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결정권 (3)

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찾는 일

by 꼬북

우리는 우리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나를 어떻게 정의하고 인식하는가?

나의 존엄성을, 나의 자아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내가 이상하는 자아에 이르기 위해 어떤 조율을 해나가며 사는가?


내가 이상하는 자아와 내 현재 모습이 맞아떨어지기 위해

우리는 직업과 돈이라는 예민한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


그중에서도 나의 경우에는 ’ 잘하는 나‘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달라 오래 고생을 하는 중이다.


많은 경우, 처음 나를 만나는 대부분의 특히 일과 연관된 이들은

내가 낯가림 없이 말을 잘하고 밝은.. 소위 말하는 E 성향의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솔직하고 날카롭게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사실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싫어! 이런 시니시즘이라기보다는

주로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할 때 1:1 대화를 즐기며

빠르고 쉽게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관계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편이다.


홀로일 때 주는 그 고요함과 나만의 공간에서 나는 너무나도 큰 평온을 느낀다.


하지만, 교육과 주변의 환경적인 요소들로 인해 생겨난

나의 트레이드들은 생각보다 재밌는 아이러니들을 낳았다.


물론, 어릴 적부터 무척 말도 잘하고 언어 습득 능력도 빨랐던 것은 사실이나

내가 ‘말을 잘한다’는 인식 뒤에는

타인 민감성이 높아 언제나 그들의 ‘눈치‘를 보는 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조차도 나와 함께 하는 상사 또는 고객은

내가 그들의 니즈를 빨리 파악해 주기 때문에 편하겠지만,

나는 이로 인해 에너지 소비량이 높고 쉽게 피로해지는 것이라 말한다.


간혹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내가 ’말을 참 잘 들어주는 사람‘ 또는

누구에게도 무례하거나 민감한 질문을 가려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사실 나 또한 상처 많은 삶을 살면서 감추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에.

아직 그 상처를 스스로 보듬어주지 못해서

타인에게도 이와 같은 부분들에 대한 어떠한 질문도 쉽게 먼저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질문이 되돌아올까 봐 무서웠으니까..


그런 내가 글로벌 프로젝트 안에서 큰 무리의 stakeholder 들과

매일매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조율하며, 이를 정리해 나가는 것은 참으로 지치는 일이었다.


23살 대학을 막 졸업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밤에 온전히 잠에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새내기 첫 입사 이후 3개월 동안은 엑셀 작업하는 꿈을 매일 꾸었고,

이후에는 매일 아침 내가 오늘 정리해야 하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내용 또는 발표 내용의 시나리오를 쓰며 일어났다.

그만큼 나는 일에 몰입되어 있고 그 안에서 나를 찾았다.

또는 일 말고는 나를 정의하는 법을 몰라서, 오랜 시간 동안 일과 나의 자아를 분리하지 못한 채로 살았다.


정작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일이 사실 나를 너무나도 피곤하게 한다는 사실조차 20대 때는 알지 못했다.

단순히 하루에 14-16시간을 일해서가 아니라

그냥 1시간만 미팅룸에 앉아있어도 ’해리 포터의 디멘토‘에게 영혼이 빨려나간 느낌이었다.

그건 내가 그 자리의 모든 이의 표정, 기운, 제스처, 톤, 그리고 말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에너지를 두 배 세배는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면 다른 일을 찾으라고 하고 싶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무척 잘하는 편이다.


이렇게 나 또한 나의 직업/일 그리고 그것이 보태주는 돈이라는 존재와

나에게 평온을 주는 나의 이상과는 너무도 괴리를 일으켜 고생한다.


내가 잘하는 일안에서 내가 나의 존엄성을 지키고,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하는 연습을 통해

나의 직업/일이 그리고 그것이 주는 돈의 편안함이

나의 자아가 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물론, 나의 삶에서 고되고 아팠던 많은 일들이 나로 하여금

일을 통해서라도 나를 증명해 보이고 자 하는 보상심리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더욱도 일로부터의 자아 독립은 나에게 힘든 챌린지이다.


그러나, 꼭 성공해야 하는 일이고

그렇게 나를 되찾아야만 내가 ’잘하는 일‘을 좋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나는 아주 다행히도 일 밖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 찾고 있다.


그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을
-미스터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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