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의 해우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 1년간 휴직을 했다. 그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지쳤던 나를 돌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나의 육아휴직은 결혼 10년 차와 맞물려 권태기의 서막이 열리는 것과 함께 시작되었고 남편과의 냉전은 생각보다 길어져 장기전이 예상되는 시점이었다.
사람이 10년을 함께 살을 맞대고 지내다 보면 빤히 예상되는 것들이 있다. 싸움에 대한 서로 다른 대응도 이미 수차레 반복되었고 그것은 일정한 패턴으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싸움은 표면적인 것이었다. 땅속에서 줄줄이 이어져있는 고구마를 캐듯 우리의 권태기는 10년간 캐캐묵은 많은 사건들과 감정들이 뒤엉켜 똬리를 틀고 있었다.
대화 없이 의무감으로만 지내는 생활에는 화목도 갈등도 없었다. 어떤 때는 이렇게 표면적으로나마 고요하게 지내는 게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어떤 때는 감정이 널을 뛰며 소리를 내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정수리부터 퍼부어대는 물줄기를 붙잡고 숨죽여 울었고 내 감정도 내 슬픔도 물줄기 속에 함께 떠나보내버렸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잠시나마 후련하기는 했다.
차가운 침묵 속에서 정신줄을 빼놓고 싶을 때가 있었다. 갑갑해서 미칠 것 같던 어느 날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여 만나자고 하였다. 그간의 사정을 들어왔던 그들이기에 긴 배경설명이 필요 없었다. 샤워를 하며 숨죽여 울었다고 말을 하니 친구 하나가 웃었다.
"누가 K장녀들 아니랄까 봐. 우리는 이런 것까지 똑같냐. 원래 울음이 효과가 있으려면 내 울음을 목격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거든. 거실 한가운데, 소파 위에서 머리채를 붙잡고 울었어야지. 남편이 니가 우는 걸 보게 했어야지. 근데 우리는 성질이 더러워서 울음을 누군가에게 들키긴 싫은 거야. 넌 화장실이지? 나는 내 방 침대 위에서 숨죽여 울어. "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또 다른 친구가 깔깔거리며 웃더니 한마디를 더 보탠다.
“넌 침대지. 나는 차 안이야. 내가 출퇴근 거리가 길잖아.”
의외의 장면에서 우리가 동류라는 것을 깨닫고는 웃는다.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자기만의 우물을 팠고 그곳에서 근심과 걱정과 슬픔을 묻어두었다. 우물은 장독대처럼 주인의 감정들을 저장해 둔다. 장독대에서 겨울 내내 김치가 익어가는 것처럼 각자의 장독대에 묵혀두었던 슬픔들은 시간과 함께 익히고 삭아간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털레털레 걸어가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의 해우소는 해광사다. 내가 대학이나 취직으로 긴긴 수험생활을 하여 속을 썩일 때도 해광사에 가서 해풍을 맞으며 엄마는 견뎠고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마음이 울적할 때도 해광사를 찾았다. 해광사는 부산의 동쪽 끝에 있는 절이다. 해광사라는 이름에는 바다처럼 넓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빛처럼 퍼져 온 누리를 비춘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해광사에는 용왕단이라는 특이한 곳이 있다. 바다 한가운데에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용왕당이 있다. 용왕당에는 용왕을 모셔두어 절이지만 묘하게 샤머니즘의 색채도 묻어난다.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당집은 외롭고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휴직하기 전에 반차를 내고 엄마와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데이트 코스의 마지막은 해광사였다. 봄볕은 따뜻하고 불어오는 해풍은 시원했다. 엄마와 나는 절을 등지고 앉아 바다 위의 용왕단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나는 엄마가 버텨왔던 험준한 시간들에 대해 들었다. 바다를 응시하며 덤덤하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오랫동안 묵혀와서 그것이 슬픔인지도 모를 법한 묵직한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의 시선이 닿는 곳에 나의 시선을 두려 애썼지만 이내 실패했다. 설핏설핏 곁눈질로 바라보던 그날, 엄마의 옆모습은 문득문득 일상의 장면에서도 느닷없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 엄마의 해광사에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아이를 일터로, 학교로 보내고 차를 몰았다. 그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자리에 앉아 보았다. 그냥 눈물이 났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방해받을 사람도 없었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바위에 걸터앉아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울다 보니 남편이 생각났고 아이가 생각났다. 그러다가 엄마가 생각났다. 아. 엄마도 외로웠구나. 그리고 엄마도 엄마의 공간이 없었구나. 집에서 밀려 밀려 나와 겨우 찾아 앉았던 곳이 이 바위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휴직을 1년 해보니 집이라는 공간은 주부의 것이 아니었다. 엄마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는 집이지만 그곳에서 엄마의 공간은 없었다. 청소를 하다가도, 밥을 차리다가도 하물며 식탁 위에서 글을 쓸 때도. 가족이 나를 부르면 나는 그리고 엄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야 했다.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던 내 친구는 자기 방의 침대 위에서 울 수 있었지만 엄마와 나는 내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해광사를 찾았고 나는 화장실에서 샤워기를 붙잡고 울다가 해광사까지 떠밀려 온 것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쏟아지는 해풍에 목놓아 울었던 그날. 나는 엄마의 감정에 내 감정을 함께 포개어 두었다.
시간은 흐르고 일은 해결되기 마련이다. 긴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우리는 화해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집은 온기로, 말소리로 가득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집은 다시 고요해진다. 남편도 아이도 잠이 든 집에서 나는 가끔 해광사를 떠올린다. 엄마에게 내 마음을 포갤 수 있었던 그날을 떠올린다. 부처님처럼 온 누리를 밝히진 못했지만 엄마가 적어도 내 마음 하나는 밝혀주었다는 것을 엄마는 알까. 장독대에 푹 묵혀두고 익힌 슬픔도 때때로 내 삶의 거름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엄마는. 나에게 엄마가 그런 빛을 주었다는 것을 알까. 내가 지금도 가끔 엄마의 옆모습을 떠올린다는 사실을 엄마는 알까. 아마도 모를 것이다.
그냥 그렇게 계속 몰랐으면 좋겠다.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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