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Jun 17. 2022

내 MBTI 성향으로 보는 인생이막 전략

#MBTI #INTJ #바넘 현상 #내성적 성격의 반란 #인생이막 전략

살면서 시련이 닥치거나 막다른 길을 만나 삶의 좌표를 잃어버렸을 때 우린 가끔 주저 않아 삶의 실존적인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일까?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삶의 정답은 알고 있지만 가끔은 누군가에게 굳이 묻고,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시련과 도전, 극복이라는 다소 거칠고 공격적인 삶의 태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삶의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 후반기에 막 들어선 나는 요즘 청소년기에나 겪을 법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다시 보내고 있다. 삶의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필두로 삶의 방향성과 목적지의 좌표를 재설정하기 위해 나만의 동굴에 들어가 외롭고 혹독한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나 그랬듯 어떻게든 결론은 날 것이고, 결론대로 실행하면 어떻게든 삶은 다시 제 갈길을 찾아갈 것이다.


불확실성, 변동성, 가변성, 복잡성, 모호성, 불투명성 등 온갖 프래질(fragile)한 상황과 환경 변수들이 판치는 무한 경쟁의 세상 속에서 우리는 모두 무방비 상태로 거대한 파도에 온몸을 맡기지만 몸과 마음은 온갖 상처와 상흔 투성이다. 예전에 없던 우울증과 번아웃, 공황장애 등은 이제 흔한 마음의 질병이 되어 버렸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우울한 상황이 쳇바퀴처럼 끝없이 돌아가고만 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 필요도 없는, 알고리즘이 토해내는 각종 쓰레기 같은 정보에 매일 낚이지만 그것마저도 비루한 삶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꽉 차고 복잡한 머리를 비우기 위해 마음 치료, 마인드 미니멀리즘이란 극단적인 처방도 내려보지만 그 마저도 그때뿐이다. 하지만 아파 봐야 아픈 걸 이겨내고, 길을 잃어야 길을 찾는 방법이 보이는 것처럼 인생은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심정 때문일까? 삶의 실존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난 오랫동안 미뤄왔던 MBTI 검사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도전이라고 말하니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예전부터 난 별자리, 혈액형, 각종 심리 검사 등이 열풍(fad)처럼 번질 때도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사람들의 성격 특성을 자신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믿으려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의 일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들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MBTI 검사가 열풍을 넘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도대체 MBTI 검사가 왜 이렇게 까지 인기가 식지 않는 건지, 왜 대중이나 기업에서 이 검사를 선화는 건지에 대해 직접 체험해 봄으로써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또한 취업 면접에서도 어떤 MBTI 유형인지 묻는다기에 그 궁금증이 더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손자병법의 말처럼 나를 제대로 알아야 무한 경쟁 시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도 있고, 혹시나 재기의 기회도 있을 수 있으니 하는 망상도 일조를 했다.




12분 정도 걸쳐 진행된 무료 검사에는 픽(pick)하기 무척 까다로운 오지선다형 질문들이 적지 않게 분포해 있었다. '역시 괜히 했나'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매몰비용(sunk cost) 효과 덕분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오지선답(五枝選答)이 아니라 오지선다(五枝選多)란 용어를 쓰는 걸까란 호기심이 뜬금없이 발동했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네이년을 검색해 보니 '다섯 개의 항목 가운데 정답 또는 가장 적당한 항을 고르게 하는 방식'이라고 나와 있었다.


맞는 한 가지 항목을 고르라는 말인지 아니면 맞는 여러 개의 항목을 고르라는 말인지 명확하지 않다. 좀 더 찾아보니 다(多)는 '많다'란 뜻 이외에 '뛰어나다 또는 낫다'라는 뜻도 있어 선다(選多)는 가장 뛰어난 것을 고른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무방하다고 한다. 'multiple choice'란 영어를 번역하면서 '선다형(選多型)'으로 번역한 것도 원인이란다. 선다든 선답이든 문제는 한 가지인데 정답 수는 가르쳐주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는 아닐까. 단 MBIT 검사는 원픽(one pick)이었다.  




