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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실종 사건: 사라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편견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우리 부부는 낡은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옷장을 정리하다가도 한참 동안 그 옷을 입었던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신혼여행, 가족 여행, 선물 받았던 기억들. 옷 하나로도 우리는 금세 그때의 미소를 떠올린다. 버려질뻔한 옷들은 정겨운 이야기를 머금고 다시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옷들도 나이를 먹어간다.


"여보, 내가 늘 끼던 가죽 장갑을 찾고 있는데, 잘 안 보이는데..."

"겨울 용품 두는 곳에 찾아보세요."

"거길 찾아봐도 없는데, 애들 옷장에도 없고... 장갑 끼고 휴대폰 터치가 가능해서 딱 좋은데..."


이번 겨울 내내 나는 아내가 선물해 준 가죽 장갑을 찾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장갑. 서랍장을 뒤지고, 아이들 옷장까지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흔적조차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장갑을 끼고 마트에 가고, 산책을 하고, 등산도 다녀보았다. 하지만 손은 늘 겉도는 듯했고, 마음 한편에는 아쉬움이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장갑이 사라진 이유를 가족에게서 찾고 있었다. 아이들이 숨겼나? 아내가 정리하다가 잘못 둔 걸까? 나는 확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기적처럼 그 장갑이 나에게 다시 나타났다. 겨울 동안 입어 주지 않아 미안했던 커플 깔맞춤 외투를 입고 나가던 참이었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장갑이, 너무도 익숙한 그 촉감이, 내 손끝에 닿아 있었다. 좁고 어둡고 컴컴한 옷장 속, 깊은 주머니 속에서 겨우내 밖으로 나가기를 학수고대했을 장갑. 그저 내가 찾아주기를, 나의 손길이 자기를 그리워해 주기만을 기다려온 장갑이었을 것이다. 마치 잊어버린 기억을 다시 찾은 듯, 오랜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듯이, 날아갈 듯이 기뻤다.


생일 선물로 받던 순간, 코로나전 마지막으로 간 온 가족 강원도 여행의 기억, 늦은 밤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던 기억, 날이 밝아 아침이 되었을 때 우리가 만든 눈사람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할 때의 자랑스러움,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살아났다. 그때 찍은 사진들은 아직 휴대폰에 남아 있지만, 그날 밤의 즐거운 감정의 기억은 장갑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시 나의 손은 따뜻해지고 겨울도 포근해졌다.


반가움과 함께 미안함이 몰려왔다. 분명 그 외투에 장갑을 넣은 건 나였을 텐데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장갑이 사라진 이유를 나는 너무 쉽게 확신했다. 내게는 하나의 이야기만 있었다—‘가족이 실수로 장갑을 어딘가에 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장갑이 사라진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순간, 다른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겨울 내내 나의 장갑을 찾아 주려 애쓰는 아내의 마음도, 내가 가진 따뜻한 관계도 보지 못했다. 나 자신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만의 생각과 주장들로 똘똘 뭉쳐진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항상 불완전하다. 더럽혀진 렌즈를 끼고 우리는 늘 세상을 탓한다.


우리는 남을 너무 쉽게 단정 짓는다. 각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판단해 버린다. 그리고 그들에게로 잘못을 돌린다.


판사들의 최종 판결문에 대해서도 불만이 생겨나는데, 하물며 보통의 사람들에게 남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까?

판단이 아직 우리 안에 머물 때는 생각의 자유라는 보호를 받지만, 행동으로 드러날 때는 많은 경우 문제로 발전하고 만다. 우리는 왜 그런 걸까?


우리는 연약한 존재로 태어난다.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가족과 사회의 보살핌이 절실했다. 연약함, 그것이 우리들의 시작이었다. 생존하는 법을 배우고, 역경을 이겨내며 우리는 성장하고 지혜로워진다. 그리고 또 다른 연약한 존재들에게 보살핌을 제공하는 든든한 구성원이 되어간다. 연약함, 보살핌, 도전, 가치, 믿음, 성공, 실패, 사랑 등 이 모든 경험들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이야기가 되어 우리 안에 살아간다. '인간은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로 미루면 내가 하고 만다, 책과 운동과 악기는 삶의 보약이다, 울적할 때는 산책을 한다, 작은 병은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 사랑은 언제나 위대하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언제나 안전이 제일 우선이다, 회에는 소주 그리고 막걸리에는 파전이다, 등등' 내 안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것은 삶의 가치와 처세술을 이야기하고, 또 어떤 것은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가득 담은 고유한 존재가 된다.


풍성한 이야기를 가지고 세상을 대할 때는 여유와 유연함이 생기지만, 하나의 이야기로만 세상을 보게 되면 우리의 생각과 판단은 금세 굳어 딱딱해지고 만다. 긴박한 위기의 순간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몸이 먼저 긴장을 하고, '생존해야 한다'는 것이 최우선 이야기가 되어 모든 것을 위험과 안전으로 구분하기 시작한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서 이런 강렬한 경험들은 아주 분명한 이야기로 우리 안에 새겨진다. 충실히 삶일수록 이야기는 더욱 단단해지고 결국 우리를 지키는 가장 든든한 방패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믿고 있는 이야기가 때로는 ‘편견’이 되기도 한다. 각자의 경험에서 얻은 진실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보편적인 가치가 아닌 특정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라면,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오해하고, 갈등이 생겨난다.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하며 나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지켜주던 방패가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무기로 바뀌는 때이다. 뉴스에 사랑과 화합의 이야기 대신에 갈등과 분열이 더 많이 담기는 건 우리 삶이 그만큼 다양하고, 충실하고 또 녹록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상황에 휩쓸린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결국 스스로 세상과 분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익숙하고 편하고 쉬운 것을 추구한다. 2012년 개봉한 '어벤저스' 영화에 로키는 마인드스톤이 장착된 무기 (로키 셉터)를 들고 나온다. 상대방의 가슴에 대는 즉시 마음을 조정할 수 있게 되는 강력한 무기이다. 현실에서는 다행히 로키가 없지만, 우리는 늘 그런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로키 셉터에 당한 것처럼 금세 바뀌고 만다. 나는 나름대로 공정한 사람이고 싶지만, 어느새 남들을 탓하는 속 좁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러지 않으려면 늘 알아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위험한 것은 언제나 쉬운 곳에 있다.


진실한 삶의 이야기는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어떻게 해야 방패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고유한 이야기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늘 자신의 이야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그 렌즈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조급한 판단을 유보하고, 열린 태도로 듣고, 직접 경험하며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보는 방법이다.

가끔은 내가 가진 이야기들을 꺼내어 손질할 필요가 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가 있는 게 우리들의 이야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살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지, 지금도 슬그머니 숨어 들어오는 이야기가 있는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나 소셜 미디어 같은 주변 환경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안에는 이미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때로는 그것을 잊고, 하나의 이야기만 붙잡고 살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든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 내 안의 풍성한 이야기들을 믿어보자. 그리고 세상을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자. 독자가 아닌 작가가 되어 나에 대한, 나를 위한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가자. 그럴 때 우리의 삶도 더 따뜻하고 넉넉해질 것이다.


여러분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살아가고 있나요? 지금 이 순간,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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