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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Jul 20. 2023

그럴 수 있죠(@아난)

#3. 내가 좋아하는 말

사람마다 각자의 틀이 있다. 그 틀을 중심으로 이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지 아닌지 선호도를 결정한다. 말투, 성격, 가치관 등 살아가면서 쌓이는 다양한 정보들이 각자의 틀을 견고하게 만든다. 나는 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 함께 해왔다. 학생일 때는 주변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거리를 두고 보지 않으면 되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시작으로 원하지 않는 사람과도 부대끼며 지내야 한다. 거기다 어린 시절부터 가까웠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커보니 다른 면이 드러나 놀라기도 한다. 주변에서 겪어본적 없던 상사들의 구시대적 사고관, 성차별적 발언,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답습하는 또래들의 일상적인 발언들이 내 심장을 빨리 뛰게 했다. 나는 이런 다른 틀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반발했고 바꿔야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심장을 가라앉힌 내 인생의 무게 중심 같은 말이 있다. 바로 ’그럴수 있죠‘ 다. 꼭 내가 당신과 같은 생각이 아니더라도 상대를 존중하면서 예의를 지키는 발언이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면서 마음에 여유를 키워나갈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이 내 인생에 들어오기 전에는 내 입장을 상대에게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려다 진이 빠졌다. 그러나 지금 나는 굳이 내가 상대를 다 이해할 수 없고 아무리 말로 항변해봐도 상대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음을 알기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죠‘라고 되새기다보면 상대방은 상대방, 나는 나로 구분된다. 내가 상대가 이해가 되지 않듯 상대도 내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서로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는 말이다.


’그럴 수 있죠‘는 내가 겪어온 싸움의 전형적인 패턴을 끊어주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 싸움의 패턴은 A라는 문제를 두고 나와 상대가 싸우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A를 두고 기분이 상한 쪽이 거친 말이나 행동을 하면 그 상황 자체가 또다른 싸움으로 전환이 된다. “너 말투가 그게뭐야. 건방지게 말이야. 왜 소리쳐“ 라는 식으로 A라는 문제의 논점은 사라진다. 말꼬리를 잡거나 비슷한 과거의 일까지 다 등판하며 왜 갈등이 일어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서로 비난하고 상처준 말만 남게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럴수 있죠”는 패턴을 깨부순다. ’어? 이쯤이면 짜증내야 하는데‘ 하는 순간에 침착하게 상대의 눈을 보며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라고 하면 대부분의 상대는 당황하며 싸움이 중단된다. 함께 버럭해야할 상대가 생각을 존중해주면서도 예의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명확하게 자신과 선을 그으면서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공감은 된다.”로 끝이 난다.


‘그럴수 있죠’를 말하며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진심을 눈동자에 담고 말한다. 굳이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나를 져버리면서까지 거짓된 눈동자로 말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갈등에서는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감정을 받아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럴수있죠‘는 내가 먼저 서로를 향한 자극을 끊어내고 대화의 전환을 만들어내는 말이다. 갈등 중에 이 표현을 내뱉는다는 것 자체에 ’존중‘이 이미 담겨 있기 때문에 무리할 필요가 없다. 내가 억울하고 내 생각을 상대에게 납득시키고 싶듯이 상대도 분명 같은 마음이기에 갈등이 일어난다. ’그럴수있죠‘는 우리 모두 사실 ’같은 마음‘인 것은 이해가 충분히 되지만 ’같은 생각‘은 아니라는 점을 전달한다.


이 말이 내 인생에 들어오면서 내 삶은 한결 수월해졌다. 특히 ’이유없이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은 왜 저럴까?‘ 라는 것이 오랜 의문이었는데 이해하게 되었다. 무례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틀에 맞춰 상대에게 원하는 답과 반응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할 능력은 없고 상대가 내심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틀을 벗어나면 화가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자극한다. 이럴 때 심장이 빨리 뛰는 사람이 진다. 무례한 사람이 이상한 말로 자극 할 때 ‘원하는 답은 안 나오고 성에 차지 않아서 자극하는구나.‘로 생각하고 ’그러셨구나‘하고 넘기고 만다.


회사에서 사수와 큰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 나의 사수 B는 반드시 저녁 회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대로 나는 점심 회식으로 충분하다고 하였다. B는 저녁 회식이 직원 단합에 있어 가장 효과적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나는 B에게 시대가 변했고 저녁회식은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이 있어 효과적이지 않다고 직언했다. 그러자 B는 ’이번 프로젝트 기간 동안 우리는 저녁회식이 없다‘고 공표했다. 나는 B에게 ’이 시대의 리더‘라며 박수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그의 말이 바뀌지 않도록 직원들 앞에서 말했다. 그러나 B는 다음 프로젝트에서 곧바로 저녁회식을 부활시켰다. 지난 프로젝트에서 직원들 간 사이가 좋았음에도 저녁 회식이 없어서 분위기가 안 좋았다는 사실과 다른 이유를 갖다붙였다. B가 다시 연 저녁 회식에서 그는 직원들에게 어서 힘든 점을 말하라고 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지금 이 힘든 점을 말하라고 하는게 제일 힘들다‘고 말하며 지하철 막차 시간을 보기에 바빴다. 그러자 B는 이제는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가서 힘든 점을 말하라했다. 그 때 깨달았다. B의 해소구가 필요했던 것이구나. B는 술의 힘을 빌려 자신이 힘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데 아무도 털어놓지 않자 '단 한 명이라도 먼저 털어놓으면 나도 털어놓을텐데' 하며 누군가 필요했던 것이다. '무슨 아직도 저녁회식 타령이냐'면서 꼰대라며 B를 종종 까던 내가 이제는 ’그럴수있죠.‘하고 넘긴다. 여전히 나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기에 술의 힘을 빌려 말해놓고 기억도 못할 바에야 맨 정신에 힘든 점을 서로 대화하는게 낫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저녁회식 없이 동료들과 소통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틀이고 저녁 회식은 B가 원하는 틀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 회식을 없애게 만든 과거의 나를 B가 맹비난하며 자극해도 심장이 빨리 뛰지는 않는다. 힘들다는 말이구나. 이야기가 하고 싶다는 말인가보다. 그럴 수 있다.


별별 인간들이 나를 속시끄럽게 하며 자극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이해가 안되더라도 우선 ’그럴수있죠‘를 내뱉고 본다. 나를 지키는 방패막이자 상대에게 존중을 표현할 수 있는 말로 갈등의 방향을 확 바꿔버린다. 그리고 다시 되뇌인다. 이 말과 함께 하다보면 정말로 상대가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마음의 여유공간이 한껏 넓어지는게 느껴진다. 편안하게 뛰는 내 심장소리를 느끼며 나를 다독인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당신도 나도 다 그럴수 있다.




[#3.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 아버지 못골의 글 보러가기 : 그래도 함 해봐! https://brunch.co.kr/@ddbee/25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기쁜 우리 젊은 날 https://brunch.co.kr/@ddbee/24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그럴 수 있죠 https://brunch.co.kr/@ddbee/26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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