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월요일 아침의 깨달음

우연한 만남에서 배운 삶의 태도

20분의 늦잠이 뭐 그리 대수냐 싶지만, 월요일 아침이라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나의 모든 세포는 아내의 출근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모닝커피는 까맣게 잊힌다. 월요일 아침엔 왜 차가 막힐까? 주말부부에게만 책임을 묻기엔 도로 위 차들은 너무나 많다. 늦잠도 주요 이유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안달하며 걱정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이 또 있을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들로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때 즈음에 차들도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곧 자신을 보살피는 것, 아무리 바쁜 출근길에도 얻어가는 것이 있구나 싶다. 신비로운 월요일 아침이다.

출근 미션이 완료되어 세포들이 긴장을 풀고 나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커피 한잔을 마시기로 결정한다.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인듯한 작은 카페엔 종업원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계산대 바로 옆으로 포스터 한 장이 붙어있고, 테이블 하나엔 커피와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아래 놓인 의자엔 통기타 하나가 목을 길게 빼고 나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커피잔 옆에는 오선지인 듯 악보 같은 종이도 보인다.


'이렇게 아침 일찍 기타를 가져오다니, 작곡가인가?'

혼잣말을 하며 커피를 주문한다. 주문받는 목소리는 분명 젊은 여성이 아니다. 궁금증이 올라온다. 커피를 받고 계산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분의 얼굴을 슬며시 살펴본다. 생각보다 많이 젊지 않은 얼굴에서 따뜻한 눈빛과 미소가 드러난다. 실버 카페도 있으려니 하며 자연스럽게 넘어가려던 차에 대화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역시 나의 머리였다.

"예술하시나 봐요?"

"아니에요. 그냥 예술적으로 살려고 해요."


새치가 반반 섞인 긴 곱슬머리의 중년은 일단 예술가가 아니면 최소한 대학교수로 인식된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호기심과 의심의 눈초리는 쉬이 가시지 않는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빈말도 아니다. 세상의 시선에 스스로를 주눅 들지 않게 하려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고, 사진과 그림, 음악을 좋아하니 예술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런 대화도 사실 은근히 즐기고 있으니, 어쩌면 나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제가 가수예요. 여기는 제 딸이 하는 카페인데 아침에 잠시 도와주고 있어요."


그제야 포스터에 담긴 얼굴이 또렷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또렷한 얼굴과 검고 짙은 눈동자, 누가 70대 할머니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녀는 자작곡 '아버지의 눈물'에 담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치 무릎을 베고 누운 어린 손녀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듯이.


"부잣집에서 세끼 밥 거르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야. 아빠가 나중에 꼭 데리러 올게. 이곳에서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잘 지내고 있어. 알았지?"


강원도 작은 산골 마을 소작농의 딸, 아홉 살 영란이는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잣집 수양딸로 보내졌다. 말이 수양딸이지 사실 식모로 보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쌀밥 먹을 생각에 마냥 들떴던 어린 소녀가 상처받은 작은 영혼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참 후에 딸이 사는 곳을 겨우 수소문해서 찾아온 아버지, 그 앞에서 터져버린 야속한 눈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딸을 뒤로한 채 뒤돌아서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홉 살 손녀딸을 둔 칠십 대 할머니가 된 영란이는 이제 멋진 트로트 가수가 되어 그리운 아버지를 부르고 있다.


그립고 슬픈 가정사를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오히려 맑고 명랑했다. 세월이 지나면 슬픔도 연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슬픈 기억이 때로는 삶의 에너지가 되는 것일까. 허긴, 슬픈 이야기라고 매번 슬프게 울먹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혼자 생각이 깊어지는 중에 갑자기 이야기 주제가 바뀐다.


"최근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쉽지는 않네요. 언젠가 무대에 올려 보려고 손님 없을 때 이렇게 연습해요"

"제가 비록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30년 넘게 기타를 쳤어요. 제가 한 번 봐드릴까요?"


