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는 날씨를 탓하지 말라.

마음의 날씨는 더더욱

제주도에서는 날씨를 탓해서는 안된다. 삶의 터전이 제주인 사람들이라면 또 모를까 나처럼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들은 제주도의 날씨를 탓해서는 안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뀌는 날씨에 대놓고 성을 낸다 한들 갑자기 해가 뜰 리도 만무하겠지만, 날씨에 내는 화는 결국 나에게 돌아오고 만다. 변화무쌍한 날씨까지도 제주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 벼르고 별러서 온 여행이라면 더욱더 그래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는 맘 편한 또래들이 있다. 서로를 알게 된 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나가는 걸로 봐서 말 그대로 친구(親舊)라고 해야 옳겠다. 자꾸만 뒤로 물러나 흐릿하기만 한 중년의 시력처럼 서로의 나이나 살아가는 스타일의 차이도 분간이 어려운 친구들이다. 서로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진 탓인지 아니면 너무나 잘 이해하게 된 이유인지 몰라도 이제는 하나의 인격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친구란 서로 닮아가는 사람들이다.


예상찮게 귓등을 스치는 바람과 서늘한 소나기가 여름을 더 여름답게 만들듯이, 잔잔한 모임에도 변화는 필요하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일까 하는 느닷없는 호기심으로 소소한 월례 회동이 1박 2일 경주 여행으로 발전하더니 이제는 2박 3일 제주여행으로 진화를 했다. 삶에서의 '변화'는 언제나 그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는 마법을 지니고 있다.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 이면에 담긴 진짜 의도야, 너무나도 쉽게 짐작하겠지만, 당연히 '일탈(逸脫)'이자 '탈출'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 두 발을 꽁꽁 묶어둔 의무들, 다사다난한 가족일에서 잠시 벗어나서 나를 돌아보고 위로받으며 보살피는 것. 중년의 남성들에게 이것보다 더 고귀한 의도가 또 있을까. 진실이 이렇게 애처로울 줄이야.


여행의 시작은 일정을 정하는 것부터다. 화창한 날씨에 옥빛 바다, 여유로움까지 맘껏 부리려면 주중에 다녀오는 것이 제일 좋긴 하다. 하지만, 애처로운 중년 신사들의 결정은 어땠을까? 회사 일과 벌초 일정, 가족 대소사를 피하고 피하다 겨우 맞아진 일정이 바로 추석 직전의 8월 마지막 주말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바뀌는 섬 날씨에다 추석 직전 8월 말의 제주도는 태풍의 영향권에 놓이기 일쑤다. 여행 도사인 친구도 세계 일주를 다녀온 친구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날씨'인데, 흐리고 비가 오는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 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날씨야 어찌 되었건 출발하기 두 달 전부터 이미 우리는 즐거워졌다. 처음 가보는 제주여행이 아닌데도 중년 남성들은 수다스러워졌다. 숙소와 항공사, 렌터카, 여행지와 맛집. 서로 이야기하면 할수록 첫 수학여행과 군대 휴가의 떨림이 다시 살아났다.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우리는 드디어 제주에 내렸다. 어둡고 두꺼운 구름을 뚫고 하강하는 비행기 창문에는 빗방울이 세차게 부딪히고 있었다.


'뭐 어때, 비 오는 제주 드라이브도 재밌을 걸, 계속 비가 오면 당구장에서 자장면 내기라도 하지 뭐. 그래도 함께 제주에 왔잖아'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도'와 '혹시나'하는 희망과 해맑은 긍정성이었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그것을 불러일으키려 애썼다.


전반적으로 흐린 속에서도 날씨는 계속해서 오락가락했다. 애월읍에서 비가 오는가 싶더니 서귀포 쪽에서는 파란 하늘이 툭하고 잠깐 튀어나왔다. 날씨를 탓할 틈마저 주지 않겠다는 듯이 먼바다에서는 빠른 속도로 먹구름이 몰려오고 몰려가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해야 했고 또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날씨를 살펴보면서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날씨를 받아들인 후에야 우리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먹구름 낀 바다를 보며 카페에 앉아서 점심 메뉴를 정하고, 흔들리는 서귀포 유람선 위에서 비바람을 맞기도 했다. 거머리처럼 피부에 달라붙은 축축한 공기 속에서 곶자왈을 걷고, 트래블 패스로 얻은 카이막 요구르트도 즐겼다. 어두워지면 제주의 번화가에서 내기 당구도 치고, 아침이 오면 다시 날씨를 살폈다.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것으로 꽉 채워온 일정이 아니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세상일이 어떻게 계획한 대로만 되던가 말이다. 적당한 여유와 틈을 미리 넌지시 넣어두는 것이 삶의 지혜다. 우리 여행은 그렇게 서서히 날씨와 함께 어울려가기 시작했다.


여행 준비의 수다스러움은 제주에 도착한 이후에는 자취를 감추었다. 함께 달리는 차 안에서도, 향긋한 커피, 시끌벅적한 저녁 소주잔 주위에도 매번 나누던 소소한 이야기들이 맴돌았다. 누군가는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이게 제주지!' 하며 웃었고, 또 누군가는 검은 구름 가득한 바다가 더 멋있다며 사진을 찍었다. 아침이 되면 개운한 얼굴로 다시 깨어났다. 제주에 온다고 크게 바뀔 것은 없었다. 어디를 가든 우리들은 역시 우리들이었다.


셋째 날이 되니 날씨가 갑자기 개었다. 눈부시게 따가운 햇살과 습하고 더운 공기. 이럴 줄 알았더라면 선글라스를 챙겨 오는 건데. 몇 해 전에 제주에서 잃어버린 선글라스가 생각나 우울한가 하면, 여행짐을 챙기며 몇 번이고 선글라스를 손에 들었다가 내려놓았던 나 자신에게 화도 났다.


운전하는 내내 나는 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틀 동안 우리가 어떻게 날씨와 함께 해왔는지가 떠올랐다. 선글라스 없는 것 정도야 뭐 어떤가. 눈을 가늘게 뜨면 되지. 괜히 없는 선글라스 생각에 눈부신 제주의 하늘을 제대로 보지도 못할 뻔했다.


마음에도 날씨가 있다. 화창한 봄날처럼 날아갈 듯 기분 좋을 때도 있는가 하면, 태풍과 폭우처럼 불안해하기도 한다. 매서운 겨울바람 앞에 선 것처럼 절망하다가도 한 동안 고요함과 편안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섬 날씨처럼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날씨. 비 오는 제주 날씨를 탓해 봐야 소용없는 것처럼 마음의 날씨도 그러하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화를 낼수록 결국엔 본인만 손해다.


마음속에서 비가 오면 비가 오나 보다 하고 해가 뜨면 해가 떴구나 하고 너그러이 받아 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안이든 밖이든 어차피 날씨는 계속해서 바뀌니까 말이다. 중요한 건 날씨가 아니라 날씨 속에 있는 우리였다. 비가 와도, 해가 떠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였으니까. 그리고 마음의 날씨가 어떻든, 나는 언제나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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