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땡비 Jul 20. 2023

그래도 함 해봐! @못골

#3. 내가 좋아하는 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오랜 친구인 A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진다. “야 동일아! 큰일 났다.” “무슨 일인데?” “응! 아내가 임신한 아이 지우려 금사동 K산부인과로 갔는데 수술이 잘못되어 아기 집을 드러냈다.” “수술에는 동의했나? 응! 그래 알겠다. 수업 마치고 바로 갈게”

수업을 마치고 주섬주섬 급히 가방을 챙겨 동삼동과 석대로 나누어지는 대로변 산부인과로 찾아갔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의사 면담을 요청했다. 의사는 “아이 터울 조절을 위해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수술 뒤에는 자궁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점차 수축이 되어 원래대로 자리 잡는다. 이번 경우는 계속 이완 수축만 반복하고 축소가 되지 않으면서 하혈이 심해 어쩔 수 없이 아기 집을 드러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의사는 알코올 병 속에 있는 태아를 보여주며 자신들은 과실이 없다고 적극 변명을 했다. “수술 전 산모가 위험해지는 경우를 미리 확인하고 수술을 해야 하지 않나?” 하고 묻자 “수술 전에 체크하기 어렵다”라며 역시 자신들의 입장을 변명만 했다.


의료사고는 과실의 원인과 정도를 정하기가 몹시 어렵다. 판정관도 의사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을 의사집단에 유리하게 판결하고 스스로 덮어버린다고 한다. “사전에 치밀한 검사를 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사고가 수술 도중에 발생한 것은 당신들에게 의료책임이 있다”라고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병원을 나왔다. 친구는 “수술 전에 수술동의서를 달라고 해서 써 주었는데 괜찮겄나?”하고 묻는다. “그 상황에서 어떤 놈이 동의서 안 써 주겠노? 일단 써주고 그 다음에 일을 처리하는 게 순서다. 잘했다!”라고 하며 친구를 달랬다.


친구는 수술비, 입원비 때문에 사는 집을 전세로 내놓았다고 한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잠시 기다려 봐라”하고 친구를 진정시켰다. 이미 입원실에 어머니와 친구 부인이 함께 있었다.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잘 해결될 것이라며 안심시켜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싸우기 어려워하는 의료분쟁이다. '어떻게 싸움을 풀어나가지?'하고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싸매고 묘안을 궁리해 봤다. 각종 전문적 지식은 의사가 갖고 있으니 수술 과정의 잘못을 알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여론전이 대세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지역 대표신문인 ㅂ신문사 직원인 친구에게 찾아가서 대충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에게 부탁했다. “기자라고 하지 말고 그냥 ㅂ신문사에서 왔다고 하고 의사 면담만 한번 해다오” 하니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라고 한다. 그 친구가 다음 날 병원에 가서 “ㅂ신문사에서 왔다”라며 의사 면담을 요청하니 간호사가 “여름 휴가를 가고 병원에는 자신 혼자뿐이라”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이 친구 “뭐? 바캉스? 너거들은 생생한 사람 저렇게 만들어 놓고 휴가가 그렇게 중요하냐?” 하면서 의자를 들고 던졌다. (던졌을 뿐 다른 기물 파손은 없었다) 복잡한 분쟁 속으로 과감히 들어와 주는 친구의 우정이 고마웠다. 그리고 병원을 나왔다. 수고했다며 근처 식당에서 소주 한잔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옆자리 영어 선생에게 이 사건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부탁했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냐?” “혹시 방송국에 아는 사람 없나?” 하고 물으니 “지상파 방송국 보도국에 육촌형이 근무하고 있다”고한다. “옳구나!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맞네!” 그래 이 내용을 간략히 이야기하고 “산부인과에 방송국이라며 확인해보는 전화만 한 통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퇴근을 하고 이 친구와 함께 다시 산부인과를 들렀다. “보호자 친구인데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라며 다시 의사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사건의 경위를 물었다. 의사가 보기에는 보호자의 직업이 그냥 막노동하는 친구이니 얕잡아 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주변에 문제 제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어울려 있다는 일종의 심리적 암시를 의사에게 주어 당신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사건이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선전포고였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자 이 친구 역시 “의료 과정 중에 문제점이 있고 수술 자체가 합법적인 것은 아니지 않으냐?”라며 추궁을 했다. 그러나 의사는 역시나 자신들의 입장을 변명하며 책임 없음을 이야기한다. 면담 후 집으로 돌아왔다.

