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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Aug 24. 2021

멈출 수 있는 용기와 다 쓰고 가는 지혜

삶의 여유와 리듬을 찾을 수 있는 두 가지 화두!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다라울(인색하다, 지저분하다의 뜻) 정도로 인색한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자린고비'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자린고비 얘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지독한 구두쇠인지라 식사 때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은 후 한 술에 굴비 한번 쳐다보기라는 괴이한 식사법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을 만큼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자린고비의 설로는 '절인 굴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현재까지는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도 죽을 때 베갯속에 돈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조차도 번 돈을 다 못쓰고 죽는다. 나도 어린 시절 가난과 결핍 때문인지 아직도 먹는 것에 욕심이 많고, 물건도 항상 떨어지지 않도록 쟁여놓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다. 쓸 만큼만 구매하는 아내는 늘 이런 나의 쟁여놓는 습관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하지만 유년시절 궁핍했던 기억과 경험의 유전자는 아직까지 내 몸에 살아서 계속해서 대물림을 하고 있다. 가난을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아끼고,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인색한 자린고비 같은 삶을 오래 유지해왔다. 그러니  내 삶은 더 고되고, 불만으로 가득 찬 트래픽 파이터(traffic fighter)의 삶이었다.




왜 이렇게 우리는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주야장천 모으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을까? 아마 인류의 생존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수렵채집 시대를 넘어 농경, 목축 시대를 수만 년 동안 살아오면서 그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가난과 결핍이었다. 사냥에 실패하거나 흉작이 들면 굶어야 하기 때문에 식량을 축적하고 비축하는 것만이 불안한 내일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고, 이런 삶의 생태 환경이 우리 몸에 자연스럽게 아직까지 프로그래밍되어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90세가 다 되신 부모님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 625라는 한국전쟁의 참담한 현실을 몸소 맞닥뜨렸고, 전쟁 후 폐허 속에서 삶을 연명하기 위해 다시 일어섰고, 굶주리고 찢어지게 가난했던 보릿고개를[春窮期] 시절을 수없이 겪으면서 주린 배를 나무껍질과 풀죽으로 연명했던 부모님 세대에게는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과 안정된 삶의 환경이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가족의 의미는 바로 먹을 것, 입을 것, 사는 것을 해결해주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가난과 결핍은 늘 삶의 일부였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리고 싶은 것을 다 참고, 아껴가면서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다. 노후준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부모님의 고단한 삶을 보면서 나는 절대로 부모님과 같은 삶을 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오랜 시간 해왔다.



초등학교 때 가난의 늪을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던 그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 중의 하는 바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라는 유행가(?)였다. 아침, 저녁으로 동네 방송과 TV를 통해 들었던 노래라서 아직도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입안에서 가사가 흥얼흥얼 읊어진다. 1970년도에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근면, 자조, 자립정신을 바탕으로 시작된 새마을 운동 때문에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대한민국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계몽운동 과정 속에서도 우리 보모님 세대는 궁극의 가난과 배고픔, 결핍의 고통 속에서 보릿고개를 계속해서 넘어왔고,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들을 온전하게 희생하며, 자식의 공부만이 가난의 탈출구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오셨다. 가난한 삶 속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결혼식에 보태주시기도 했다. 만약 네 명의 자식들에게 보태주신 돈만 가지고 계셨더라도 지금처럼 곤궁하게는 살지 않으셨을 텐데 말이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평생 가난의 늪에서 자식들을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 못한 것에 큰 아픔과 상실을 느끼는 부모님은 여전히 돈을 제대로 쓰지 않으신다. 나중에 한 푼도 안 물려주셔도 되니 남은 재산이라도 아낌없이 쓰라고 권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간 모은 돈으로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드시고, 여행도 다니시라고 말씀을 드려도 평생 돈만 벌고 제대로 쓰지 못하는 습관이 드셔서 그런지 아직도 쌈짓돈을 주머니에 모으신다. 그렇게 아낀 쌈짓돈으로 가끔 손주들이 오면 넘칠 정도로 많은 용돈을 손주들 손에 쥐어 주신다. 말려도 소용이 없지만 말이다.


