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만의 속도로 하루를 연다.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만의 의식이 있나요? 남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매일 반복되는 나의 하루를 여는 의식 같은 행동 말입니다. 마치 100m 달리기 출발선에서 '탕'하며 울리는 출발 신호와도 같은, 나만의 시작 신호입니다.
저에게는 '커피 내리기'가 하루의 시작 신호입니다. 따뜻한 온기와 고소한 커피 향기는 아무리 꿀꿀한 기분이라도 금세 다시 올려줍니다. 게다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면 대화의 분위기를 더욱 띄워줍니다. 커피는 언제나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6~7년 동안이나 계속된 커피 내리기 루틴은 나의 아침에 든든하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굳이 '중독'이나 '의존'같은 단어로 이 소중한 시간을 무겁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국 커피 한 잔일뿐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 커피의 마법에서 벗어나기 싫습니다.
이틀 전이었습니다. 눈을 떠 보니, 출발해야 할 시간이 채 20분도 남지 않았더군요. 사나운 개를 피하듯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대충 마치곤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아내를 제시간에 출근시키려면 이러는 수밖에 없습니다. 커피를 내리는 데 최소한 5분은 걸리니 어쩔 수 없습니다. 물을 끓이는 동시에 두 잔 분량의 커피콩을 핸드밀(그라인더)에 담습니다. 핸드밀을 돌리면서 아이를 깨우고, 아침은 토스트빵으로 먹으라고 일러둡니다.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아침에도 커피는 묵묵히 자신의 속도를 지킵니다. 30초 정도 커피가루를 불리는 시간, 그리고 서너 차례에 걸쳐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변함이 없습니다. 급하다고 물을 너무 뜨겁게 하거나, 너무 많이 또는 빨리 붓고 나면 커피 맛이 너무 써지거나 또는 묽어지기 십상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커피 맛과 향을 내기 위해서는 정해진 대로 해야만 합니다. 나의 하루가 뒤죽박죽일 때도 커피는 늘 흔들림 없이 중심을 지켜냅니다.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이 깃들어 있는 커피의 중심, 나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핸드밀을 돌리면서 다리와 골반을 스트레칭을 합니다. 커피 내리는 동작은 어차피 손과 팔이 하고 있으니, 다리와 허리는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뜨거운 김이 잠잠해진 물을 부으면, 커피 가루는 보글보글하는 거품과 함께 고소하고 찐한 향을 내보냅니다. 커피 향에 이끌려 이런저런 기억이 거품처럼 피어올랐다가 터지기도 합니다. 아이를 깨우러 한번 더 출동하는가 하면, 느린 걸음으로 주방을 한 바퀴 돌아오기도 합니다.
30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도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는 걸 보면 시간은 참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고민할 때도 옆에는 커피 한 잔이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뜨거운 물로 작은 원을 그리는 동안 짙은 색의 커피가 아래로 졸졸 내려옵니다. 정신없이 부산한 아침 분위기와 작은 틈새들에서 찾은 여유가 한데 섞인 아침 커피는 두 개의 보온병에 밀봉되어 식탁 위에 놓입니다. 이렇게 커피는 자신의 준비를 마치고,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아내의 하루에 무언가를 보탤 수 있다는 나의 효용감, 아무 이유 없이 멍해지는 나의 오전 10시를 맑고 투명하게 지켜낼 수 있다는 든든함이 보온병 속에 함께 들어있습니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너무 늦게 일어난 날에는 어쩔 수 없이 커피를 건너뛰어야 합니다. 묘하게 미안하고 허전한 마음이 오전 내내 이어지다 보면, 나의 일상을 지켜주는 커피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꼭 일찍 일어나야지 하며 다짐합니다.
삶은 일상으로 채워지고, 일상은 또 반복으로 이어집니다. 반복된 작은 패턴이 깨어질 때면 신기하게도 우리는 삶의 신비로움에 대해 알게 됩니다.
쫓고 쫓기며 경쟁하듯 살다 보면 지친 자신의 얼굴도 보이고, 숨은 그림 찾듯 부족함만을 골라내다 보면 어느새 본연의 나를 잊게 됩니다. 커피가 가진 본연의 속도와 리듬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아무리 남들을 베끼려 해도 결국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을 타야만 세상에 둘도 없는 자신만의 맛과 향기가 나옵니다.
나를 잊지 않으려 오늘도 커피를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