무엇이 힘든지, 어떻게 연주해보고 싶은지, 학원에 다니고 있는지, 기타는 언제 산 것인지. 짧은 질문과 대답이 한참을 오가고 기초 조사가 완료된다.


중학교 3학년 때 나의 첫 기타를 샀다. 항상 내 뒤에 든든히 서있던 기타는 시험공부에 지친 나를 달래주기엔 충분했다. 아주 잠깐 기타리스트를 꿈꿔보기도 했지만, 기타는 취미로만 하기로 결정했던 듯하다. 30년에 걸친 내공을 전수할 마음이 자못 바빠진다.


코드를 잡을 때는 소리 내는 순서로 줄을 누르면 편하다, 노래에 맞게 강약을 조절하면서 스트로크해야 한다, 때로는 스트로크 없이 노래만 해도 자연스럽다,... 그녀가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더니 녹음을 해야겠다고 한다. 내가 욕심이 과했다. 혼자서 우쭐거렸던 모양새가 우습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에 카페에 올 때마다 봐주기로 했다.


유튜브에 담긴 그녀의 모습은 더 다채로웠다. 'Memory'라는 앨범을 시작으로 부산 인근 지역 행사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에는 색소폰 연주 영상도 보였다. 팍팍한 삶 때문에 스스로 눌러왔던 열정은 황혼이 되어서야 활짝 피우게 되었나 보다. 영상 속의 그녀의 얼굴은 항상 미소가 머금어 있었다. 삶의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와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나의 칠십 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역경과 고뇌를 통해서 삶이 단단해진다고 하는데, 그녀에 비하면 나의 삶의 너무나도 평범하고 평온하다. 바람 부는 언덕에 스스로 피어난 야생화 같은 그녀에 비해 나의 줄기와 잎은 너무나 연약하다. 살아갈 날이 삼십 년은 더 남았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님을 알지만, 풀어내야 하는 것이 온전한 나의 숙제다.


우연히 마주한 인생의 스승. 그녀는 삶 자체로서 가르침을 주었다. 계속 시도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월요일 아침이 더욱 신비로워졌다.


벚꽃이 활짝 핀 어느 날, 그녀는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계산대 너머에 서 있었다. 내 앞에 있던 남자 두 분이 커피를 계산하고 나간 후,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중요한 행사에 가시나 봐요, 평소와는 다르시네요."

"오늘이 제 졸업식이라서요."


아들과 함께 시작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드디어 졸업한다고 한다. 졸업하는 자식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무대 배경 같은 할머니가 아니라, 오늘은 그녀가 주인공이고 자식들이 배경이 되는 날이다. 그녀는 많이 긴장된다고 했다. 드디어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해소되는 것일까? 이제부터는 또 무엇에 도전을 하시려나?

흰색 셔츠를 단정하게 입은 그녀의 뒷모습은 여느 이십 대 대학원생같이 화사하기만 했다.


활짝 핀 미소로 반겨주는 그녀가 언제든 그 자리에 있기를,

삶의 가르침을 말이 아닌 삶 자체로 계속 보여 주기를,

언젠가 다가올 나의 황혼에도 화사한 꽃 한 송이가 피어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녀에게서 배운 것은 단순히 늦은 도전의 용기만이 아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들여다보고 우연한 만남에서도 나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앞으로 살게 될 진짜 삶으로 이끌어주는 힘이라는 걸 알았다.


부산을 '노인과 바다'라고 말할 때 나는 다대포 해변의 찬란한 석양을 떠올린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로서의 위상은 이미 빛이 바랬고, 아파트 놀이터와 지하철, 바닷가 산책길에는 어르신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한 때 번화했던 거리를 외국 관광객으로 채우고, 정부 기관들을 유치하며 다시 젊어지려는 노력은 두 손 들어 반길 일이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우리 주변에 활짝 핀 노년의 꽃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살펴보는 것도 잊지 않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와 나, 함께 늙어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