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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r 16. 2022

오십 대 인생, 아끼다 X된다!

#후라이드 치킨 먹는 순서 #와인 즐기는 방법 #사과를 맛있게 먹는 방법

내 앞에 사과가 10개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과를 먹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 가지는 10개의 사과 중 가장 탐스럽고 맛있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가장 상처 나고 맛없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어 보이지만 첫 번째는 모든 사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모든 사과를 맛없게 먹는 방법이다.


후라이드 치킨을 혼자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부터 먹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위를 아꼈다 제일 나중에 먹을 것인지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된다. 어차피 혼자서는 다 못 먹을 테니 맛있는 부위부터 먼저 먹어치우고 남은 부위는 내일 먹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함께 먹을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부위부터 공략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다행히 아내는 닭가슴살을 좋아하고, 난 닭다리를 좋아해 우리 부부는 음식궁합이 참 잘 맞다. 


옷을 입다 보면 싸고 편한 옷은 자주 입게 되는데 비싼 옷은 아껴 입으려다 자칫 유행에 뒤떨어져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버리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나 또한 이런 우(愚)를 범해 자주 범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 비싸고 좋은 브랜드가 있었지만 평소에는 몇천 원, 몇만 원 주고 산 옷이 너무 편해 자주 입고 다니다 보니 나를 잘 알고 있는 후배들에게 난 '패션 테러리스트'로 불리기도 했다. 



난 와인 애호가다. 그렇다고 와인에 대해 지식이 많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좋아한다. 물론 소주, 맥주, 위스키, 보드카도 즐기지만 맛있는 음식과 함께 먹을 때는 항상 드라이한 레드 와인을 곁들인다. 와인 특유의 향과 풍미도 좋지만 알싸하게 취할 정도의 적당한 도수와 목 넘김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 있는 와인냉장고에는 그간 직접 구매했거나 선물 받은 고가의 와인들이 꽉 차 있다.


고과 와인의 경우 대부분 기념하거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만 먹는다. 특히 집에 손님을 초대할 때면 늘 하이텐션 상태가 되어 와인 냉장고를 개방해 고과 와인들을 거리낌 없이 내어놓곤 했다. 어떨 때는 서너 병씩 비울 때도 있었고, 집에 가는 손님에게 와인 한 병씩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마트에서 구매한 가성비 좋은 테이블급 와인을 먹는다.


얼마 전 아내의 분노가 폭발한 적이 있었다. "아니 왜 우리는 좋은 와인을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는데 남들은 좋은 와인만 주느냐"라고 말이다. 가만히 듣고 보니 우리 둘만 좋은 와인을 제대로 먹은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이제부터 나도 좋은 와인만 먹을 거다. 당장 와인냉장고에서 제일 좋은 꺼내 와라."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는 아내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꽤 많은 잘못을 저질렀음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원래 좋은 와인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과 즐겨야 하는데 그동안 난 그걸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의 말을 듣자 말자 난 와인냉장고에서 수십만 원 나가는 가장 고가 와인을 한병 꺼냈다. 


코르크 마개를 와인 스크루(wine screw)로 돌려서 빼려고 하니 너무 오래 보관한 탓인지 코르크가 절반쯤에서 삭아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ㅠㅠ 결국 남은 코르크를 병 속으로 밀어 넣은 후 차 거름망으로 거른 후 디캔터(decanter)로 옮겼다. 의도치 않게 와인 디캔팅을 하게 되었다. 와인 침전물도 제거하고 산소와 접촉을 시켜 와인의 풍미가 더해져서인지 최근 없던 부부애가 샘솟기 시작했다. ㅋㅋ


Image : Decanter StaffMay 2, 2018


이런 에피소드가 있은 후부터 우리 부부는 두 달 안에 와인냉장고를 모두 비우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요즘 맛있는 요리가 밥상에 올라올 때면 값비싼 와인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다. 레드와인과 화이트 와인은 물론 아이스와인, 로제 와인, 포트와인(주정 강화 와인)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마시고 있다. 그 덕분에 그간 값싼 와인에 중독되어 있던 내 입과 코도 호사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아끼다 똥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까워 쓰지도 않다가 유통기한이나 유효기간이 지나서 버리거나 못쓰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안 쓰고 아끼는 건 젊었을 때나 해야 한다. 돈이 많이 드는 시기니깐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가급적 비싸고 좋은 것들을 자신에게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좋은 것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간 인생의 많은 것을 보물이라 부둥켜안고 아끼고 살았을 우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남들보다 나부터 먼저 챙기고, 대접하고 살라고 말이다. 좋은 옷이 있으면 아끼지 말고 편하게 자주 입어서 후회 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하며, 음식이 많이 차려져 있으면 식기 전에 제일 맛있는 음식부터 먹어야 하고, 좋은 와인이 있으면 평생 나와 함께 고생한, 소중한 아내부터 챙겨서 섭섭지 않게 해야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Carpe diem. Sie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라고 말한 키링 선생님의 대사처럼 말이다. 오늘을 잡아야 행복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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