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필

by 꼬북

나는 지독한 악필이다.


대학시절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다들 나의 에세이를 검토하실 때면 지끈지끈 두통을 앓는다 하셨다.


다른 친구들의 아기자기한 글씨는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내가 마음 담아 쓴 손 편지는

해석이 필요한 고대 문자가 될까 기피하곤 했다.


“좋은 생각이, 훌륭한 생각이,

너무 빠르게 밀려오니 손이 따라가질 못하네..”


어느 날,

한 교수님께서 오랫동안 부끄럽게 여겼던

나의 삐뚤빼뚤함을 이렇게 거두어주셨다.


그(녀)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작별이었고,

나는 그 사실조차 1년이 넘어서야 전해 들었다.


굉장히 오랜 시간 나의 모교에서

사회학과 학과장을 맡아오셨던 교수님과의

뜻밖의 작별에 모두가 슬퍼했고,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

학과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있다..


나의 오랜 단점을, 순식간에 장점으로

따뜻하게 거두어준 그녀를,

고요한 제주도 책방 구석에서 그리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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