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대는 사이 놓치고 있던 일상의 보물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
진정한 발견의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
-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
이번 설에는 '무탈하세요'라는 인사를 많이 건넨 듯하다. 병이나 사고 없이 무사하고 멀쩡하기를, 그래서 평범한 날들이 계속 일어나기를 기원한 것이다. 인사를 건네받는 친구와 선배의 사정과 소원을 알 바 없이 그들 모두가 무탈하기를 일방적으로 기원했다. 원하는 바를 다 이루라던지 대박이 나고 돈 많이 벌라는 인사를 기대했을지도 모를 누군가는 상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작년 설날의 장면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재연되는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 마을은 산골이다. 동쪽 산 위로 떠오른 노란 아침 해가 붉은 여운을 남기며 서쪽 산 너머로 지는 곳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것이 산이고, 평온하고 느린 산의 리듬 속에서 살다가, 결국 산속에 묻혀 산과 하나가 된다. 이곳에서는 똑같아 보이는 매일이 정상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더 크게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작인 일일 지라도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설 명절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 느닷없이 사건이 터졌다. 어머니의 귀중품과 통장이 들어있는 작은 주머니가 사라진 것이다. 풋풋한 처녀가 며느리가 되고 또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동안에 생겨난 팔찌와 귀고리, 반지들. 그 무엇보다도 어머니 평생의 노고가 모여있는 소중한 통장이 몽땅 사라진 것이다. 깜빡거리는 서로의 기억을 탓해봐야 무엇하겠는가. 위로와 도움을 기대하며 아버지에게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오히려 역정과 핀잔뿐이었다. 어머니의 마음에는 실망과 체념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길을 잃으면 너무 놀라 어쩔 줄 모르게 되어, 울면서 그저 앞으로만 걸어가게 된다. 어머니도 그저 멍한 상태로 장농과 서랍장, 집안 구석구석을 뒤집고 헤치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셨다고 했다. 처음에 가졌던 작은 희망의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가슴이 무너지는 속앓이는 너무나 무거워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는다. 뒤늦게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어머니는 애써 말씀을 아끼셨다. 힘없는 목소리로 '괜찮아, 걱정 마라' 하시는 목소리가 더 무거웠다.
'이렇게 살아서 뭣하나,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하시는 걸 보면 상심의 무게는 감히 가늠이 안된다. 더 안 좋은 일을 대신해서 일어난 것이라는 외삼촌의 말에 다소의 위안이 되셨겠지만, 설 명절 이틀 전에 뵌 어머니는 모든 것을 포기하신 듯 멍하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우리 가족과 누님네 포함해서 여섯 명의 젊은 이들의 탐정 수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몇 가지 사전 수칙을 정했다. 체념한 어머니에게 또 다른 실망을 드리지 않기 위해서는 '보물찾기'가 아니라 '집안 물건 정리' 로 작전명을 정했고, 각자가 수색할 장소를 정하되, 다른 사람이 돌아가면서 이중 삼중으로 수색하는 것이 좋겠다고 합의를 봤다. 물론 어머니 모르게 말이다. 참 다행스럽게도 CCTV에서는 외부인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신고는 필요 없게 되었고, 보물이 아직 이곳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누님은 안방 물건과 옷장을 정리하고, 나는 작은 침대방을 구석구석 살폈다. 조카와 아이들은 혹시나 몰라 쓰레기봉투를 통째로 뒤집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침대 밑과 서랍 밑을 뒤집고 먼지를 닦아 내고, 철 지난 옷가지와 묵은 신문들도 방바닥으로 쏟아졌다. 보물 찾기로 시작된 일이 집안 물건 정리 작전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재미가 일로 바뀌면 금세 지치기 마련이다. 얼굴에 가득하던 미소도 대화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때 나는 대뜸 중대 발표를 했다. 보물을 찾는 사람에게 십만 원의 포상금을 준다는 공표를 한 것이다. 어머니도 덩달아 십만 원을 더 얹어서 이제는 포상금이 이십만 원이 되었다. 수색 작전에는 다시 활기가 돌고,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도 밝아졌다. 시작한 지 세 시간이 다 되어 갈 때 즈음에 모두의 마음은 포기와 체념이 자리 잡았고 저녁은 무얼 먹을까 하는 대화로 넘어가고 있었고, 나 또한 아무런 기대도 없는 로봇처럼 옷장에 걸린 옷을 더듬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비스듬히 걸린 아버지의 점퍼 주머니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심봤다. 이건 확실했다. 넌지시 손을 넣어 그 크기와 무게를 확인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작은 손가방 크기의 지갑이 검은 봉지에 싸인 채 아버지의 점퍼 주머니에 비스듬히 들어 있었다. 세 번이나 옷장을 살펴보셨다던 어머니, 아내와 누님, 아이들까지, 모든 손들이 한 번은 거쳐갔을 옷장, 그리고, 나의 손길도 이미 두 번이나 지나간 곳이었다. 보물 찾기는 포기하기 전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닌 것이다.
이상하리만큼 나는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묵직한 지갑의 무게감,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릿함과 야릇한 미소 속에 머물며 잠시 더 음미하고 싶었다. 어떻게 이 소식을 발표하면 재미있을까. 큰 소리로 '심봤다'라고 할까, 아니면, 어머니 뒤에서 넌지시 전달해 줄까. 찰나의 고민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아주 평범하게 어머니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어머니의 손을 당겨서, 무심한 듯이 지갑을 건넸다. 어머니의 깜짝 놀란 눈동자, 기쁨의 미소와 놀라움이 올라오는 얼굴, 이어진 어머니의 큰 외침 '만세, 아이고 드디어 살았다'
안도와 기쁨이 살아났다. 드디어 설날을 즐겁고 평안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지갑 안에는 금반지와 목걸이, 팔찌가 나란히 들어 있었고, 부모님은 각자의 보물을 다시 걸쳤다. 반짝반짝 금빛을 내는 두 분의 손가락 사진이 카톡으로 온 가족들에게로, 외삼촌에게로 전해졌다. 스물다섯 명이 넘는 사람들의 마음이 걱정에서 기쁨과 안도로 돌아왔다. 괜한 투정과 역정, 오해가 가득했던 순간들에 모두 머쓱해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서로를 힘들게도 한다.
보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허둥지둥하며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삶의 많은 것들도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며칠이 지나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진료를 가게 되었다. 다시 만난 아버지와 어머니는 반지, 팔찌와 목걸이를 모두 끼고 계셨다. 구석에 넣어두면 뭘하겠냐시며, 살 날이 얼마 남았냐는 말씀과 함께 이제부터는 늘 끼고 걸고 다니실 거라고 한다. 반지가 작아진 것인지 아버지의 손가락이 커진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반지 낀 손가락에는 깊은 자국이 생겨있었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서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맹세라도 한 듯이, 한치의 빈틈도 없이 색 바랜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반지 자국처럼, 어떤 것들은 잃어버릴 뻔해야 비로소 제대로 새겨진다.
프루스트의 말이 몸으로 이해되었다. 새로운 눈은 먼 곳에서 오지 않았다.
너무나 평범한 낡은 점퍼 주머니 앞에서, 포기하려던 바로 그 순간에, 흐려진 나의 눈을 깨끗이 닦아 새롭게 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