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Feb 25. 2021

사람들이 치러야 할 대가

존 헨리이즘!

1997년 피츠버그의 지역신문에 감기 임상실험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실렸다.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지원자들은 코를 통해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주입받고 며칠간 호텔 방에 갇혀 코를 풀며 시간을 보낸 후 800달러를 받았다. 이 실험의 목적은 "왜 어떤 사람들은 더 쉽게 감기에 걸리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조지아 대학의 진 브로디 박사는 최근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성격을 분석하고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다.


더 부지런하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타입이 훨씬 더 병에 쉽게 걸린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힘겨운 상황을 견뎌내 버릇하면 면역체계가 손상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결과였다. 그 이후 후속 연구를 진행한 브로디 박사는 2015년에는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백혈구가 동년배에 비해 조기 노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성공에 대한 의지가 강한 흑인 청소년들도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백인들의 경우 성공에 대한 의지나 근면한 성격이 면역 체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이 개인의 노력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하면 오히려 건강이 나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빈부 계층 간 건강 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간 사람이 좀 더 건강한 삶을 살 거라는 기대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복권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사회경제적 입지가 상승한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나 해당한다. 수십 년의 걸친 연구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준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이 개인의 노력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하면 오히려 건강이 나빠지는 이러한 현상은 '존 헨리이즘(John Henryism)'이라고 불렀다. 브론디 박사의 연구팀은 어릴 때부터 노력하는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과 아드레날린 분비가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평생 몸의 세포들이 스트레스 물질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당뇨병과 같은 자가면역 질환에 취약해진다는 것이 박사의 설명이다. 그런데 백인들 사이에는 이런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하루 2시간 자며 3억 5천을 빚 갚은 '알바왕'으로 소개된 이종룡님은 세간에 매우 유명해졌다. 과거 시계 도매점의 사장이었던 그는 잘 나갈 때는 월 매출이 3천만 원에 육박할 정도였고,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도 다니며 돈을 흥청망청 쓰며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사업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거래처가 하나둘씩 끊겼고 매출도 곧이어 곤두박질쳤다. 빨리 사업을 접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끌다 사업이 부도가 나고, 결국 3억 5천이라는 빚더미를 지게 되었다. 결국 그는 부도를 내고 아내와 함께 야반도주를 하다 유치장에 구속되는 경험도 했다.


결국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작은 형에게 도움을 요청해 4천만 원을 겨우 빌려 합의를 보고 위기를 넘겼다. 이후 그는 돈을 갚기 위해서 목욕탕 청소, 찜질방 청소, 떡 배달, 신문 배달, 학원차량 운전, 폐지 줍기 등 하루  평균 7개의 알바를 돌며, 450만 원이 넘는 월수입을 올렸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신문을 배달하는 30초 남짓한 엘리베이터에서는 신문 헤드라인을 읽으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익혔고, 알바가 30분 정도 빨리 끝날 때면 폐지를 줍는 부지런함도 보였다. 이렇게 그가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총 20시간 이동하는 거리만도 약 400km에 달했다. 그렇게 하루 겨우 2시간 남짓한 쪽잠을 자며 13년을 버텨 2008년 마침내 빚을 모두 갚았다.


빚을 청산한 그는 돈을 쉽게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계속 알바를 했고 그 이듬해인 2009년에 '3억 5000만 원의 전쟁'이라는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대장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2013년 전후로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었다. 정말 본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죽음 힘을 다해 모든 빚을 청산했던 이종룡님을  보면서 정말 숙연해지기도 했다. 


만약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종룡님처럼 그렇게 혼신을 다해서 채무의 책임을 갚을 건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아마 채무를 회피하기 위한 개인 회생절차나 파산신청을 알아보러 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부끄러운 생각이다.




우리가 아무리 정신무장을 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극한의 노력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건강이라는 위험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비록 존 헨리이즘이 일부 유색인종에 한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젊었을 때 사서 하는 고생은 언젠가는 건강에 적신호를 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종룡님을 보면 한없이 안쓰럽고 심지어 인생도 덧없게 느껴진다. 한번 사는 인생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에서 위험을 예측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과 방안들을 강구해야 한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한번 잃은 건강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화향 백리, 주향 천리, 인향 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