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와 비교 사이에서, 나는 한 문장을 선택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주일에 세 편의 글쓰기. 때가 다가오면 어떻게든 다른 핑계를 찾아내어 키보드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올해는 꼭 출간 작가가 되겠다며 큰소리치며 뿌듯해했던 그 에너지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마치 길을 잃은 채 같은 곳을 맴돌다 답답함과 실망감 앞에 멈춰 선 것이다.
스스로 멈추는 힘은 온전함과 지혜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의도치 않게 멈춘 곳에는 혼돈과 무기력만 가득했다.
글에 대한 것이니 글로써 해결해 보고픈 욕심이 생겼다.
바쁘다…가식적인 핑계
일하느라 바쁜 것도 아닌데 무슨 앓는 소리냐 싶겠지만, 사실 살아 있다는 자체로 나는 늘 바쁘다. 한 번씩 뒤돌아보면 하루는 고사하고 일주일도 휙 하고 그냥 지나가버린다. 먹고, 자고, 운동하고, 가족 챙기고 친구 만나는 일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너무나 빠듯하다.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지지 못한 나에게 더욱 중요해진 것은 소소한 일상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나의 삶을 살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명상과 코칭 여정은 바쁘다는 핑계를 더욱 그럴싸하게 만들어주었다. 몸이라도 피곤해지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브런치 앱만 몇 번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은 나를 챙길 때야, 글 쓰는 거야 좀 미루면 어때, 내일도 있는데.
내 안에 살고 있는 악마는 맞는 말만 하기에 더욱 유혹적이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저 늘 반복되던 생각이라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와 답답함으로 일주일을 시작하고, 이내 지치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은 결코 아닐 텐데.
잘 해야 한다…무의미한 부담
브런치 글을 읽다가 주눅이 드는 순간이 많다. 특히, 구독자 수가 천명을 넘어가는 작가라든지, 댓글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려 있는 글들 말이다. 처음엔 부러움을 눈에 가득 담은 채, 월척이라도 끌어올리려는 낚시꾼처럼 진지하게 몰입했었다.
하지만 요즘엔 나에게 말을 거느라 중간에 멈추기 일쑤다. 왜 나는 이런 참신함도 뚜렷한 방향성도 없을까, 능력 탓인가. 비교하고 깎아내리는 질문들에 자꾸만 기운이 빠져나간다.
게다가 인공지능(AI)은 몇 초 내로 한 편의 글을 뚝딱 써내는 재주가 있으니, 나같이 지극히 평범한 개인이 글을 쓰는 것에 의기소침하지 않을 수 없다. AI와의 경쟁은커녕 AI로부터 솔직하게 도움을 구하는 입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잘 쓴 글, 도움 되는 글에 대한 부담을 계속해서 커져만 가고 있다.
열심히 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던 막연한 긍정성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온 것이다. 어깨에서 무거워져만 가는 부담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잘 알지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쓰고 싶은가?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한 때는 평생 학습 글쓰기 강좌를 막 끝낸 시점이었다. 나라는 존재, 나의 삶이 단 하나의 문장이 되어 무덤 앞 비석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나라는 물질은 작은 티끌이 되어 원래 기원한 곳으로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신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갔다는 흔적은 어디엔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싶었다. 이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문자와 글'이었다.
무엇을 쓰고 싶은가?
십 대 때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은 20대가 되고 나서는 '너는 어떻게 살고 싶어?'라는 것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주변을 돌아보고 남들을 살펴봐야만 했다. 결국 그들처럼 취업을 하고 가족을 챙기고, 앞만 보고 달리던 시간을 지나 50대가 되어 나는 다시 멈춰 섰다. 그리고, 마지막인 것처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는 변화가 필요했고,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그날, 한 문장이라도 쓰기로 했다. 잘 쓰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선택을 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의 삶은 어때야 할까?'
나의 답은 이것이었다.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다운 삶을 사는 것. 남들의 이야기를 베껴적은 것이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로 가득한 책과 같은 삶 말이다. 에너지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마음챙김과 코칭을 다시 시작했다. 아직 더디긴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은 확실하다.
결국, 나의 글은 나의 삶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다. 모르는 것에 답을 구하는 것은 이미 AI로서 충분하니, 나는 실제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겠다. 삶의 고민들에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실제적인 경험과 적용 사례들이 바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가까이서 보는 것과는 달리 멀리서 바라보는 삶은 서로 닮아 있다. 만약, 하나의 평범한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얼마나 행운이겠는가. 나를 돕고 남을 돕는 글쓰기,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면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성장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어떻게 써야 할까?
멋진 것들이 가득한 인형 뽑기 기계도 그것을 꺼내는 기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듯이, 글감으로 가득한 각자의 삶도 그러하다. 마치 탁월한 질문(프롬프트)의 기술이 AI에 필요하듯이, 삶과 글에서도 질문의 기술이 중요하다.
질문은 방향을 정해주며, 원하는 그곳으로 데려다주고 정리도 해 준다. 마치 오늘의 질문이 '나는 왜 글을 쓰지 못하고 멈춰있을까? 어떻게 해야 글을 쓸 수 있을까?' 였던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나만의 실제 이야기, 이것이 나의 글 쓰는 방법이 될 것이다. 나를 위한 글쓰기이자, 결국은 누군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멈춰 선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
어디 글쓰기뿐이겠는가. 계속 미뤄온 일들,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한 것처럼 자세히 보면 삶의 많은 부분들이 멈춰 있다. 내가 의도적으로 멈춰 세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의도치 않게 멈춰 있다. 단지, 보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멈춰 선 그것을 바라보며,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고, 다시 시도하는 것이 성장의 과정이다.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완전히 멈춰 섰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면, 언제든 다시 이곳에서 시작하면 그뿐이다. 누가 뭐라겠는가 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