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자라기
김윤성 시인 <그냥 그대로>
한결같이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다.
누가 날 찾지 않는다.
또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결같은 망각(忘却) 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의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고 한다.
나무 한그루를 심고서 매일 그 나무를 뛰어넘다 보면 언젠가는 집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무슨 허무맹랑한 이야기야?' 하실 테지만, 저에게는 제법 진지했던 어릴 적 꿈이었습니다. 작은 나무를 골라 일주일 동안 뛰어넘기를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맣게 잊어버렸지만요. 대신 무럭무럭 커가는 나무를 보면서 나도 그렇게 자랄 거라며 막연히 믿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에 예술가가 되고 싶어 졌습니다. 공부를 좀 한다며 과학자를 동경하기도 하고, 비행기가 멋져 보여 파일럿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꿈이 곧 삶의 목표였습니다.
하지만 이십 대가 되자 '꿈'이 있던 자리는 어느새 '직장'이라는 단어가 주인처럼 떡 하니 자리 잡았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고 집을 사야만 하는 의무감들만 선명해졌습니다. 남들보다 잘 해내는 것이 세상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었고,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옆을 보지 못하게 시야를 가린 경주마처럼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하지만 비교와 경쟁은 언제나 부담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경기장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한 참을 지나 다시 출발점에 섰습니다. 이전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입니다. 이런, 혼자 서있는 출발점이라니요. 언제 출발할 건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도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나 혼자이니 경주라고 할 수도 없겠군요. 마치 버스를 타고 여행하다 모르는 곳에 혼자 내린 것만 같습니다.
눈이 나빠질수록 더 잘 보이는 게 무언지 아시나요?
바로 '나'와 '나의 삶'입니다.
돌아보니 지난 경주들도 모두 나 혼자였더군요. 바로 옆에서 경쟁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사실 모두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더군요. 괜히 나 혼자 비교하고 힘들어하며 스스로 작아졌나 봅니다. 난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데,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찬 출발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제 와서 무엇을 어쩌겠습니까, 받아들일 수밖에요.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어릴 적 뛰어넘던 그 나무가 생각납니다. 이제는 내 키의 몇 배는 되었겠군요. 장맛비와 뙤약볕, 그리고 얼음장 같은 추위도 순순히 받아들이며 매년 꽃과 가지와 나무를 내었겠지요. 그런 자신을 대견해했을 겁니다. 누구의 시선도 바라지 않고 그저 하늘 높이, 더 넓은 자유를 향해 우뚝 선 나무는 이제 남들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었을 겁니다.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어릴 적 그 나무를 계속 뛰어넘었더라면 지금 쯤 나는 세계적인 높이뛰기 선수가 되었을까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나무들이 스러져가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 어디선가에서 비교와 경쟁에 지쳐 시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도움이 될까요?
인생은 좁은 길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길을 혼자서 걸어간다는 것을,
그래서, 남들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 마치 거울 앞에 선 것처럼-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모두 서로 다른 나무라는 것을요.
여러분은 어떤 나무가 되려고 하고 있나요?
https://youtu.be/vXhg-jUpOdY?si=xts4HLdnWtts4V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