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상처받은 당신을 위한 글

사람마다 저마다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

by 키다리아저씨

1.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나는 그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구태여 본인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인 즉, 부부관계가 원만치 않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야기였다. 결론은 세상 그 누구도 나의 감정과 인생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스스로의 만족과 행복은 결국 자신으로부터 발생한다는 답이었다. 결코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중한 인사 후 그는 나와의 이야기를 접고 떠나갔다. 그의 눈빛에서 감정의 흔들림이 보였다. 아마도 마음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거나 내가 한 말이 치유나 위로는커녕 더 큰 상처가 되었나 보다. 그렇다 결국 그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해결책이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는 공감하는 척이 모습이었을 테다.


2. 눈발이 날리는 추운 겨울날 입김을 불어대며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버스기사의 얼굴이 그다지 밝아 보이질 않는다. 나는 서둘러 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았다. 배차시간이 촉박했는지 운전이 급하다. 그래도 난 좋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을 테니.. 아차, 하차벨을 누르지 않을 뻔했다. -삐--!! 사거리 신호가 지나치기 전에 벨을 눌렀다. 마침 버스는 신호대기에 걸려 잠시 정차하고, 버스기사님은 잠시 문을 열고 내려 담배를 피운다. 보통 이런 빨간불은 60초가 넘어가는 장대신호다. 깊은 호흡에 니코틴을 적신 기사님이 다음 정류장을 향해 달린다. 타려는 사람이 없었는지 멈추는 듯 지나가버린다. "기사님! 내려주세요. 저 내릴 거예요!~"..... 버스가 주춤하고 정류장을 30미터 즈음 지나 멈춘다. 그리고 들리는 한마디 "내릴 거면 벨을 눌러야지!!"......... 나는 홧김에 짜증 내듯 대꾸하고 내려버린다. "눌렀어요..!! 눌렀다고요.!"... 속으로 한마디 더 내뱉는다. '아니.. 아저씨가, 아까 담배 피운다고 문 열면서 하차벨이 리셋되었다... 고... 하... 정말'... 버스는 저 멀리 사라진다.


3. 오늘은 상무님까지 참석하시는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다. 하나 둘 착석하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정대리는 내 맞은편, 부장님과 차장님들은 저만치 멀리 앉아 계신다. 상무님이 상석에 착석하셨다. 기술회의라고는 하지만, 별게 없다. 매주 반복되는 내용들. 그리고 그 뻔한 내용에 오만가지 것들을 덧데어 만든 보고서....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상무님의 매의 눈빛과 마주쳤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지만 이내 프레젠테이션으로 시선을 돌리신다. 회의는 무사히 끝났고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성공이다..' 그런데 지나가는 말로 부장님께서 나에게 한마디 던지신다. "강 주임... 회의할 때 딴짓 좀 하지 마.. 그러다 상무님한테 찍히면 어쩔라고 그래? 어..!" 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부장님은 날 위해서 해주는 말이라고 하며 더 많은 잔소리를 하셨다. 그런데, 난 다 알고 있다. 지난주에 부장님이 한턱 쏜 회식에 안 갔다고 삐졌다는 걸.


4. 같은 언어권에 산다고, 같은 문법을 사용한다고 같은 말이 아니다. 심지어 문장을 알아들었다고 이해한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본인의 의도와 표현을 곧이곧대로 말에 담아 보내지도 않는다. 외곡이 생기고 희화화된 해석이 동원된다. 그런 와중에 나는 상처를 입는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내게 상처를 보내지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내 안에 있던 분노와 아픔의 상자가 잠시 열렸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며 그 상자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지나간 상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굳게 닫힌 채로 내가 다시 열어주길 기다리고만 있다.


5. 타인이 나의 말을 이해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나도 타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이 혼란하고 번잡한 사회에서 너를 이해한다는 것은 오만하기 그지없는 위로로 포장된 아집이다. 동정을 바라는 우리의 연약한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마음을 속박하려 한다. 이는 더 깊은 골짜기를 파내려 가는 강줄기처럼 나와 타인의 관계를 건널 수 없는 협곡으로 만들 수 있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되 나 스스로는 굳건하게 사막에 모래폭풍을 맞고도 견뎌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이 내 곁에 함께 서있다 한들 우리는 함께할 운명이 아니고, 내가 당신을 떠난다 한들 그대가 슬퍼할 이유도 없다. 결국 이 모래의 바다를 건너는 일은 뜨겁고도 고독한 항해 그 자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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