 

도저히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 마무리해 나가지? 하며 몰려드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다음 날 병원을 찾았더니 친구가 전하는 말. 병원에서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더라며 이렇게 나가면 자신들도 굉장히 복잡하게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큰소리를 치고 돌아갔다고 한다. “오호! 병원도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누가 질긴지 한번 해보자”라는 오기가 돋았다. 입원실의 어머니는 싸움이 확대되는 것이 무섭다며 “그냥 전세금 빼내어 병원비 주고 퇴원하자”라고 한다. “어머니 좀 더 기다려 보세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친구와 소주 한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11시경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일단 퇴원하고 병원비는 퇴원해서 갚으라”라고 한다. “어떻게 할까?” 하는 전화였다. 이제는 병원 측이 급해진 모양이구나. 입원비는 퇴원하면 청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친구에게 “입원비 나중에 내라고 하는 것은 안 받겠다”라는 표시다. “일단 병원비 지급 없이 집으로 퇴원을 해라”라고 하니 친구도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그것으로 그 사건은 끝났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가니 나보다 나이 많은 친한 선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 시장에서 사 온 싼 선어회를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듣고 씨-익 웃는다. “그래서 네가 좋다”는 말이 그의 얼굴에서 뿜어 나왔다. 되지 않을 것 같은 불가능한 일도 부딪쳐 보고 나서 좌절하면 그 일에 대한 후회가 남지 않는다.

 

그래도 한번 해보지 않고 중도에 한 포기로 무산되어 버린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 진학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 생각이 꽉 차 있을 때였다. 우리 집에 소녀가 물을 길으러 왔다. 서너 채 앞쪽에 있는 붉은 색 서양식 기와집에 살았다. 상의에 붉은색 니트를 입고 둥근 얼굴에 하얀 피부의 충청도 소녀였다. 몇 번 지나치다 어느 날 대담한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이름이 뭐예요? 한혜련이어요!” 참새 가슴처럼 콩닥거리는 마음을 감추고 만남을 물었다.

추석을 앞둔 때였다. 저기 국보극장 앞에서 추석 전날 4시 기다릴게요. 그렇게 일방적 약속을 했지만, 소녀는 ‘이다, 아니다’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모르는 머슴아가 만나자고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닌 그런 애매한 반응 말고 또 어떻게 반응할 방법이 있나? 혼잣말로 스스로 위로를 하며 기다려 보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추석 전날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내가 일방적으로 정한 약속, 이런 궂은 날씨에 올 리가 만무하지! 이런 날씨에 바람맞고 비참해질 자신을 생각하며 스스로 한 약속을 스스로 뭉개 버렸다. 며칠이 지나고 그 소녀가 다시 집 수돗가에 물을 받기 위해 서 있었다. 마주치자 들릴 듯 말 듯 한목소리로 “그 날 왜 안 나왔어요?” 하는 책망의 말이 마음을 후려쳤다. 그랬구나! 하고 후회가 앞섰지만 이미 일어난 일, 미안한 마음에 어떤 말도 못 하고 얼굴만 붉어진 채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 날의 무책임을 사과하고 다시 만나자고 하면 될 텐데 융통성 없는 어린 마음에 후회만 안은 채 그대로 끝이었다. ‘그 날, 그 소녀는 얼마나 낙심했을까?’ ‘그래도 한번 가봤어야지!’ 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였다. 그날의 충격을 평생 잊지 못한다.

 

임용시험에 계속 낙방하자 좌절하여 응시원서를 냈지만, 시험을 치르지 않으려고 하니 아내가 등을 떠밀어 시험장으로 갔다. 그래서 치른 시험에 합격하여 학교로 진입하게 되었다. 운전면허증 교부 때도 시간이 넘어 '신청하러 가도 접수해 줄까?' 하고 회의감이 들었지만, 접수하니 그래도 받아준다. 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성사될 때는 그 성취감으로 삶의 희열을 느낀다. 저 아가씨에게 만나자고 해볼걸. 하고 마음만 졸이다가 흘러가 버린 경우는 후회가 남지만 만나자고 하여 딱지 맞으면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는다.

우리 인생이 그러하다. 미리 포기할 것이 아니라 안 되는 것은 나중에, 결론 뒤에 포기해도 포기는 늦지 않다. 가장 하기 쉬운 것이 중도 포기이다. 우리들의 중도 포기는 대개 90% 정도의 성취가 이루어졌을 때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는데 지금 수준을 지나치게 하향평가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참 안타깝다. ‘그래도 함 해봐!’ 하고 자신의 투지를 고조시키는 스스로에게 하는 마음의 소리가 필요하다. 재담가 김제동이 “로또 복권이라도 사고 나서 안 된다고 불평해라!”는 말이 맞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자신이 최선을 다해 보는 것이 우선이다.

최선을 다한다고 모두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루어질 가능성은 매우 커지지 않을까?

신호등이 깜박일 때 건너갈 수 있을까 하고 의심 속에 건너보면 시간이 남는다. 선택의 순간이 되면 “그래도, 함 해봐”를 늘 마음속에서 불러낸다.




[#3.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 아버지 못골의 글 보러가기 : 그래도 함 해봐! https://brunch.co.kr/@ddbee/25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기쁜 우리 젊은 날 https://brunch.co.kr/@ddbee/24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그럴 수 있죠 https://brunch.co.kr/@ddbee/26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못골, 흔희, 아난의 글을 2주마다 뉴스레터 땡비로 받아보는 거 어때요?

 - 땡비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35860

 - 지난 글 보러가기 : https://ddbee.stibee.com/

매거진의 이전글 기쁜 우리 젊은 날(@흔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