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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n 12. 2022

6월의 수목원에서

#우후죽순 #층층나무 #마로니에 #황톳길 #수국 #뽀뽀나무

오랜 가뭄을 해갈할 단비가 내린 6월 초여름 수목원에는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뾰족한 삿갓 모양의 죽순들이 대나무 숲 여기저기서 땅을 뚫고 힘차게 솟아 올라 있었다. 대숲에 들어서니 대숲의 초록 기운이 안구를 정화하고, 연둣빛 댓잎이 바람이 부딪치며 사각대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우후죽순을 검색해보니 '비 온 뒤에 여기저기 솟는 죽순이란 뜻으로 어떤 일이 한때에 많이 생겨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죽순은 하루에 120㎝씩 자라는 놀라운 성장 속도를 자랑한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예로부터 꿈에 죽순을 보면 다산을 한다고 해서 농경시대에 길몽으로 여겼다고 한다.


우후죽순이 힘차게 땅을 기운을 받고 나온 모습


6월의 수목원은 그야말로 초록의 향연이었다. 초여름의 다소 더운 날씨였지만 수목원 이곳저곳 울창한 활엽수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든 나무 터널 길을 짝꿍과 함께 걷다 보니 시원한 나무 그늘과 산들바람이 주는 청량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무는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말의 뜻이 이해가 되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무 터널을 형성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함


습관처럼 위를 올려다보니 층층나무와 칠엽수의 잎들이 하늘을 덮어 햇볕에 연두색으로 투과되고 있는 모습이 몽환적이었다. 하늘을 덮은 투명한 연초록의 층층나무 잎들과 좁은 하늘 공간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연출해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이미지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짝꿍이 층층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층층나무는 이름처럼 나무의 가지가 층층이 자라서 멀리서 나무를 보면 계단처럼 층이 져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층층이나무로 불리다 현재 층층나무가 되었다. 나무가 옆으로 넓게 퍼지고 울창하기 때문에 층층나무 주변에는 햇볕을 받기가 어려워 '숲 속의 폭군'이라는 별칭도 있다. 봄에 가지에 물이 오를 때 가지를 꺾으면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고로쇠처럼 수액을 채취해 마시기도 한다니 갑자기 그 맛이 궁금해졌다.   


위로 바라본 층층나무와 칠엽수 잎들


잎이 일곱 개 달렸다고 해서 불리는 칠엽수 잎을 호기심으로 직접 세어보니 많은 것은 9장이나 달려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수목원에 있는 수종은 일본 칠엽수였다. 서양칠엽수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종을 가리지 않고 '마로니에'라고 부른다고 한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마로니에는 서양칠엽수이다.


마로니에 하면 대학로에 위치한 마로니에 공원도 유명하지만 난 문득 90년대 마로니에라는 프로젝트 그룹의 <칵테일 사랑>이 불현듯 떠올라 첫 가사를 옹알거렸다. 


"마음 울적한 날에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그런데 길을 걷다 보니 누군가 떨어진 칠엽수 잎을 장식해 네 잎 클로버 모양을 만들어 놓은 걸 보게 되었다. 누군가 행복을 뜻하는 세 잎 클로버보다 네 잎 클로버가 가져다주는 행운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평범한 일상 속에 늘 묻혀있지만 찾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세 잎 클로버가 주는 행복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행복 속에 행운을 찾아야 한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말이다. 


칠엽수 네 잎 클로버, '일곱 개의 행운'의 뜻???


숲길을 걷다 보니 황톳길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아무런 생각 없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자칭 '까도녀'인 짝꿍은 절대 이런 모험을 감행하지 않는단다. 그럼 난 어시남(어설픈 시골 남자)인가? 햇볕에 말라있는 황톳길은 젖은 황토의 부드러움과 찐득함을 느낄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자갈길도 걸었다. 순간 걸어왔던 내 삶의 여정이 얼마나 편안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걷는 것만으로 이런 효과가 나온다니. 황톳길이 끝나는 곳에 세족을 위한 수돗가가 마련되어 있어 맨발 체험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황토길과 자갈길, 잠시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수목원 광장에는 짝꿍이 너무 좋아하는 여름 수국이 형형색색 피어 있어 거리를 수놓고 있었다. 햇살과 흙, 물이 어찌 이런 아름다운 색깔을 빚어낼 수 있을까? 순백, 핑크, 연분홍, 보라색, 빨강, 파랑, 하늘색 등 형형색색의 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수국의 아름다움은 풍만함과 화려한 색상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짝꿍은 유달리 보라색 계열의 수국을 좋아한다. 색깔이 주는 신비로움 때문이랄까. 수국의 꽃말은 진심과 변심이라는 상반된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꽃의 색깔에 따라 하얀 수국은 변심, 보라는 진심, 파랑은 냉정, 빨강은 처녀의 꿈이라고 꽃말을 붙이기도 하지만 그건 호사가들이 지어낸 것 같다. 하지만 여름이 기다리지는 건 바로 수국도 한몫하는 건 분명하다.  


광장에 핀 형형색색의 수국꽃


수국을 관찰하고 돌아가는 나무데크 길에는 눈에 띄는 수목명이 있어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 멈춰서 신이 시키는 대로 짝꿍을 향해 입술을 쭉 내미니 짝꿍은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며 나를 밀치고 가 버렸다. 내가 잘못한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수목명이 시킨 대로 한 것뿐인데.... ㅠㅠ


뽀뽀나무. 자세한 건 검색을 통해 확인 요망!


이렇게 6월 수목원 여행 여정은 언~해피 모드로 끝이 난~~ 것 같지만 수목원 바로 앞 냉커피를 사주면서 해피 모드로 끝이 났다. 귀찮아도 수목원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 그 덕에 칠엽수 네 잎 클로버도, 뽀뽀나무도 보는 행운을 가질 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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