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생의 시작 - 오븐만 있으면 된 거 아니야? @아난

내 베이킹의 시작

by 땡비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 명작을 기억하는가. 모두가 삼순이와 삼식이의 사랑에 열광할 때, 나는 ‘파티시에’라는 직업을 처음 접하며 반했다. 파티시에 삼순이는 세상 심란할 때 베이킹에 집중하며 무너진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눈물을 닦고서 예쁜 과자를 만들어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주체적인 금손 여성이라니. 베이킹에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물론 나는 점심을 배 터지게 먹고도 후식으로 단팥빵을 욱여넣을 만큼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기도 했다.


그러던 내게 오븐이 생겼다. 아버지 친구분이 이사를 가면서 가스오븐이 딸려있는 가스레인지를 우리 집에 주셨다. 엄청난 무게와 크기를 자랑하던 검은 가스레인지 오븐에 온 가족이 달라붙어 낑낑 거리며 옮겨왔다. 좁은 주방에 작지만 큰 나만의 세상이 생겼다. 내 빵 굽기의 역사, 빵생이 시작되었다.


마치 작은 화덕이 집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오븐 아래 검은 판 사이로 불꽃들이 일렁였다. 과자를 구울 때마다 나는 오븐 문에 고개를 박고서 안을 지켜보곤 했다. 결과물에 대한 걱정, 조바심, 호기심 온갖 마음이 오븐 문 앞에 코를 박게 했다.


친구가 내 최초의 베이킹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동안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가 놨다가 한지 거의 1달이 지난 어제 갑자기 떠올랐다. ‘쿠키’였다. 바삭바삭한 쿠키를 기대하였으나 식감이 바삭바삭하지 않아 몹시 실망했던 그 실망하던 순간의 감정이 왠지 모르게 팍 하고 떠오르며 생각이 났다.


베이킹을 시작할 때 나는 ‘오븐’만 있으면 다 된 거라 생각했다. ‘오븐도 생겼으니 베이킹해볼까?’하며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할수록 믿을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가루와 설탕, 달걀을 섞었을 뿐인데 이렇게 근사한 결과물이 나오다니! 그 성취감에 중독되어 오늘까지 왔다. 행복할 때는 행복함을 더 나누려 빵을 구웠다. 화가 나고 눈물이 차오를 때는 굽는 빵에 집중하며 허튼 감정을 다 날려 보내려 열심히 구웠다.


앞으로도 작지만 큰 나만의 세상.

오븐에서 최선을 다해 소중한 인생도, 빵도 열심히 구워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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