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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Nov 06. 2022

비와 추억의 랩소디(Rhapsody)

#신영복의 처음처럼 #돕는다는 것은 함께 비를 맞는것이다 #가을비 우산속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 신영복의 《처음처럼》중에서 -


가끔은 이유 없이 비를 맞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맘속에 남아있는 개운치 않은 감정의 찌꺼기나 앙금 등 불편한 감정들을 쏟아지는 빗줄기에 씻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겁니다. 그럴 때는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보다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신영복 작가가 말한 것처럼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땅이 쩍쩍 갈라질 때 예고 없이 찾아오는 비만큼 반가운 존재는 없을 겁니다. 이때 내리는 비를 '단비'라고 부릅니다. 적시에 내리는 충분한 비라는 뜻입니다. 흠뻑 적신 대지에서 쑥쑥 자라나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에도 어느덧 고마움이 자리 잡습니다. 취업 소식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취준생들에게 합격의 문자 메시지는 단비처럼 반갑습니다. 제 주변에는 단비라는 이름의 성격 좋은 아이도 있습니다. 이름만큼 마음씨도 착하지요. 


영화 <클래식>


우산이 있는데 비를 맞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인가요?


비가 심하게 내리던 날 학교 캠퍼스에 있던 지혜(손예진)는 비를 피해 나무 아래에 있습니다. 평소 지혜를 좋아하던 상민(조인성)은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달려갑니다. 우산이 없던 그 둘은 상민의 재킷을 우산 삼아 함께 발 박자를 맞춰가며 도서관으로 이동을 합니다. 두 사람이 비를 피해 달려가는 모습이 슬로 모션으로 카메라에 잡히면서 감미로운 영화 OST인 <나에게 넌, 너에게 난>이란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심장도 내리는 빗소리, 흐르는 음악소리에 맞춰 콩닥콩닥 뛰기 시작합니다. 심장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대학생 지혜는 연극반 선배 상민(조인성)을 좋아하지만 친구가 먼저 좋아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상민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혜는 친구가 상민에게 보낼 편지를 대필하면서 가슴 앓이를 하게 되고, 심리적 방어기제로서 상민을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지혜는 우연히 매점 언니와 대화를 하던 중 상민의 우산이 맡긴 우산 얘기를 듣게 됩니다. 상민이 며칠 전 비 오던 날 매점 창밖을 바라보다 갑자기 우산을 매점 언니에게 맡기고 빗속으로 뛰어갔다는 얘길 말이죠.


지혜는 상민이 자신을 바라봤다는 창을 바라보면서 '상민이 왜 우산을 매점에 놔두고 자신에게 달려왔는지'를 문득 깨닫게 됩니다. 밖에는 또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상민처럼 자신의 우산을 매점 언니에게 주고, 상민의 우산을 손에 든 채 상민에게 달려갑니다. 그것을 본 매점 언니가 소리를 칩니다. 왜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나고? 말이죠. 그때 지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산이 있는데 비를 맞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인가요?" 


지혜가 상민에게 우산을 돌려주고 돌아가던 찰나에 상민은 지혜를 멈춰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역시 고백은 남자가 해야 멋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사랑이란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주는 것보다 함께 비를 맞는다는 것이란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맞은 건 바로 단비일 겁니다. 두 사람 사이에 쌓인 감정의 갈증을 말끔히 해갈시켜 준 것이죠. 



지혜와 상민이 비를 맞고 뛰어가는 장면 vs "우산이 있는데 비를 맞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인가요"라고 말하는 지혜

https://youtu.be/XacwRRqQGJM




예전처럼 비를 맞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빗소리가 주는 감성 또한 느껴본 지 꽤나 오래된 것 같습니다. 산성비라는 이미지, 머리가 빠진다는 속설 때문에 비를 맞는 건 금기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주거지의 형태가 대부분 아파트로 바뀌고, 지하철이나 차량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예전처럼 기와지붕, 함석지붕, 비닐막에서 들었던 빗소리의 감성을 이제는 더 이상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가끔 ASMR을 통해서 추억 속의 빗소리의 감성을 되새김질할 뿐입니다. 


예전에 제가 살았던 기와집은 함석지붕이 달리 외양간과 함께 붙어 있어 비가 올 때마다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붕 위에, 창가에, 창문에, 땅바닥에, 마당의 세숫대야에 후드득하고 떨어지는 빗소리는 저마다 부딪히는 물체의 재질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내며 빗소리만의 하모니와 향연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어릴 때 제 방이 없었던 저는 비가 오면 항상 마당에 우산 세 개를 포개서 겹쳐놓고, 겨우 한 몸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 나만의 방을 완성시키곤 했습니다. 그 안에서 듣던 빗소리는 꽤나 낭만적이었습니다. 다만 엄마가 야단치며 들어올 때까지만 그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름 장마철이 되면 저는 항상 소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소꼴(소에게 먹이는 풀)을 베러 나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는 어린 제게 '쉼'과 여유'를 주는 반가운 선물 같은 존재였죠. 


