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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Jul 21. 2023

우리, 봄을 보내고 만나자(@흔희)

#4. 좋은 친구에 대하여


6월 10일이 다가온다. 그래도 분기별로는 봤는데 올해는 봄을 건너 뛰고 여름이 되어 널 만난다. 늘 내가 차를 몰고 너에게 가는 것이 자못 신경쓰이는지 이번에는 네가 내 쪽으로 오겠다며 연락이 왔다. 나야 차를 몰고 가면 끝인데 너는 버스며 지하철이며 여기까지 오는 것이 그리 간단한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가겠다고 말한다.


  썬크림도 바르지 않고 자연인의 상태로 마주했던 우리지만 취직을 하고나서부턴 최대한 예쁜 모습으로 만난다. 그게 우리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삶의 궤적이 비슷하여 우리는 비슷한 직종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 업을 얻기까지 우리는 봄을 추레하게 견뎌야했다. 1년에 한번 있는 시험의 최종 결과는 겨울과 봄 사이에 발표가 나곤 했기 때문이다.


  화장을 곱게 하고 차에 탄다. 고속도로에 진입을 하니 이런 저런 생각이 뻗어나간다. 최근에 삶이 부박하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모멸감이 들었지만 나를 추스리고 내 삶에 책임을 지고자 애를 썼다. 그러다 연락이 왔다. 얼굴보고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기대와 달리 형식적인 사과만을 받고 내려왔다. 그 날,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나는 네게 전화를 걸었고 마침 근처라고 하여 툴레툴레 너를 만나러 나갔다. 답답한 내 마음을 쏟아내려 하였으나 넌 나보다 훨씬 무거운 것들을 마음에 안고 있었다. 그래도 어릴 땐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로 힘들어했는데 나이가 드니 점점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들이 터져나온다. 내 서러움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네 서러움을 알고 나는 네가 너무 고단해 보여 울어 버렸다. 내가 우는 걸 보고 너는 내게 말했지.

  “이 일이 끝나기 전까진 난 절대 안 울거야.”
  “내가 대신 울게. 야이 독한 년아.”


  그 날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며칠 뒤 네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네 목소리에는 울화가 가득 차 있었다. 한참 말을 하다가 네가 멈춘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다. 백팔배라도 해야겠다. 내 전화 끊을게.“

  취직 시험을 같이 준비할 때였다. 아버지께서 절에 갔다가 달마도 사진을 찍어 주셨다. 정갈하게 액자에 담긴 사진은 두 개였다. 하나는 내 것. 다른 하나는 네 것. 우리는 그 사진을 각자의 방에 걸어 두고 백팔배를 하였다. 종교는 없었지만 무언가에 집중하여 불안을 잠재우고 싶었다. 그 해 너는 시험에 붙었고 나는 떨어졌다. 최종합격 발표 날 나는 네게 말했다.

  ”정말 축하해. 근데 너한테 온전히 축하를 못 해주겠어. 미안해.“

  눈물 그렁그렁하게 쳐다보며 말하는 나를 보고 넌 그냥 가만히 안아주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런 너한테서 다시 백팔배라는 말이 나왔다. 뭐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어 나도 그날부터 며칠간 같이 백팔배를 했다. 운동이라곤 하지 않는 내가 그 백팔배 때문에 근육통으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뭐라도 해줄 수 있는게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라는 계절 중 하루는 꼭 우리가 함께였는데. 이번에는 볼 수 없다. 고단하게 굴러가는 네 하루를 알기에 만나자고 쉽게 이야기를 못 꺼낸다. 그간의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네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나리며 진달래며 봄꽃들이 자기들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어느 날 네게서 연락이 왔다. 동물들의 모습이 담긴 짧은 영상 몇개를 보낸 것이다.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도 있었고 우스운 행동을 하는 야생동물들도 있었다. 영상을 보며 웃고 있는데 네가 몇마디 덧붙인다. 우리는 봄이 늘 힘들었으니까 봄을 잘 견뎌보자고. 이러니 저러니해도 결국 봄은 간다고. 봄을 보내고 만나면 잘 견뎌내준 서로를 꼭 안아주자고.


  전화가 울린다. 다 도착했냐고 네가 묻는다. 주차 중이라고 하니 내려오겠다고 한다. 현관문이 열리더니 멋쩍은 표정으로 나오며 네가 말한다.

  “야, 우리 안아주기로 했잖아.”

  차를 타고 내려올 때는 네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뭔가 쑥스러워진다.

  “왁씨, 마! 한 번 안아보자. 잘 살았나!!”

  서로 부둥켜 안고는 폴짝 폴짝 뛴다. 머릿속에 그리던 극적인 재회는 아니다. 정극을 기대했지만 꽁트다. 하긴, 그동안 너무 절절했으니 이런 가벼움도 필요한 것 아니겠나. 뭘 먹고 싶냐고 네가 묻는다. 전에 같이 먹었던 곱창을 먹고 싶다고 했지만 그 집은 망했다고 한다. 근처에 물회 맛집이 있는데 거길 가보자고 해서 그러기로 했다. 손을 꼭 잡고 주린 배를 움켜 쥔채로 걸어나간다.


  그간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못했지만 봄을 보내고 곧 널 만날 것이라는 그 약속 하나만으로도 버틸 힘이 나더라. 네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응원이고 위로다. 연락을 하지 않을 때 뜬금없이 네가 보내던 동물 영상도 나는 안다. 네가 힘들때마다 나한테 보낸 거. 그리고 힘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낸 거.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묵직한 마음에서 힘을 받고 또 일어나 본다. 고맙다. 친구야.



[#4. 좋은 친구에 대하여]  

 - 아버지 못골의 글 보러가기 : 좋은 친구에 관하여 https://brunch.co.kr/@ddbee/28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우리, 봄을 보내고 만나자 https://brunch.co.kr/@ddbee/27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시팔도라의 상자 https://brunch.co.kr/@ddbee/29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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