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Nov 03. 2021

길을 잃고 힘들어하는 당신을 위해

#부의 추월차선 #초식남 #N포 세대 #취업 #파이어족 #상실감 #갈래길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우리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는 프랑스 예술가 폴 고갱(Paul Gauguin)의 그림 작품이다. 고갱은 왼쪽 상단 구석에 원래의 프랑스어 제목인 D' 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철학적 제목을 가진 이 그림은 프랑스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고갱(1848~1903)이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남태평양의 타이티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그렸던 인생의 마지막 유작이기도 하다. 그 당시 그의 건강 상태는 지역 주민들이 그를 나병환자로 생각할 정도로 병마에 시달렸고, 건강은 비참한 상태였다. 시력이 나빠져 반년 동안 그림을 그리지도 못했다. 고갱은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마지막 작품에 남은 온 힘과 열정을 다해 집중하기로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위의 그림이다. 


그림은 고대 두루마리 방식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봐야 한다. 오른쪽의 잠자는 아기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 우리가 무엇인지를, 왼쪽 끝에 있는 노인이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하도록 배치가 되어 있다. 세 여자와 아기는 삶의 탄생을, 중간 그룹은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성년기를, 마지막 장면의 죽음에 임박한 노인인 절망하고 체념하는 모습이 보인다. 노인이 절망하고 체념하는 모습으로 봐서는 죽음에 임박한 그 또한 존재의 근원적인 해답을 여전히 찾지 못한 것 같다. 죽음이 임박한 고갱의 존재론적인 고민과 고뇌가 느껴지는 그런 그럼이다.




위의 세 가지 질문은 고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즐겨 썼던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인문학적으로 보면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법정 스님 또한 "인간은 늘 근원적인 물음 앞에 마주 서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그런 물음과 대면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항상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법을 하셨다. 그렇다. 올바른 질문을 해야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왜 이유진은 오대수를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란 말이야.” (영화 <올드보이>의 명대사) 


살다 보면 가끔은 삶의 방향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나름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그럴 때가 있다. 사는 것이 왜 이리 힘들까? 녹록지 않은 인생, 때론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정신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니 온 몸은 지쳐 버렸고, 마음의 상처는 아무리 치유해도 아물지 않는다. 세월이 야속하게도 덥수룩하게 느껴졌던 털도 어느덧 듬성듬성해지고, 외모는 초로를 맞은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퇴직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정말 큰 일이다. 눈을 잠시 감았다 떴는데 벌써 오십 대가 되어 버렸다. 


나도 이런데 젊은 세대들을 오죽할까? 요즘 청년들 또한 길을 잃은 것 같다. 정해진 길만 따라갔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수저론이 대두되고, 세대와 남녀 갈등, 빈부 격차의 심화, 부동산 가격의 폭등, 취업난의 심화까지 갈수록 태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낭만적인 대학 생활은커녕 대학시절부터 학자금 대출에 스펙과 경력 관리, 그리고 최저 임금 사태에 그 많던 아르바이트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프리터족'란 용어까지 생겼다. '프리(Free)'와 '아르바이트(Arbeit)'의 합성어로 정규직 대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필요할 때마다 초단기 계약을 맺어 일하는 근로 형태로 건수별로 임금을 받으며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한다. 알바몬에 따르면 연령대별로 보면 20대가 46%에 이른다고 한다. 


주식, 가상 자산 투자가 열풍을 일으키며 삶을 역전시킬 마지막 수단인 '빚투'까지 늘고 있다. 집값 상승세 등으로 '영끌' 투자로 내 집을 장만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합성어인 '실신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부동산원이 밝힌 지난해 1월 2030 세대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율이 34%를 차지했다고 하며, 올해도 1월부터 4월까지 매입 비율이 무려 41%에 달한다고 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에 이어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까지 포기한다는 '7포 세대'라는 말이 등장했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의 청년들도 과거처럼 결혼을 통해서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삶이 불안정하니 취업을 해도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지 않는 '초식남(온순하고 착한 남자)'이 등장했고, 심지어'절식남(이성에 관심이 없는 남자)'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편으로 '부의 추월차선', '파이어족', '욜로' 등 다양한 삶의 가치와 프레임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삶의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 성실하게 일해서 버는 노동소득보다는 주식과 비트코인의 무차별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유튜브에는 다들 주식과 코인 부자들만 등장하니 왠지 자신만 소외되는 것 같아 심리적으로도 더 위축이 된다.


너무 많은 다양한 옵션과 선택의 길에서 결정 장애까지 걸린 세대, 화려한 스펙과 자기소개서에도 불구하고 청년이니까 그냥 아픈 세대가 되었다. 끝이 안 보이는 취업난에 희망마저 잃어가고 있다. 서민은 삶의 길을 잃고, 청년은 꿈을 잃고 청소년은 배움의 길을 잃고 있다. 기회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성세대의 불공정과 무능에 대한 실망감에 더해지면서 삶의 경로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기존의 성장공식을 다시 원점에서 리셋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길을 잃을 수밖에 없어졌다. 




