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감사를 담아
아침 5시 30분부터 알람이 울기 시작한다. 뭔가 큰일이 난 듯이 울어대는 알람에 나는 아무 일도 없다고, 괜찮다고 텔레파시를 보내고 다시 눈을 조용히 감는다. 이번 달부터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리라는 나의 결심은 따뜻한 이불 안에서 사정없이 녹아내린다. 등에 가득 묻은 온기는 자꾸만 나를 이불속으로 끌어당긴다.
정신을 차려야지. 딱 한 번이면 돼. 머리밑의 베개를 빼서 옆으로 치운다. 침대 속으로 나를 가라앉히듯이 큰 숨을 몇 차례 내 쉰다. 그러고는 내 몸이 괜찮은지 찬찬히 살피기 시작한다. 양쪽 발가락은 제자리에 있는지, 왼쪽 무릎은 괜찮은지, 허리 디스크는 어떠한지, 가슴은 편안한지, 어깨, 뒷목, 머리는 멀쩡한지 살펴본다. 나의 몸이 밤새 편안했는지를 살피고 나의 몸과 소통을 하고 나면 어느덧 나는 고요해진다. 숨만 쉬며 한참 동안을 그저 고요하게만 머무른다. 참 아늑하다.
뭔가 큰일 난 듯이 갑자기 '쿵'하는 천둥소리가 들린다. 난데없는 이 소리는 순간 내 몸을 불안으로 가득 채우고, 나의 고요함을 산산이 깨어 흩어버린다. 소인국에 온 걸리버가 실수로 뭔가가 떨어졌나, 난쟁이가 된 나는 머리가 쭈뼛하여 온몸이 움츠려든다. 며칠 전 아이가 유리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여기저기 깨져 흩어진 유리잔의 파편들. 나는 난감해져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훈련소 때 처음으로 들은 벼락같던 총소리도 내 몸을 순간 마비시켜 한참 동안 멍하게 만들었었다. 다 모을 수도 없는 깨진 유리조각을 빗자루로 쓸어 담듯이 나를 추스른다. 머리를 말리던 아내가 실수로 바닥에 빗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다행이다.
고요의 세계에서는 모든 소리가 걸리버처럼 크다. 시계 초침이 한 칸 한 칸 걸어가는 소리며, 냉장고가 기지개를 켜는 소리도 놀랄 정도로 크게 들린다. 때로는 다음 걸음을 떼기 전의 시곗바늘이 긴장하는 소리도 들린다. 큰 것들에만 휘둘려 살다 보니 세상을 진정으로 가득 채우고 또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소리들에는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었나 보다. 늦기 전에 고마운 소리들을 알게 되어 참 다행인 아침이다. 나는 놀란 마음을 달래려 숨을 고른다. 들이쉬고 내쉬고.
코로 들어마시고, 코로 내쉬고. 코를 드나드는 '숨'은 나를 느닺없이 2005년의 겨울로 첫째가 태어나기 전날 밤으로 데려간다. 참 뜬금없는 시간 여행이다. 뒷산에 도토리나무가 많은 이유를 알고 있는가? 귀여운 다람쥐가 겨울식량으로 땅에 묻어놓은 도토리가 잊히고 나면 이듬해 봄이 되면 새싹으로 올라온다. 모든 자연스러운 것에는 이야기와 기억이 담겨있다. 몸의 구석구석에 고이 묻혀 있는 기억들의 도토리들. 그중 하나가 나무가되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혼 초년생인 우리 두 사람은 아직 모든 것에 서툴기만 했다. 우리들만의 세계와 믿음이 있었다. 바깥세상 사람들이 해오던 방식보다 좀 더 나은 다른 방법이 있다고 늘 믿었다. 뭔가 다르게 해서 성공하면 마치 파랑새를 찾은 듯이 기뻤고, '우린 이런 사람이야'라며 우쭐해하던 때였다. 아내는 같은 또래의 예비 엄마들과 함께 태교 교실, 수영, 그리고 요가를 배우며 자기 몸과 아이에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이고 있던 참이었다. 참으로 성스러운 시간들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아닌 다른 생명체를 위해 이토록 몸과 마음을 소중히 다루어본 적이 있을까? 특히 남자로 존재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새벽까지 이어진 회사 회식 뒷날 지구의 자전속도와 중력의 무거움을 온몸으로 체험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몸이 아프다고 온몸으로 말하기 전까지는 몸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알아서 잘 버텨주는 나의 몸은 나의 관심을 요구하지 않았다. 몸은 늘 나의 관심 밖에 있는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하얀 눈을 기대하게 만드는 흐린 저녁 하늘을 위에 두고, 집사람과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작고 추운 집에서 겨울을 맞이한 탓에 집사람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태어날 아기의 건강을 위해 감기약도 뒤로 하고 맨 몸으로 그저 버텨오던 중, 드디어 그날이 다가온 것이다. 우린 가족 분만실을 예약을 했다. 일반 분만실에 비해 비용도 더 비싸지만 흔히 접하던 방식이 아니다 보니 의아해하는 눈빛들만 주변에 가득했다.
