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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l 04. 2021

어휘력이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

에코 챔버 효과와 필터 버블


어휘력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사고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어휘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니까요. 담을 그릇이 없는데 무슨 내용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식인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걸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언어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라고 했고, 조지 오웰 역시 어떤 말을 하고 싶어도 표현할 단어를 못 찾으면 나중에는 생각 자체를 못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어휘로 표현할 수 있는 것까지가 아는 것이지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모르는 것이고요. 그러니 어휘력이 빈약하면 사고력이 빈약해질 수밖에 없지요. (강원국의 '공부하면 뭣하나'에서)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어휘력 부족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어휘력이 없었나라는 생각에 어떨 때는 자괴감마저 든다. 특히 구독하는 몇몇 작가분들은 거의 '언어유희' 수준까지 구사하는 분들이 있는데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 글을 보면 한참 동안 몇 번씩 반복해 보면서 곱씹어 보지만 그것도 그때 뿐이다. 막상 그런 글을 쓰려고 글을 긁적여 보면 관성과 항상성의 법칙에 따라 평소 흔히 쓰는 단어 정도만 머릿속을 맴돌 뿐이다.


어휘는 '어떤 특정한 범위 내에서 사용되는 낱말의 총집합'을 뜻한다. 낱말은 '저 홀로 쓸 수 있는 말'인 반면 어휘는 '낱말들의 무리'를 말하는 것이다. 낱말을 안다는 것은 낱말이 가지고 있는 뜻을 아는 것이지만 어휘를 배운다는 것은 이러한 낱말들의 연결된 맥락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국어사전에 등재된 낱말의 수가 50만 개, 실제 사용하는 낱말 수가 20만 개라고 한다. 실제 셰익스피어의 책을 보면 약 18,000개의 단어와 어휘를 구사했다고 한다. 이처럼 언어 교육에서 어휘교육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책을 읽거나 신문기사를 볼 때 평소 아는 단어에 대해서도 사전을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단어가 말하는 뜻을 정확히 알아야 그 단어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자 세대인 나조차도 어떨 때는 그 낱말과 어휘가 말하는 정확한 뜻을 제대로 모르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요즘 MZ세대들은 오죽하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내가 구사하는 어휘력이 엄청 부족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세계가 조립되어 있다


20세가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불리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그림 이론(Picture Theory)'이라는 것을 주창했다. 세계는 하나의 그림이며, 이 그림은 언어로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림과 언어의 구조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이론은 넬슨 굿맨(Nelson Goodman)과 윌리엄 미첼(William Mitchell)과 같은 미학이론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굿맨은 그림과 언어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첼 또한 그림의 성격을 띠지 않은 언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반대로 언어의 성격을 띠지 않은 그림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책상 위에 책이 있다.'라는 명제 또한 책상 위에 책이 있는 그림을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고서는 이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를 그림으로 본다는 것은 그것을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또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까지 말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현상들에 대해서 직접 보지 않고, 언어 표현만 듣고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 내가 아는 소통하는 방식의 한계, 내가 사용하는 어휘력의 한계가 바로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인 것이다.


문해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문해력(文解力)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일 또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얼마 전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검색어가 있었다. 바로 '사흘'이다. 우리 세대에게 이 말은 3일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자주 쓰였지만 요즘 세대들에게는 '4일'의 뜻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문장이 아니라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 해석의 장벽조차도 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글 쓰는 작가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사물의 상태나 실체를 정확하기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휘에 대한 깊은 지식과 문해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작가가 생각하는 사회상, 사랑의 감정, 삶의 통찰과 깨달음 등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어의 뜻을 대충 알거나 제멋대로 어림짐작하는 경우에는 책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잘 모르는 단어가 몇 개만 나와도 맥락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해력의 가장 기본은 어휘력이다. 물론 한자를 알면 더 쉽게 문해력을 높일 수 있다.


세상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서 다양한 시각을 가질 때 비로소 성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가진 그룹들 하고만 소통하는 경우가 늘다 보니 편향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에코 챔버 효과(Echo Chamber Effect)'라고 한다. 에코 챔버는 인공적으로 메아리를 만들어내는 방으로 자신이 말하면 메아리가 되어서 자신에게 돌아온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회관계망 서비스 등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 에코 챔버 효과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에코 챔버 안에서 진실은 저 멀리 있고, 자신의 신념과 동일하지 않으면 중요한 정보로 취급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게 발생한다.


또한 영상이 대세인 시대에서 어휘력이나 문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유튜브는 내가 보거나 관심을 가지는 콘텐츠만 계속 추천된다. 이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가 보거나 클릭하는 영상 정보를 근거로 이와 유사하 영상을 계속해서 내게 맞춤형 정보로 추천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알고리즘은 필터 버블(Filter Bubble, 정보 여과 현상)로 연결되고, 이 필터 버블은 보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더욱 편협하게 만들고 있다. 이 용어는 엘리 프레이저의 저서인 《생각 조정자들》에서 처음 등장했다. 로그아웃을 해야만 이런 필터 버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To have another language is to possess a second soul


언어는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고, 세계관이기도 하다.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카롤루스 대제는 "두 번째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두 개의 영혼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언어에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화, 습관, 어투, 감정, 전통 등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언어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자아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우리는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말할 때 내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어로 말하면 왠지 지적이며(sophisticated), 우아하고(elegant), 정중하다(suave)고 느끼는 반면 영어로 말할 때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느끼는 것과 같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쓰는 언어에 따라 실제 내 태도, 내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네티컷대 연구팀에 따르면 남미계 미국 여성들은 영어와 스페인어로 자기 성격을 묘사하도록 했는데 영어로 할 때 자신을 더 '외향적이며, 친화적이고, 성실하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각 언어, 문화권에 대한 특정한 인식을 갖고 있는데 그 언어를 사용할 때 이런 특정한 인식이 자신의 정체성에 투여되어 나타난다고 한다. 영어권은 친화성, 성취, 자기주장 등의 가치를 높이 사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자신의 정체성에 투영된다는 것이다.


음악을 들을 때 스테레오로 들으면 더욱 풍부한 음량을 느끼는 것처럼 언어도 마찬가지다. 외국어로 배울 경우 당신은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이중 언어의 사용자라면 두 가지 관점을 넘나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라고 사이언스 중개의학 온라인판(2015.5.16)에서 필립 울프 에모리대 교수가 말했다.



지식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익힌 지식을 남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어휘력을 풍부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어휘력이 풍부한 작가들을 글을 계속 읽고, 필사하고,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관성과 항상성의 법칙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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