마르셀린 버트란드(엄마), 존 보이트(아빠)와 함께 있는 앤젤리나 졸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매우 불운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인 존 보이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한 대배우였는데 그녀가 2살 때 동료 배우와 불륜을 저질러 어머니와 이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허드레 일을 하면서 오빠와 졸리를 돌보며 힘든 생계를 이어나갔다. 가난과 고립에 시달리던 졸리는 불안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렸고, 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면서 결국 자퇴까지 하게 되었다. 


그 후 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에 도전하게 되었지만 흥행에 실패하면서 그녀는 더욱 깊은 상실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GIA>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골든 글로브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이 영화는 80년대 중성적인 매력으로 각광을 받던 슈퍼모델 지아 커렌지의 비극적인 일생을 다룬 영화다 우울증으로 인해 마약에 중독되어 결국 26살 때 삶을 마감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배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졸리는 첫 번째 남편 조니 리밀리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처음 만나는 자유>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주인공인 위노라 라이더보다 더 주목을 받으면서 졸리는 골든 글로브는 물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수상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이어진 졸리의 기행으로 두 번째 남편인 빌리 밥 손튼과도 이혼하게 되었다. 


그 후 <툼레이더>에 출연해 액션배우로 다시 각광을 받게 되었고, 모든 액션을 대역 없이 소화해서 최고의 액션배우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녀에게 중요한 삶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는데 그녀의 아버지와 이 영화를 통해 연기 호흡을 맞췄기 때문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최악까지 이른 상황에서 맡은 배역은 애틋하기 그지없는 부녀 관계였다. 실제 그들 간의 악화된 상황이 촬영과 오버랩되면서 서로가 눈물범벅이 되어 촬영 중단까지 이르게 되었다. 다행히 이 촬영을 계기로 서로의 마음은 많이 누그러졌고, 이 부녀는 극적으로 화해를 하게 되었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졸리의 삶을 극적으로 바꾼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툼레이더> 촬영을 통해 캄보디아를 방문할 때였다. 그동안 자신은 불행하다고 굳게 믿으며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 과거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 먹을 것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자신이 당연시 여기던 것들이 이들에게는 생사가 달려있는 것들이었고, 세상에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에 그간 우울함과 비관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를 넘어 부끄러움까지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졸리는 깨달음에만 그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10억이 넘는 돈을 유엔 난민 기구에 기부했고, 영화 촬영이 끝난 후에도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봉사활동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그동안 공허하게만 살아오던 자신의 삶에 드디어 살아갈 목표가 생겼다는 생각에 자존감도 올라가고 그간의 우울함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밝음을 찾아가던 어느 날 졸리는 고아였던 한 아이를 발견하고,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아이를 입양해 엄마가 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남편이던 빌리 밥 손튼은 입양을 반대했지만 결국 첫 아이인 메독스를 입양하게 되었고, 남편과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그 이후 졸리는 그녀를 황폐화시켰던 술, 마약을 비롯한 모든 행위를 끊었다고 한다.




삶의 길을 잃었을 때는 잠시 멈춰도 괜찮다. 그래도 늦지 않다. 지금까지 많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고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앞으로 나가기 위한 재충전을 시간을 가져보자. 길은 걷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향하는 곳이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가야 할 곳이라면 비로소 다시 발을 내디뎌 나가면 되는 것이다. 


너무 앞만 보고, 위만 쳐다보고 걸으면 안 된다. 가끔은 뒤도, 아래도 살펴야 한다. 나보다 앞서거나 위에서 날아가는 사람만 쳐다보면 자신의 삶이 여정이 우울해지고,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진다. 그러니 뒤와 아래를 살피면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자신만 불행하고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길의 방향을 찾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조급하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러니 바쁠수록 돌아가야 한다.


길은 이어지기 때문에 방향만 제대로 찾으면 원하는 목적지까지 이를 수 있다. 행복으로 이르는 길은 없다. 행복이 길이기 때문이다. 길을 잃은 상실감과 괴로움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이 그 상실감과 괴로움을 붙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길을 잃었다고 자책하지 말자. 어쩌면 처음부터 방향 따위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남들처럼 따라왔을 뿐이고, 계속 걸어왔기 때문이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밖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을 수도 있다. 무위(無爲)하면서 보낼 수가 없기 때문에 뭔가는 계속해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가면 된다. 남들이 잘 다져 놓은 길보다는 울퉁불퉁 험한 길이지만 그 길이 어쩌면 내가 가고 싶어 하고, 도달하고 싶어 하는 목적지와 이어지는 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알 수 없는 인생, 후회 없는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