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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Jul 21. 2023

좋은 친구에 관하여(@못골)


누가 뭐라고 해도 좋은 친구는 서로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좋아하느냐 하는 이유는 몰라도 된다. 그냥 좋으면 된다.


그냥 좋은 것 같지만, 그 관계 속에는 모든 것이 아우러져 있다. 외모, 성향, 도덕성, 경제력, 정치성, 독립심 이런 요소들이 알게 모르게 복합되어 그 사람을 규정짓는다. 그 규정이 나의 좋아하는 느낌에 맞으면 좋아서 가까이 지내려고 하는 것이다.


작은아버지가 나 보고 “우리 형님 싫어하는 조카는 필요 없다!”라고 했다. 왜 싫어하는지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그 이유는 타당한지 하는 여부는 논외였다. 묻지도 않았다. 싫어하니 싫어한다. 그렇다! 혈족 관계도 그러한데 친구 관계는 더욱 그러하다.


친구는 나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또 다른 나일 것이라고 본다. 학교 다닐 때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몹시도 곤궁했다. 나는 누군가를 통하여 나의 결핍을 채워보려고 생각했다. 그때 만난 그 친구와 자주 다투었지만 그래도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가 하며 만남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오래된 친구가 그냥 좋은 친구인 줄 알았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 생각해 보면 ‘내가 왜 이 친구를 좋아했을까?’ 하는 이유를 지금은 알지 못한다. 살아가며 사람이 바뀌었기 때문일까?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어떤 목적을 갖고 친구를 사귄 동기가 잘못되었다.

싫어도 어떤 목적 때문에 그를 좋아해야 한다는 의견은 친구 관계뿐만 아니라 연인관계나 직장 동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현실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골라 직장 생활을 할 수는 없다. 다양한 생각과 목적을 가진 사람들, 여러 각종 성향을 다르게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 그런 중에서도 내가 어울릴 사람을 찾고 찾아서 밀착된 인간관계 속에 직장 생활의 즐거움을 그와 함께해 나가는 방식이다.


좋은 친구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까?

경제력, 지식, 친화력, 지도력, 도덕성, 헌신성. 가만히 친구를 정의하기 위해 끌어내어 본 요소들이다. 저런 요소들을 고루 갖춘 친구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누구나 어느 면에서나 부분적인 결함이나 결핍을 갖고 있다. 그런 부분적인 결핍을 감수하고 현재의 요소로도 네가 충분히 좋다는 전제 아래 벗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관계가 이어진다.


현실과 달리 나는 유별스럽게 경제력이 중요한 요소였나 보다. 나도 몰랐는데 지나놓고 보니 나타난 수치(數値)가 그렇다. 살아오면서 스쳐 간 친구들을 살펴보면 경제력 때문에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친구는 아무도 없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과 내 삶의 장이 함께 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 부유한 친구들에 대한 선입견이나 위축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선을 긋고 그를 보고 스스로 부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려 그런 대상에의 접근을 아예 미리 차단한 것이다.


가난하였지만 살아오는 과정 중에 크게 성공하여 부를 축적하였고 그런 부와는 관계없이 교우 관계가 변함없이 이어지는 부러운 사람들도 있다.

내게도 몇몇 경제면에서 그러한 친구가 있었지만 역시 정서적 공감이 어긋나 관계가 모두 파탄 나 버렸다. 손꼽아 보니 남이 부러워할 만큼 많은 부를 확보한 이른바 성공한 친구가 내게는 극히 드물다. 내가 몸담은 업태도 돈벌이를 생각하면 맞지 않는 직장이다.


스스로 부에 관한 능력이 없으니 아예 그 분야를 포기하고 사귀었기 때문일까? 생각해 보니 잘살아 본 적이 없으니 튼튼한 경제력으로 여유를 보이는 친구를 대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열등감이 많은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내세우는 여유로움이 거만함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 본다.


나에게 학생이라서, 월급쟁이라서, 퇴직하고 실업자라서, 하는 이유를 달며 평생 끝없이 베풀기만 하는 친구가 있다. 지금은 “주면 제발 좀 받기도 해라”라고 내게 불평한다. 그렇다고 그가 엄청난 부를 확보한 것도 아니다. 그냥 두어 채의 단독 주택과 지금도 끊임없이 경제활동을 하는 정도이다. 그런 그를 경제력으로 한 번도 넘어서 본 적이 없다. 어느 때는 부담스러워 스스로 만나기를 멈추고 각자의 삶에 충실한다. 그 친구는 그런 시간 간격도 나와의 사이에는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 친구다. 그는 매우 근면할 뿐 부유하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친구는 저녁을 먹고 입고 있는 옷 그대로, 늘 신고 있던 고무신을 신고 아무 예고도 없이 찾아가서 부담 없이 탁주 한잔을 놓고 세상 시름을 이야기하며 공감할 수 있는 친구, 많은 지난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친구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친구는 없다. 그런 친구는 농경사회에서나 있음 직하고 오늘날처럼 아침저녁이 달라지는 이런 변화의 시대에는 맞지 않다. 그래도 그냥 전화하여 앞뒤도 묻지 않고 “저녁 묵자!” “응! 그래” 하는 친구가 있어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사람의 곁을 스쳐 지나왔지만, 가뭄에 바닥 드러난 호수의 돌처럼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어울리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의 면면들을 보면 공통분모가 착하다는 것이다. 모나고, 자기주장 강하고, 술 잘 마시고, 또 술도 못 마시고, 눈치가 없고, 시끄럽고, 잘난 체하고 등등 한 가지 이상의 결점을 갖고 있다. 그래도 공통점이 무엇일까 찾아보니 착하다는 것이다. 남을 위해 베풀 줄도 알고 내 것을 포기할 줄도 아는 고운 심성들이 누구나 갖고 있는 한 가지 이상의 결점들을 상쇄하며 ‘네가 더 좋다’는 이유로 오늘도 만난다.




[#4. 좋은 친구에 대하여]  

 - 아버지 못골의 글 보러가기 : 좋은 친구에 관하여 https://brunch.co.kr/@ddbee/28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우리, 봄을 보내고 만나자 https://brunch.co.kr/@ddbee/27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시팔도라의 상자 https://brunch.co.kr/@ddbee/29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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