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느 날 해운대 달맞이 길에서 구름과 안개의 의미를 따져본 적이 있다. 하나는 아주 멀리 내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바로 내 곁에서 나를 둘러싸고 껴안는다. 같은 성질의 것이라도 자리한 위치만으로 현격한 정체성의 차이를 드러낸다. 구름이 상상과 동경,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동안, 안개는 불확실성과 상실, 숨겨진 것들을 조영 한다. 미래와 현재,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의 대비를 이렇게 잘 드러내는 것이 또 있을까?
모든 것에 열려 있던 어린 시절에는 종잡을 수 없는 구름이 참 재미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에 덩달아 일어나는 상상과 미래에 대한 동경,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였다. 게다가 태풍이 지나간 후의 구름은 또 어떤가. 시원한 바람 위로 하늘을 온통 검게 뒤덮은 구름 더미와 그 위로 얇게 얹힌 하얀 구름. 틈 사이를 비집고 땅으로 내리 꽂히는 빛줄기의 장쾌한 모습은 모든 생각들을 멈추게 한다. 하늘 가득 벌어진 경외로움은 내 안의 모든 고민거리를 단박에 잘라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의지를 심어준다.
고등학생 때 만난 안개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 같았다. 통학길에 지나는 다리는 댐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탓에 폭포수처럼 방류되는 물과 안개가 어울려 멋진 풍광을 만들곤 했다. 시월의 어느 아침, 등굣길 버스 안이었다. 밤샘 공부로 비몽사몽 하던 나는 갑자기 차갑고 서늘한 기운에 화들짝 잠을 깨고 말았다. 순간 버스와 다리만이 분명하고 창 밖의 모든 사물은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 마치 수험생에게는 집과 학교, 독서실만이 세상의 전부라는 듯이, 많은 것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자욱한 안개 속에서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여름철 해운대의 안개는 바다 안개 또는 해무(海霧)라고도 부르는데, 꼭 뭍에 나온 바다거북 같다. 한 번 시작되면 먼바다는 물론이고 백사장을 넘어 어느덧 장산의 중턱까지 차오른다. 거북이 느리다고는 하나 경주에서 토끼를 이길 정도이니 결코 그 속도를 가벼이 볼 수만은 없다. 바다 안개는 몰려오는 시간도 일정치 않거니와 한 번 시작되면 하루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많아 종잡을 수가 없다. 자세히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금세 놓쳐버린다.
특히 퇴근길이 막혀 답답하던 차에 바다 안개까지 더해지면 만만찮은 낭패를 보게 된다. 뭔가에 눈두덩이를 세게 얻어맞은 듯이 눈앞이 멍해지고 방향감각마저 잃어버린다. 당황스러움 속에서 결국 사고 능력까지 무력화되어 버린다. 도로 위의 차들은 갑자기 거북이로 둔갑해서 느릿느릿 움직이고, 나는 하염없이 답답해진다. 느려서 답답한 것인지 답답해서 느려진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오직 분명한 것은 희미함과 느림, 그리고 아주 두꺼운 답답함이다. 언제 물러날지 모르는 바다 안개 속에서 시간은 거북이보다 더 느리게 간다.
삶의 안개는 어떤 모습일까? 또 어떤 느낌일까?
50에 들어서며 회사를 떠났다. 하늘의 구름이 내 모습인 양 늘 올려다보며, 모든 불합리를 바꾸고 말겠다는 기개를 품었던 회사, 그 정든 자리를 떠났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그냥 내 발로 걸어 나온 것이다. 나름의 시도와 도전이 결과를 맺지 못하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내 힘이 부친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제일 먼저 내 안에서 나를 지탱하던 힘이 약해져 간다. 이것이 바로 상실감이다. 철이 들어가고 가족이 성장하는 사이에 나는 기력을 잃은 채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해운대(海雲臺)는 신라시대 최고의 석학 중 한 분인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에 의해 탄생한 이름이다. 안개와 구름이 주변 경치와 함께 장관을 이룬 이곳이 말년의 지친 그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구름과 같이 높은 꿈을 품은 선생은 13세에 유학을 떠나 6년 만에 당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였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출세의 길을 스스로 개척한 것이다. 그 후 고국인 신라로 돌아와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고도 결국 구조적 차별과 쇠망해 가는 고국을 변화시키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결국 50 남짓한 나이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안개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선생이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았던 해운대의 구름과 안개이기에 더욱 인상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선생의 위대한 삶과 평범한 나의 삶 사이에 공통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불온하게 비칠 수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모습은 생각보다도 더 보편성을 지니고 있음을 잘 알기에, 외람된 나만의 시각으로 묘한 지점에서 살짝 겹쳐 보았다.
삶의 성숙이 안개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인지 몰라도, 나이가 들어가며 안개가 주는 오묘한 매력에 스며들어간다. 마치 따스한 솜이불에 둘러싸인 것처럼 포근하기까지 하다. 느리고 답답하던 감정들도 오히려 여유와 운치로 바뀌고, 10미터도 채 안 되는 짧은 시야는 다행스럽게도 생각이 미치는 거리마저 줄여준다. 밭에 나는 잡초를 덮어 막아주는 검고 두꺼운 비닐처럼 쓸데없는 생각들을 모두 덮어 버리는 두꺼운 안개는 오히려 감사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빨간 신호등에서 멈춰 서기라도 하면 선물 같은 고요함마저 찾아온다.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안개 속에서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익숙한 모든 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진다고 허망해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지워버리는 안개 속에서 정신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좁고 깊은 시선은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그리고 내 안으로 향한다. 자유의 방향은 밖이 아니라 안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렇게 삶이 한층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