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주행파가 아니다.

서로 다른 리듬, 함께하는 여운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이 자리 잡으면서 생겨난 현상 중 하나가 '정주행'이다. 작품의 결말과 평가, 핵심 장면도 미리 확인할 수 있어 실패에 대한 염려 없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관식과 애순이의 '폭삭 속았수다'는 주말 오후에 작정하고 앉아 16시간 동안 연속으로 시청해야만 마무리할 수 있다. '정주행'은 거룩하고 힘겨운 노동의 한 주를 보낸 이에게만 어울리는 보상이다. 나의 아내처럼 말이다.


매일이 비슷한 일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방식이다. 오히려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기대하면서 한 주를 보내는 것이 지금 나의 삶에서는 더욱 활력소가 된다. '정주행'은 확실히 내 스타일이 아니다.


사실, 16시간 연속 시청은 우선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허리가 불편한 나로서는 계속해서 자세를 바꿀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복잡하고 깊이가 있는 내용이라면 정서적인 도전이 두드러진다. 중간에 길을 잃고 혼자 딴생각으로 빠지기도 쉽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도통 무슨 내용인지 정리가 안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어벤저스 시리즈를 참고하면 나에게는 3시간이 최대 한계치다. 물론 일부 내용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가겠지만, 커피 한 잔은 꼭 필요하다. 그래야 깨어 있을 수 있다.


나는 영화의 여운을 즐기는 편이다. 전체 이야기 또는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이나 소리가 울림이 되어 기억 속에 머무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것이든지 나에게서도 발견되거나 나의 삶과 관계를 맺는 순간 오랜 감동으로 각인되어 남는다.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가 20년 동안 집요하게 감방 벽에 구멍을 파내는 모습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연습하는 나의 모습이 겹쳐지고, 교도소 전체를 울리는 '산들바람 부는 저녁에 (피가로의 결혼)'라는 아리아는 힘든 일상에서도 자신만의 안식을 만들 수 있음을, 교도소를 탈출해 비바람 속에서 절규하는 장면은 일상의 잔잔한 삶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게 해 주는 명장면이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 속의 모든 장면과 시선 속에 나를 넣어서 관람한다. 영화는 나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기에 전체 정주행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전혀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3년쯤이었으니 어쩌면 나는 정주행의 선구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아내와 소개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매트릭스:레볼루션'이라 영화로 1999년에 첫 영화가 나온 이후 3번째 시리즈 작품이었다. 화려한 액션과 그래픽에 관심을 둔다면 그저 시간 때우기 용으로 적당했을 테지만, 철학적인 내용이 담긴 영화이다 보니 무작정 보러 가기엔 부담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아직 매트릭스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적잖이 당황한 나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데이트 초기의 조심스러움 속에서 영화를 잘못 골랐다고 나에게 불평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바로 3번째 시리즈를 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위험천만이었다. 8시가 영화 시작인데도 우리는 점심 즈음에 만나서 비디오방으로 먼저 향했다. 3편을 보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1,2편에 대한 '정주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화 한 편을 즐기기 위해 두 편의 영화를 공부하듯 본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라도 하겠는가. 남자 친구가 좋아한데서 선뜻 따라나섰을 테지만 분명 그녀에게는 곤혹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장르는 달콤한 멜로였으니까. 결국 깜깜한 영화관에서 본 그녀의 실루엣은 지쳐있었고, 나는 소풍 나온 아이처럼 즐겁기만 했다.


2주일 전이었다. 아내가 부산 국제 영화제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올해로 30주년인 유명한 영화제이지만, 우리는 그동안 딱 한번 갔었다. 자정에 시작해서 3편이 연속으로 상영되는 영화를 보며 반쯤 졸았던 기억뿐이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휴가를 내고 낮 시간에 보러 가자고 한 것이다. 64개국에서 출품한 380여 편이 넘는 영화들을 모두 살펴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음이 급해졌다.


이틀 동안 고민한 끝에 평소에 접할 수 없는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시선을 경험하겠다는 거창한 의미를 새겼다. 하지만, 온라인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예상대로 먹통이 되었다. 휴대폰과 패드를 동시에 켰지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들은 썰물 빠지듯이 눈앞에서 매진되어 갔다. 이러려고 이틀 동안이나 수고한 것인가. 허탈했다. 영화와 상영 날짜를 바꿔가며 6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20만 원어치의 티켓을 막무가내로 예매했다. 거의 매일 영화를 보는 셈이고, 어떤 날은 세편을 봐야 하는 도전적인 일정이 세워졌다.


드디어 영화를 보러 가는 날이 왔다. 레드카펫을 걷는 배우처럼 나름 점잖게 옷을 골라 입었다. 12시에 첫 영화가 시작되어, 세 번째 영화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난다. 서로 다른 이야기 들이지만 영화제라는 의미에서의 '정주행'이 시작된 것이다. 프랑스의 사춘기 소년 '엔조'의 성장 이야기, 남편이 떠난 후 아내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타지키스탄 영화, 그리고, 푸틴의 등장과 세력을 키워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크렘린의 마법사'.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것도 새로웠지만, 다 함께 박수를 보내는 것은 더욱 인상 깊었다. 시간 때우기가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영화를 인정하는 모습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리라. 다행히 아내는 즐거워했다. 자신의 영화를 보러 온 여배우처럼 우아해 보였다.


세 편의 영화 속에서 나는 등장인물들의 아버지이자 남편이 되어 있었다. 등장인물들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이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 같았다. 사춘기 아들을 대하는 아빠의 표정, 아빠를 그리는 어린 딸의 눈물, 그저 열심히 살아간 후에 마주하는 공허한 남자의 눈빛, 이 모든 것들에서 내가 보였다. 몇 번이나 움찔했다. 이 세상에 떳떳한 남편과 아빠가 몇 명이나 될까 하며 애꿎은 변명을 해 보았다. 세 편의 영화 속에서 나는 '아빠'로서 정주행 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함께 그리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렇게 정주행을 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친구와 어울리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 노후를 고민하는 모든 순간에도 항상 각자가 바라보는 방향은 다르다. 그 방향으로 늘 정주행 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하는 우리 부부의 정주행 방향은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진다. 아니, 기대가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월요일 아침의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