드디어 검사 결과가 나왔다. INTJ, 용의주도한 전략가! 이름이 일단 그럴싸했다. 그냥 전략가도 아니고 용의주도한 전략가라니. 흠! 성격 유형을 읽다 보니 상당 부분 공감이 되었다. 일단 고독한 유형으로 전략적 사고가 뛰어나며, 남성은 전체 인구의 2%, 여성은 0.8%밖에 안 되는 유형이라고 나왔다. 엥? 한 마디로 희소하다는 얘기잖아. 좋은 것 아닌가? 침을 꿀꺽 삼키며 계속 읽어 나갔다.


1. 인간관계 약하며, 정 붙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림
2. 사람 얼굴 및 이름을 잘 기억 못 함
3. 남의 눈치를 잘 안보며 남에게 관심도 없고 공감능력도 약함
4. 사고가 명료하며 직관적이라 여자들보다 남자들과 말이 잘 통함
5. 생각이 많아 현재를 살기보다 미래를 생각하고 대비함
6. 일의 중요도를 무의식적으로 나누며, 중요한 일에는 끝까지 파고드는데 그렇지 않은 일에는 무관심함
7. 노력에 비해 성과가 좋으며, 단순 암기보다는 전체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함
8. 나서는 걸 싫어하지만 답답한 상황에서는 총대 매고 해결함
9. 혼자 있을 때 에너지 충전됨


완전 나잖아!!! 과거 직장생활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내가 두군 데 여초 회사에 다닐 때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왜 여성보다 남성을 더 좋아했는지, 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현재를 제대로 못 살았는지, 왜 남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는지, 왜 유행에 둔감했는지, 왜 혼자 있고 싶어 했는지 말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 INTJ라는 유형 때문이란 걸 깨닫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아울러 내가 쓴 브런치 글이 왜 인기가 없는지도 알게 되었다. INTJ 성향으로만 보면 생각이 많아 맥락 정리가 잘 안 되는 것,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물론 글쓰기의 치명적인 단점이 다수 있겠지만.....(중략)


근데 INTJ가 좋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했다. 더 많은 정보를 검색한 결과 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모기업의 채용 공고란에 특정 MBTI 성향(INFP, INTP, INTJ)은 채용하지 않겠다는 공고가 나온 게 아닌가? 말이야 방귀야,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란 말인가? 이렇게 희소성과 창의성이 높은 용의주도한 전략가를 뽑지 않겠다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이유가 선명하게 이해가 되었다.


INTJ는 관계지향적이지 않고, 조직 순응적이지 않아 조직 생활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심 섭섭하기도 했고, 심기 또한 불편했다. 하지만 내가 CEO라도 (그럴 리 없겠지만) 아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채용 잣대로 재단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기분이 누그러졌다.


* INFP : 차분하고 창의적이며 낭만적인 성향으로 보이지만 내면은 내적 신념이 깊은 정열적인 중재자 유형

* INTP : 조용하고 과묵하며 논리와 분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좋아하는 유형

* INTJ : 용의주도한 전략가, 과학자형


몇 년 전 짝꿍이 나와 술을 한잔 하면서 진지하게 충고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당신같이 상사에게 할 말 다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부하 직원은 상사 입장에서 볼 때 여간 불편하지 않을까. 당신도 당신 같은 부하직원 만나면 그 심정 잘 알게 될 거야. 오래 다니고 싶으면 성질 좀 죽이는 게 좋을 것 같아." 위의 채용 사례를 본다면 짝꿍의 충고가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이 된 것이다.


난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산업 성장기에 채용도 순조로웠고, 그 어렵다는 임시 직원인 임원 자리에도 올랐고, 대한민국 평균 퇴직 연령보다 좀 더 오래 근무를 한 후 명예퇴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나름 운 좋은 INTJ가 아닌가! 확신컨데 요즘 시대에 취업 전선에 뛰어 들어갔더라면 아마 실패의 고배를 많이 맛보았을 것이다.  




