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Jul 07. 2021

결혼이 두려운 사십대

나이 든 비혼 주의자 후배의 결혼관을 듣다

연애는 하고 싶지만 결혼은 두렵다!


40대 중후반, 심지어 오십 대가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후배들이 주변에 있다. 그중 한 명은 일곱 살 연하의 여성과 오랫동안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었다. 최근 그 후배와 오랜만에 업무적으로 재회를 하게 되었고, 이런저런 안부를 주고받던 중 예전 연애사가 궁금해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얼마 전 헤어졌다고 말했다. 눈이 휘둥그레져 그 이유를 물으니 여성 측에서 결혼을 하자고 계속 독촉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통보했다고 한다. 좋아하지만 결혼을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는 않았다고 말이다.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예전에 술자리에서 그는 비혼 주의자라고 내게 말했기 때문이다.


첫사랑과 결혼해 25년간 함께 동거 동락했던 내 입장에서 보면 그 후배의 말과 행동이 썩 공감이 가진 않았다. 그  정도 오래 만났으면 그간의 정(情)과 전우애(?) 때문이라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후배 얘기를 했더니 '나쁜 X'이라며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그 후배를 나무랐다. 아내의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만했다. 평생 나만 만났기 때문에 모든 남자들이 다 나 같은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내에 "남자 나이 사십 대 중후반이면 웬만하면 결혼을 결심하기 쉽지 않다. 여자도 삼십 대 후반이고. 애 없이 살자고 하더라도 막상 결혼하면 남들처럼 애도 갖고 싶을 거고. 노산의 위험도 있지만 남자의 경우 내일이 당장 불안한 직장생활에서 어떻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을 질 수 있겠니. 결혼을 결심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아내도 어느 정도 수긍하긴 했지만 그래도 책임감 없는 연애는 절대 안 된다고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 


결혼은 정말 사랑의 완성일까?


가수 이효리의 'Bad Girl'의 가사에는 '영화 속 천사 같은 여주인공 그 옆에 더 끌리는 나쁜 여자'라는 가사가 나온다. '나쁜 남자와 여우 같은 여자'를 싫어하면서도 왠지 맘속으로 더 끌리는 이유는 아마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원초적 본능 때문은 아닐까. 이론적으로 남자는 순종적이고 착한 여성을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똑 부러지는 여성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 쉬운 이성보다는 까다롭고 나쁜 이성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인물인 우리 세대는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연애의 당연한 종착지이고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연애 따로, 결혼 따로'와 같은 요즘 같은 연애는 어찌 보면 화제성 짙은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로 치부했다. 80년대 후반에는 대학교 내에서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헤어진 경우 주변의 시선이 매우 따갑고 불편했던 적이 있었다. 남자들 사이에도 '동정'이니 '순결'이니 하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술자리에서 회자되기도 했었다. 



콩깍지는 이성을 무력화시킨다


오랜 기간 연애를 하다고 결혼을 종용하는 여자 친구에게 부담을 느껴 이별을 통보했던 그 후배는 아내의 말대로 정말 '나쁜X'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콩깍지가 서로 씌면 서로를 바라보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세상이 온통 장밋빛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온 세상이 흑백인데 오직 한 사람만 칼라로 보이기도 한다. 도파민과 같은 페닐에틸아민이 뇌 속을 가득 채우면 쾌감 중추가 활성화되면서 행복감이 상승하게 되고 넋 놓고 상대방에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콩깍지가 씌면 그 먼 장거리 연애도 아무 거리낌 없이 왔다 갔다 하게 되고, 둘 사이에 어떤 장애물과 장벽도 소용이 없게 된다. 비록 후회할 순 있겠지만 그래도 결혼을 함으로써 서로에게 큰 힘과 의지가 될 거란 믿음으로 결혼의 조건도 제대로 따지지 않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도파민만 계속 분비되면 심장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를 억제하기 위해 방어기제인 가바(GABA) 시스템이 작동된다고 한다. 사랑의 유효기간 즉, 권태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때가 중요하다. 불꽃 튀는 사랑이 믿음과 신뢰로 잘만 이어진다면 오히려 이런 유효기간 도래는 새로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관계가 깊어지면 비롯 훗날 후회가 뒤따를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더 큰 힘과 의지가 될 거란 믿음으로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 


인생은 실전이다


하지만 결혼의 대가는 너무가 가혹하다. 인생은 실전이기 때문이다. 출산, 육아, 교육, 집 장만, 워라벨 등 남들 모두가 이상하리만큼 편안하게 잘하는 모든 결혼생활이 자신에게는 어떤 인생보다 혹독하고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돌아보면 내 아내도 신혼생활 때 직장생활과 가사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모님께 당연하게 돌봄을 받았던 모든 일들이 사소하지 않았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게 바로 결혼생활이다.


특히 아이를 낳으면서는 아이에게 모든 관심과 애정이 집중되면서 부부간의 애정과 관계도 급격하게 식어가는 경우도 많아진다. 남들과 비교하는 삶 속에서 더 비관하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음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오로지 직진밖에 답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큰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결혼의 중차대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부남의 입장에서 보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그 후배를 나무랄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 후배의 입장을 지지하고 두둔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은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라는 선배들을 말을 전적으로 믿고 덥석 결혼의 미끼를 물어버린 유부남녀들에게 결혼은 여전히 삶의 퀘스쳔 마크일 수 밖에는 없다. 




젊었을 때 난 남자와 여자 사이는 친구관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남사친, 여사친과 같은 용어가 유행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친구와 연애의 적정한 경계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시대가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여사친을 가진 요즘 젊은 세대들이 부럽기도 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최대한 많은 여사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삶의 환경이나 조건의 차이가 행복의 수준을 좌우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다. 건강, 외모, 경제적 여유, 결혼 여부 등과 같은 삶의 환경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결과에서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의 행복 정도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다고 한다.


나이와 행복에 대한 연구도 있었는데 2008년 미국 <타임스>에서 18세부터 85세까지 약 34만 명을 대상으로 주관적인 행복의 정도를 물었는데 사십 대까지는 행복의 정도가 떨어지다가 오십 대부터는 나이를 먹을수록 행복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오십 대를 가리켜 지천명(知天命), 육십 대를 가리켜 이순(耳順)이라고 하듯이 오십대 이후는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육십대에는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어져 거친 삶이 어느 정도 소프트하게 필터링되기 때문에 오십 대 이후부터는 행복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혼의 여부가 개인 삶의 여정에 있어서는 중요한 조건은 아닐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결혼을 강권하는 사회에서 확신도 없이 결혼을 결정하게 되고, 인내와 포기를 배우다 어느 순간 이혼을 하고 싱글로 돌아오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요즘 젊은 세대는 결혼 후 아이가 생길 때까지는 혼인 신고조차 안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이만 없으면 이혼이 큰 흠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마 미래엔 프랑스처럼 동거가 대세인 시대가 조만간 도래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견해 본다.  



요즘 주변을 보면 돌싱이나 비혼 남녀들이 매우 많아졌다. 행복이란 것은 원래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것도 많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함께 기르고, 또한 부모가 되어서 어린 자녀를 키우는 소소한 즐거움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삶의 여정에서 반려자와 가족은 큰 힘이 된다. 


나는 결혼을 옹호하거나 반대로 비혼을 옹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일어나는 선택은 자신의  몫이고,  선택의 결과도 온전히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이기 때문이다, 장마가 시작되는 오늘. 택시 안에서 유독 그 후배 생각에 문득 씁쓸한 감정이 밀려온다. 후배여, 여사친이라도 부디 만들기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