족들은 육체노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예술활동이나 스포츠처럼 사교활동으로 소비하였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교양은 신분을 구분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많은 것이 기계로 대체될 때 오직 사교활동과 예술만이 진정 가치 있는 활동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다.'


중학생이던 어느 날 친구들과 모여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 고등학생이 되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친구들과 고등학생이 되어 만나보니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내가 가만히 있으니 바뀐 것이라곤 덩치만 커진 신체뿐이었다. 미래를 준비하고 변화를 맞이하는 것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저 흘러가기만 한다면 20년 후 내 모습도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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