혹시나 모를 걱정에 우리 두 사람은 예상보다 조금 더 일찍 병원에 들어섰다. 가족 분만실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환자용 침대와 간이 의자가 놓인 게 전부인 작은 병실이었다. 토요일 저녁이다 보니 담당 의사 선생님은 이미 퇴근하신 후였다. 월요일이 되어야 출근하신다는 말에 집사람은 갑자기 불안해지고 또 민감해지기 시작한다. 세상에 나올 시간은 아기가 스스로 정한다는 말이 있다. 어떻게 잘 될 거야 하는 막연한 믿음과 함께 우리 두 사람만 덜렁 병실에 남겨졌다. 가족 분만실은 가족끼리 알아서 낳으라는 말인가. 멍한 순간이 이어진다. 간호사 선생님은 주기적으로 병실을 들러서 아내의 상태를 체크하고 돌아가곤 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간호사님은 유도분만의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서히 산통이 짧아진다. 짧아지는 산통만큼 아내의 신경은 예민해진다. 조금의 변화에도 간호사를 불러 달란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맞닥뜨린 인생 최대의 위기 순간이다. 1분 1초가 지날 때마다 세상의 모든 불안과 걱정이 올라온다. 이러다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선생님도 안 계신데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옆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나의 마음엔 막연함만이 가득하다. 시간이 지나 새벽 2시가 되고 아내는 이제 숨 쉬는 것도 불안해한다. 나도 덩달아 불안해진다. 입장권처럼 손에 들고 들어온 막연한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게 있었나 싶을 만큼 약해져 힘이 약해진다. 예비 엄마 교실에서 배운 호흡법을 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잘 안되나 보다. 큰 숨을 쉬어야 하는데 아내의 숨은 자꾸만 짧아지고 얕아져만 간다.
결국 아내는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숨을 쉴 수 있게 구령을 해 달라고 한다. 다행히 간단하다.
'코로 들어마시고, 입으로 내뱉고'. 아내는 나의 구령에 맞추어 숨을 쉬기 시작한다. 조금 전과는 달리 숨이 깊어지는 것이 보인다. 다행이다 싶다. 어느덧 나도 구령에 맞춰 숨을 쉬고 있다. 신기하다. 구령에 맞추어 아내와 나는 함께 숨을 쉬고 있다. 처음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나 아닌 누군가와 이렇게 오랫동안 숨을 나눈다는 것이 처음이다. 사랑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리라.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고,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고,..."
한동안 같은 말을 반복한다. 서서히 남자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발음이 무뎌진다. 조용히 고개가 앞으로 숙여진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여자는 남자의 팔을 힘주어 잡으며 세차게 흔든다.
"여봇!!! 똑바로 해 줘요"
여자의 불호령에 남자는 얼른 정신을 차린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숨쉬기 운동은 점차 고된 노역으로 바뀐다. 매 순간이 긴장인 아내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나의 구령이, 나에게는 무료하고 지루함이 되어 어느새 졸음으로 치닫는다. 그런 불호령이 몇 번 지나고, 아내와 간호사 선생님 사이의 신경전도 몇 번 지나간다. 애씀만이 가득한 숭고한 가족분만실에 어느덧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걱정, 불안, 날카로움, 졸음을 함께 지나고 드디어 아침이 오고 나는 분만실을 나왔다. 아내의 부탁으로 나는 밖에 홀로 남겨졌다. 사랑하는 만큼 지켜주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다. 건강한 남자 아이다. 나를 닮아 머리가 길고 새까맣다. 경전을 가지러 서역에 가는 삼장법사를 호위하는 손오공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다. 그저 건강하여라. 오직 그 한 가지 바람만을 눈빛에 실어 아이에게 보낸다.
밤새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웠던 아내는 정말 고맙다며 간호사님에게 감사의 눈물을 보낸다.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소쪽새는 봄부터 울어야 하고, 한 알의 대추를 붉히기 위해서는 몇 번의 태풍과 천둥이 지나가야 한다.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나기 위해서 30여 년의 우리 두 사람의 모든 인생과 사랑이 필요했으리라. 모든 생명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다.
한 생명이 태어나면 세상도 그만큼 바뀐다.
고통의 밤이 환희의 아침으로 바뀌고, 병원 위에서 밤새 찌푸린 표정으로 말없이 지켜보던 하늘은 아이의 탄생에 맞추어 하얀 첫눈을 내려 주었다. 밤을 새워 고된 몸과 마음엔 따뜻한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찬다. 이 세상은 36.7도만큼 더 따뜻해졌다. 이 세상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수고 많았어요, 여보.
당신 덕에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어요, 참 고마워요.
첫째 아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아내는 아직도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고'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그때의 내 목소리는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소리였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오히려 내가 더 고맙다. 긴박했던 그날 밤의 순간을 나는 아내만큼 진지하게 대하지 못했다. 늘 미안하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정을 온전히 견뎌내 준 아내가 존경스럽고 또 너무나 감사하다.
요즘은 나를 위해 숨을 쉰다.
나를 위해 쉬는 숨은 '코로 들이마시고, 코로 내뱉는다'. 다만 매 순간의 숨에 나의 모든 주의를 기울인다.
마치 이 세상에 나의 코와 숨만 존재하는 듯이, 그리고 내가 숨이 된 듯이 숨을 쉰다.
그러면 고요가 다시 찾아온다. 그 고요함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어간다.
오늘은 아름드리 기억 나무에 걸려 있던 사랑과 감사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