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인정하는 힘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에서 다루는 자기 결정을 이루기 위한 구성 요소는 아래와 같다.
1.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2. 각자 차별화된 자아상 만들어가기
3. 그 자아상을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새롭게 고쳐나가며 발전시키기
4. 자기 인식을 넓혀가기
5.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기억을 갈고닦기
6.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타자의 조종을 명료히 꿰뚫어 보고 방어하기, 그리고 자기 목소리 찾기
지난 글에서 다루어진 타인의 조종 (Manipulation)이 6번과 가까운 사례였다고 한다면 오늘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적 자세와 그에 따르는 위험을 인지하고 새롭게 나의 자아상을 고쳐나가는 나의 과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최근 아주 기분 나쁜 꿈을 꿨다.
첫 직장에서 인성적으로 많은 이슈를 일으켰던 분을 붙잡고 나는 화를 내고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내가 프로젝트와 전반적인 오퍼레이션의 효율을 향상할 수 있도록 기여 한 바와 고객의 인정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의 능력은 지속적으로 부정했고. 퇴사 이후에도 나에 대해 인신공격에 가까운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20대의 나는 여리고 어렸고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도 그것들이 얼마나 나에게 상처로 그리고 이후엔 응어리로 남을지 몰랐다.
우리 모두 경험해 본 것처럼 이런 꿈은 속 시원하지 않다.
아무리 엑셀을 힘껏 밟아도 빠르게 앞으로 나가지 않는 차를 운전하는 꿈처럼.
답답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눈을 뜨게 된다.
왜 나는 갑자기 꿈에서 그녀를 마주하게 되었을까?
마음을 달래보고자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만들며 부엌에 앉았다.
조용한 주말 아침과 다르게 내 마음은 쿵쾅쿵쾅 시끄러웠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고민을 마주했다.
이 꿈의 주인공은 그녀가 아니다. 그녀에 대한 나의 복수심도 억울함도 아니다.
이 꿈의 주인공은 그녀가 그랬듯이 나 스스로를 부정하는 깊은 곳에 숨어있는 내 감정이었다.
좋은 기회가 주어질 때, 좋은 평가를 받을 때, 심지어 그 평가가 아주 절대적 평가임에 불구하고도
나는 아직도 스스로 그 평가를 100%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이룬 성과, 성공, 그리고 노력을 자주 운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런 나의 마음이 투영되어 나를 부정했던 상대에게 내가 얼마나 노력했고 이를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성과를 만들어 왔는지 이해시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나의 성장을 인정받고 싶은 감정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에 대한 욕구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그녀를 또는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던 타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 메시지와 화는 나 스스로에게 이제는 조금 스스로를 인정하고 토닥토닥해 달라는 외침이었다.
우리 모두가 경쟁구도의 사회에서 스스로를 인정하는 힘을 잃어감을 간혹 느끼리라 생각한다.
그것을 누구는 'Perfectionist' 또는 '채찍질'이라 표현하며, 성장의 힘이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하기만 한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데 어떤 이가 나를 인정해 줄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않는데 어떻게 타인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나의 자아상이 '완벽'이라면 그건 끝이 없는, 성공이 없는 목표다.
무조건으로 잘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면 '잘함'의 수치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작은 노력들과 성장마저도 인정해 주는 힘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가져본다.
모두에게 열심히 하는 나를 너무도 보여주고 싶어 달려온 10년 넘는 시간이
이제는 조금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 시간을 인정해 주라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외침이 드디어 나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토닥거리는 힘'을 길러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