어느 날 우리 형제자매가 보내 드리는 몇 안 되는 용돈도 안 쓰고 따로 떼서 정기적금을 들고 계신 것을 알았을 때 난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왜 모으시냐고 윽박질렀는데 돌아가실 때 손주들에게 조금이라도 물려주고 가신다는 말씀에 더 가슴이 먹먹해졌다. 평생 가난 속에서 우리 네 명의 자식들을 키우느라 제대로 먹고 싶은 것도 못 드시고, 제대로 된 옷은커녕 모든 낭비적인 소비 한번 안 하셨던 부모님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아려온다.


우리들에게 물려주시는 대신 살아계시는 동안 좀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그 돈을 당신들을 위해 쓰시는 게 낫지 않을까? 아마 대부분의 자식들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무조건 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일까?




과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돈 없이 오래 사는 것은 가장 큰 걱정거리임은 틀림없다. 브레이크 없이 쫓기듯 앞만 보고 쉬지 않고 달려왔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 퇴직 후 일을 하지 않고 쓰기만 해야 하는 노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 이런 걱정들 때문에 나  또한 부모님처럼 제대로 쓰지 못하고 계속해서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부모님 세대를 보면서도 나의 삶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삶을 살면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돈이 전부 없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자식들에게 남겨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모으고 또 모은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고, 풍요의 시대가 도래했다. 결핍과 가난, 굶주림이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우리 몸은 아직도 비상시를 위해 지방을 과도하게 축적한다. 이런 과잉의 시대에 현대인들은 몸에 쌓인 지방을 태우기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어쩌면 과거의 아픔과 상실, 가난과 결핍이 여전히 우리들의 삶에 근검절약의 유전자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넘쳐나고 있는데도 우리는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먹을 것도 돈도 예전보다 풍요로워졌는데도 말이다.



삶의 여유와 리듬을 찾을 수 있는 두 가지 화두!



이렇게 계속해서 모으기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보니 나는 최근 이제부터라도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유튜브를 보면서 두 가지 화두를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한 가지는 '얼마면 지금의 고단한 삶을 멈출 수 있는가?'이고, 또 하나는 '다 쓰고 가기'이다. 만약 멈출 수 있는 용기와 다 쓰고 가는 지혜를 갖춘다면 나는 아마 뿌옇게 안개 낀 것처럼 보이지 않던 미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막연한 불안감에 쌓아두기만 하던 나의 자리고비 같은 습관을 어느 정도는 고칠 수 있을 것이다.


멈출 수 있는 금액은 자신이 정하면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10억만 모으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상한선이 꽤 높아졌다. 하지만 상한선은 조금 부족하지만 현재 모은 돈(?)으로 정했다. 이제 남은 화두는 다 쓰고 가는 것이다. 난 자식들에게 예전부터 부모 재산을 기대하지 말라고 선언을 해왔다. 자식들에게 땡전 한 푼도 남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무조건 흥청망청 쓰겠다는 뜻도 아니다. 나 스스로가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도록 재정계획을 세우고 실천함으로써 경제적 자유를 누리라는 뜻이다. 그 후에 여유가 생기면 살아있는 동안 자녀들에게, 또 손주들에게 뭔가를 해주면 되는 것이다.


멋있게 쓰는 방법이 있다


손주들에게 등록금을 대신 내어 주면 되고, 자식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갈 때 멋들어지게 여행 경비를 내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가끔은 며느리에게 용돈도 주면서 말이다. 죽고 난 다음에 남기는 것보다 살아있는 동안 함께 행복한 기억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 것이다. 부모 재산이 자신의 재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자식들 또한 올바른 자립심과 경제관념이 생기게 될 것이고, 자식들 스스로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될 것이다.


돈이 아니라 돈에 대한 건전한 철학을 남겨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무조건 모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테고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여유와 지혜가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부모들의 삶을 보면서 자녀들 또한 나도 부모님처럼 살아야지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돈보다 삶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남겨주어야 한다


인생은 앞만 보고 달리는 경마 경기가 아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의 삶과 비교해서 판단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얼마를 남겨줄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으면 남과의 비교도 무의미해진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기다 가면 되기 때문이다.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로 평가할 필요도 없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아니라 함께한 소중한 추억과 기억을 유산으로 남겨주면 된다.


돈을 벌고, 돈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면 지금까지 모은 돈을 살아있는 동안 가족들을 돕고 자신들의 삶을 향상시키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는 매년 수조 원씩을 기부하고 있으며, 자신이 죽은 다음에는 최소한의 재산만 가족들에게 남기고 나머지는 사회에 기부할 것을 약속했다. 이렇듯 삶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멈출 수 있는 용기와 다 쓰고 가는 지혜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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