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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Jul 20. 2023

기쁜 우리 젊은 날(@흔희)

#3.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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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이 된 1월의 어느 겨울 날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고등학교 때 짝이었던 친구가 같은 칸에 타고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로의 목적지를 물었다. 그 친구는 대학생이 되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나의 행선지는 서면이었다. 대형 재수학원에 등록한 후 첫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이었다. 같은 스무살의 시작이 갈리는 지점이었다. 나의 청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초여름의 계절을 좋아한다. 봄이 밀려가고 여름이 달음박치며 달려오는 이 시기가 좋다. 푸르게 녹음진 가로수 길을 건너다보면, 내리쬐는 햇볕 속에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여름의 초입은 청춘과 닮아있다. 계절이 주는 청량감도, 삶의 제 2막을 시작하는 청춘이 주는 청량감도 모두 좋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나는 다른 말보다 유달리 ’기쁜 우리 젊은 날‘이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나는 늘 처음이 서툴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누리기 위해서는 조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초수에 미끄러진 대학 입시가 삼수로 이어졌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떠나가고 혼자 우두커니 남아 야간 학습을 마치고 학원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갔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같이 재수했던 친구들이었다. 독하게 마음을 먹고 연락까지 두절한 내가 보고 싶어 학원 문 앞에서 무작정 진을 치고 있던 참이었다. 옆 건물에 있던 패스트푸드점에 함께 올라갔다.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감자 튀김과 함께 삼키며 헛기침을 하니 친구가 콜라를 건네주었다. 지금은 다소 늦게 시작하지만 곧 내 청춘은 피게 될 것이고 그렇게 맞이한 청춘은 함께 기쁘고 찬란할 것이라고 소망하며 수험생활을 버텨나갔다.


  다행히도 삼수 끝에 나는 소망하던 대학생이 되었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만큼 대학 생활을 활발하게 해 나갔다. 각자 대학 생활에 바빠 고등학교때만큼 늘 붙어있지는 못했지만 친구들과 짬을 내어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고 대학 축제로 주막을 운영하면서 손님으로 온 외국인과 함께 술을 주고 받으며 비욘세의 노래를 열창했던 적도 있었다. 졸업하여 주막을 찾아온 선배는 대학 생활이 인생의 방학같은 시기라고 말하곤 했다. 정말 방학같이 즐거웠던 세월은 잠깐이었다.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이제 누릴만한데 취업이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었다. 취업 시험을 준비하며 나는 또 3년간의 수험생활을 시작하였다.


  두번째 취업 시험은 소수점 차이로 최종 전형에서 아깝게 낙방을 하였다. 또 다시 1년을 버텨야했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견딜 수가 없어 서울에 있는 동생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누렇게 뜬 얼굴로 감자칩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찌릿찌릿하게 살을 파고 드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했던 서울나들이 코스는 경복궁이었다. 2시간동안 이어지는 해설가의 설명을 아무 생각 없이 쫓으며 그렇게 현실을 잊어버렸다. 동생과 함께 희덕거리는 그 며칠간의 시간에서 위로를 받으며 부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3월. 딱 한 달을 방황하고 다시 트레이닝복을 입고 독서실로 향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올 때마다 엄마는 3년 내내 독서실에서 봄을 보내는 큰 딸이 떠올라 눈물 지으며 거리를 다녔다고 한다.


 세 번의 시험을 끝으로 나는 취직을 하였다. 빨간 패딩에 파란색 트레이닝복 바지를 벗어던진 나는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다시 동생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3월의 그 추웠던 봄의 경복궁을 기억하며 따뜻한 봄날의 경복궁을 함께 누볐고 좋아하는 가수의 소극장 콘서트에도 들렀다. 관객들의 사연을 편지로 받아 즉석에서 노래의 가사로 불러주는 코너가 있었다. 입장하기 전에 동생과 나는 각자 엽서에 사연을 썼다. 가수가 읊조리듯 내뱉는 노랫말 속에 우리의 사연이 있었다. ‘우리 언니가 드디어’라는 소절로 시작하는 가사를 듣자마자 동생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았고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어느덧 삼십대 후반이 되었다. 얼굴에는 기미가 올라오고 눈주름도 설핏설핏 지기 시작한다. 체중관리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하는 시기가 되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우리는 젊은 걸까, 늙은 걸까?‘ 그러자 하나가 말했다. ’어리지는 않지!‘ - 이제는 안다. 인생이 늘 기쁘기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 노력이 늘 기대했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마다 가슴에 외로운 섬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는 것도 안다. 어쩌면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지나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젊다고 하기에도, 늙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각자 인생의 부분에서 치열하게 공유했던 한 지점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방점은 ’우리‘에 찍혀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었기에 슬픈 날도 억울한 날도 버틸 수가 있었고 기쁜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늙어가면서 함께 우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시인 박준의 말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럴테니까 말이다.



[#3.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 아버지 못골의 글 보러가기 : 그래도 함 해봐! https://brunch.co.kr/@ddbee/25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기쁜 우리 젊은 날 https://brunch.co.kr/@ddbee/24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그럴 수 있죠 https://brunch.co.kr/@ddbee/26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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