퇴직 후 조직을 떠나 집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타고난 내 성향을 어렴풋이 알아채기 시작했다. 직장 다닐 때 누구보다 외향적이고 긍정적이라고 여겨졌던 내 성향이 사실은 가장된 성향이었다는 걸 말이다. 난 누구보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돌이었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진성, 레알 내성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MBTI 검사를 한 후에 그러한 성향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의 가장된 성향의 발현은 아마 어릴 때부터 단체생활을 하면서 의식적으로 항상 긍정적이고 외향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하려고 노력했던 결과였던 것 같다. 그게 세상을 잘 살아가는 길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수전 케인의 《Quiet》란 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내가 가진 생각과 신념들이 조작되고 잘못된 것임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세상을 바꾸고 혁신하는 많은 사람들이 내향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레리 페이지, 마크 저크 버그, 버냉키 전 의장 등이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하지만 상당 수의 사람들이 내향적 성향을 가졌지만 외향적인 척하는 이유는 사회가 외향적인 사람을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주장했다. 가급적 말 잘하고, 적극적이고, 밝은 표정의 사람들을 이상적이고 매력적으로 여기는 사회적 경향 때문이라고 말이다.


집단 무의식의 개념으로 심리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인 칼 융은 다음과 같이 내향성과 외향성을 정의했다.

내향적 : 생각과 감정이라는 내면적인 것에 이끌림, 사건의 의미에 초점, 혼자 지낼 때 에너지 충전, 갈등 회피 성향, 우호적 상황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호감도 높음, 행동 전 숙고 성향으로 정확도 중시, 강한 인내심, 상상력 풍부

외향적 : 사람과 활동이라는 외부적인 것에 초점, 사건 자체에 집중, 사람들과 어울려 에너지 충전, 갈등 정면 돌파, 경쟁 상황을 즐김, 빠르고 간편한 접근 방식 선호하며 속도 중시, 도중 실수 잦고 포기 성향도 높음, 현실에 초점.


그녀의 말을 빌리면 내향적인 사람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외향적 가면을 쓴 후 멋지게 프레젠테이션도 해내고, 조직 내 리더십도 발휘하고, 파티에 가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필요하다면 면접 시, 소개팅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과 만날 때 외향적인 사람인 것처럼 멋지게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위를 '자유 특성'으로 부르는데 멀티 페르소나처럼 목적을 위해 잠시 내 성격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책의 결론은 내향적인 사람이 좀 더 사색적이고, 명상을 즐기면서 내면을 다스릴 줄 알고, 힘들더라도 업무를 포기하지 않고 해낸다는 것이다. 아울러 강력한 카리스마보다는 요즘 시대에 적합한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혼자 있을 때 일에 더 집중함으로써 성과를 꾸준하게 만들어 내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외향적인 사람보다 조직 사회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여하튼 금번 MBTI 검사는 나의 정체성과 성격 유형을 파악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이런 도움 덕분에 어떻게 인생이막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 설정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INTJ 성향과 퇴직 중장년 나이대라는 조건을 감안할 때 재취업에 대한 희망은 갖지도 말고, 하지도 않아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타고난 천성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재취업 포기에 대한 대안으로써 창업 또는 사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추가했다. 두 번 다시 '삶의 생사여탈권'을 타인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이왕이면 자본금이나 위험이 적은 쪽으로 사업 분야를 선정할 예정이다. 부동산 투자 및 임대업, 산업 장비 유통 및 판매, 인적 자원 활용 사업, 농업 법인 등을 고려 중이다. 사업의 최종 종착지는 물론 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를 동시에 획득하는 것이다. 불안감과 두려움이 교차하지만 언젠가는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감정임은 틀림이 없다.

 



살면서 뒤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 가사처럼 이제는 내 속에 감춰 둔 많은 나를 정리해 상배당에게 쉴 곳을 제공할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할 것 같다. MBTI는 그런 측면에서 내게 맞는 정체성을 발현시키고, 불필요한 정체성을 제거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MBTI 과몰입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을 특정 MBTI로 규정하면서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한 같은 유형의 MBTI  사람들과 소속감을 형성해 그들의 사고와 행동을 무작정 따라 하기도 하며, 심지어 기업 채용에서 특정 MBTI 유형의 지원자들에게 지원 제한을 두는 등의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는 건 개선할 필요가 있다.


말보다는 조용하고 성실한 태도로 자신을 표현하고, 조용하지만 단호한 태도의 세계관이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다. 외향적이라서 괜찮은 것이 아니라 내성적이어서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애써 좋은 성향의 MBTI를 마냥 부러워하지 말고, 또한 애써 외향성의 가면을 쓸 필요 없이 자신의 성향에 맞는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단점에 집착하기보다는 장점에 집중함으로써 성과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6월의 수목원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