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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 함께 늙어 가기

13년 지기 반려차와 나누는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

그가 아프다. 십 년이 넘도록 함께 달려온 그가 최근에는 부쩍 아파한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든다는 게 이런 것인가. 더 이상 예전 같지가 않다.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작은 문제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잘 달리다가도 한 번씩 주춤하는가 하면, 때로는 출발할 때조차 쉽게 발을 떼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심지어, 천천히 달리는 구간에서는 갑자기 멈춰 서기도 했다. 심장 쪽일까 혈관 쪽일까? 갑자기 쓰러지면 어쩌지, 이별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인가? 잘 모른다는 사실만큼 걱정을 키우는 것이 또 있을까? 걱정은 제 몸집을 키워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와 함께 달리면 한없이 든든했다. 한여름 불타는 햇볕과 퍼붓는 소나기, 칼날 같은 겨울바람과 깜깜한 밤길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함께 했던 찬란한 순간들이 눈물 터지듯 한꺼번에 올라왔다.


급하게 찾은 센터에서는 뾰족한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있다는 것은 문제도 복합적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증상이 더 심해질 때 다시 오라는 말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의 빈약한 말로는 문제의 심각성이 설명되지 않나 보다. 소중한 만큼 절실함도 커진다. 외진 곳에 있는 작은 센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우리는 지체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절실함에는 응답이 있는 것일까? 기관지 쪽 문제가 확실하다고 진단을 했다. 치료 과정도 복잡하지 않고, 회복 과정도 자연스럽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다만 나이가 있으니 며칠 입원치료 하면서 다른 쪽도 검사를 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 참 다행이다. 그와 계속해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괜한 이별을 걱정했던 것 때문에 그에게 미안해졌다.




카니발 리무진,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3년 전쯤이다. 이름도 참 멋졌다. 축제를 말하는 카니발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리무진이라니. 12인승 그랜드카니발의 복잡함이 아니라, 같은 크기에서 9인승으로 줄여 만들어낸 넓은 공간은 고급스러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언제든 의자들을 탈부착할 수 있어 물건을 나르거나 차박을 할 수 있는 유연함과 유용성을 겸비한 차였다.


그를 집으로 데려 오는 어스름한 저녁 내내 아내는 평소보다 수다스러웠다. 아직은 어색한 새 차를 운전하느라 잔뜩 긴장했었지만, 아내와 나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우리 가족의 시선이 향하는 어디든 고급스러운 축제의 마당을 펼쳐줄 것만 같았다. 부유한 귀족의 저택에서 모든 것을 척척해 주는 노련한 집사와 같은 그는 첫 만남부터 우리 '가족'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아이들과도 금세 친해졌다. 넓은 뒷자리가 자기 방 같다며 친구를 불러 하루 종일 차 안에서 놀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큰 덩치를 가진 그를 아이들은 믿음직스러워했다. 넓은 공간은 부모님들이 더욱 좋아하셨다. 좁은 차속으로 구겨 넣어진 채 어깨와 어깨가 포개지던 가족 여행은 옛말이 되었다. 여유로움은 짐 싣는 공간은 물론이고 대화에서도 묻어났고, 우리는 더 먼 거리로 여행을 다녔다.


어디로 여행 갈까요? 하고 물어보면, 아버지는 늘 전라도를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순천, 목포, 곡성, 진도까지 꽤나 먼 거리를 다니면서도 피곤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음식이 참 맛나다고 하셨다. 부모님과 우리 다섯 형제자매만 한 차에 가득 타고서 다녀온 춘천과 남이섬도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며느리와 사위, 손주들을 모두 뒤로한 정말 우리끼리만의 첫 가족여행이었다. 사진 속의 부모님은 늘 웃고 계셨다.


차박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시원한 송정바다의 파도소리를 옆에 두고 우리는 차 안에서 노랑통닭에 캔맥주를 마셨다. 10분 남짓 달리면 도착할 집을 비워둔 채 우리는 송정 바닷가에서 자주 밤을 새우곤 했다. 서늘한 가을밤 공기 때문에 차량용 전기장판을 사고, 차량용 전기 포터로 라면도 끓이면서 우리는 트렁크에 걸터앉아 밤바다를 관람했다.


운전이 재미있는 이유는 여행이 즐거워서 일 것이다. 그중 가장 행복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이 눈앞에 현실로 드러났으니 말이다.


그는 나의 반려차다. 낯설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살아있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도 아니고, 한낱 물건에 지나지 않는 차에 '반려'라는 표현이라니 하며 고개를 가로저을지도 모르겠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으며 생기는 연대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힘들고 외로울 때 내 품을 파고들어 포근함을 주는 것도 아니요, 한결같이 나를 응원해 주는 따뜻한 눈빛과 꼬리 흔듦도 없다. 하지만, 생명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반려'라는 표현을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확실히 '차별'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의 삶에서 그가 없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롭거나 화날 때도 그는 언제나 나에게 공간을 내주었다. 나의 어떤 친구들도 그는 기꺼이 환영해 주었고, 친구들도 그를 좋아했다. 추위와 비를 피하는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피로를 덜어낼 침실이 되어 따뜻한 음악으로 위로해 주기도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나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면서도 우리는 서로 닮아 갔다.


생명이 있든 없든 나이가 드는 것은 동일하다. 부품만 갈아치우면 새것처럼 작동한다는 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거짓말이다. 낡고 고장이 나서 고치고 나면 절대 예전 같지는 않았다. 나를 기록하던 카메라도 가죽이 바래졌고, 자전거도 어느새 녹이 슬었고, 시디 플레이어는 결국 직직 긁히는 소리를 내며 나이를 먹어갔다.


갈아 끼울 부품마저 단종되고 나면, 그들은 그대로 멈춰 서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고 만다. 세상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이 없다.




수리하는데 3일은 걸릴 거라더니 하루 일찍 연락이 왔다. 허둥지둥 수리센터로 걸어가는 내내 나는 궁금해했다. 말끔히 수리되었을까, 진동은 줄었을까, 부모님 모시고 입대한 아들 면회는 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렇게 몇 년은 더 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내 주기만 해온 그도 이제 보살핌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그동안의 내 삶을 든든히 지탱해 준 고마움을 이제는 보살핌으로 답해야겠다. 내가 감기 걸릴 때면 그의 상태도 같이 살피고, 기름을 넣을 때면 내 속도 챙겨봐야겠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보살핀다는 말일 것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스스로를 보살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많이 서글플 것 같다. 상상하기도 싫은 그때를 위해서만은 아니더라도,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한 물건들에 애착을 담아 곁에 두고 함께 보살피자. 어차피 따뜻해질 거라면 지금부터 따뜻해져도 좋지 않을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는 이미 24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지구의 둘레가 4만 킬로미터라고 하니, 그와 나는 이미 지구를 여섯 바퀴 넘게 돌아다닌 셈이다. 이제 나의 목표는 그와 함께 30만 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평생 함께 달리고 싶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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