애니메이션 <소나기>의 한 장면


소녀는 소년이 개울 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산으로 놀러 간 소년과 소녀가 갑작스럽게 만난 소나기를 피해 수수밭 더미 속으로 몸을 피합니다. 웅크린 두 사람 사이엔 따뜻한 체온이 흐릅니다. 소년과 소녀, 이 둘을 가깝게 맺어준 매개체는 소나기였습니다. 제가 소나기에 특별한 애착을 갖게 된 건 바로 황순원의 《소나기》때문이었을 겁니다. 대학시절 내 사랑 짝꿍과도 비가 올 때 종종 우산을 접고 함께 비를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클래식>만큼 멋있진 않았지만 둘만의 우중 데이트는 그 당시 뜨겁던 우리들의 사랑의 온도를 낮춰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타서 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비를 함께 맞던 그 당시의 우리는 제법 신나고,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그 당시의 추억을 상기하며 우산을 접은 채 왜 비를 맞았는지 짝꿍에게 물어보면 "그땐 미쳤었나 봐"라며 그냥 씨익 쪼깨곤 합니다. 




비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비가 주제인 음악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을 겁니다. 대학시절엔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이란 음악이 엄청난 유행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수요일에 비가 오는 날이면 좋아하던 여학생들에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주던 기억이 납니다. 짝사랑하던 남자들에게는 고백의 타이밍이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에 엄청난 히트를 쳤던 <가을비 우산속>이란 노래도 최헌의 굵직하고, 저은 톤의, 우수에 젖은 목소리가 노래와 꽤나 잘 어울렸습니다. 오랜만에 한번 들어보시죠!


https://youtu.be/hjNps02aJkY


청각을 깨우는 빗소리의 감성은 삶의 기억과 추억을 일깨우는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톡톡톡, 투둑, 토닥토닥, 후두두둑, 추적추적, 보슬보슬, 쏴아악, 주룩주룩' 등 빗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작은 빗방울은 '톡톡' 떨어지고, 작은 빗방울이 빨리 떨어지면 '토도독' 떨어집니다. 큰 빗방울은 '후드득', 소나기는 '쏴아악', 보슬비는 'OOOO' 내립니다. 맞춰 보세요. 정답은 '보슬보슬'입니다.ㅠㅠ 이 중에서 전 '토닥토닥'이란 소리를 좋아합니다. 마치 냥이가 발로 쿡쿡 몸 마사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빗소리, 파도 소리, 폭포소리처럼 일상생활에선 나오는 소음을 백색소음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들으면 하얀 기운이 느껴지는 소음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렸다고 하는데 왠지 근거 없어 보입니다. 백색소음은 일반 소음과 달리 귀에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작업에 방해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거슬리는 주변의 소음을 덮어주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백색소음이 있는 곳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더 잘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주 커피숍을 찾게 되는 걸까요?


실제로 여름철 해변가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듣거나, 빗소리나 장작불 타는 소리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백색소음이 심신 이완을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도시의 소음을 벗어나 빗소리나 장작불 소리로 지친 일상을 달래기 위해 우중 캠핑과 불멍 캠핑이 유행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중캠핑


텐트나 타프에 토닥토닥,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는 흡사 콩 볶는 소리처럼 입체 사운드를 만들어 냅니다. 무수한 빗줄기의 군무가 가로등과 텐트의 전구 불빛에서 공연을 하는 것처럼 역동적이고 때로는 부드럽게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때론 내리는 빗소리와 장작불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는 것은 어릴 때 느꼈던 우산 집에서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합니다. 특히 온천에 갔을 때 야간 우중 노천탕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비 오는 날 공원이나 수목원에 가면 평소와 달리 초록 잎이 더욱 선명해지면서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게 너무 좋습니다. 비는 어쩌면 산수화라는 그림에 선명함을 만들어내는 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비는 초목의 갈증을 해소하고, 먼지로 더러워진 자신을 샤워시키고, 바닥의 흙냄새를 더 북돋게 하는 것 같습니다. 도심에 내리는 비는 청량한 빗소리로 회색빛 도시의 빈 공간을 채우는 충진재가 되기도 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항상 파전과 막걸리가 생각납니다. 지글지글 파전 굽는 소리가 마치 비 오는 소리와 흡사해서 그럴 겁니다. 시원한 빗소리에 한 잔, 상쾌한 빗내음에 한 잔, 창밖의 빗방울을 보면서 한잔 마십니다. 이때는 술이 무지 답니다. 그런데 술이 달 때는 인생이 그만큼 쓰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는 인간의 삶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예기치 않게 내리는 비란 존재는 바쁜 삶에 지친 누군가에게는 멈춤과 휴식의 시간을 주기도 하고, 실연의 아픔을 겪는 누군가에게는 이별의 아픔을 잊게 하기도 하며, 잊힌 존재의 추억을 소환하는 매개체가 되고, 오랜 가뭄으로 쫙쫙 갈라진 메마른 땅과 작물들에게는 생명을 다시 싹 틔우는 단비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비는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에 숨통을 틔워주고, 분주한 우리들 삶에 느낌표와 쉼표를 찍어줍니다. 가을 가뭄이 심합니다. 텃밭에 심어 수확이 얼마 남지 않은 배추와 무가 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빨리 가을비가 내려 그간의 갈증과 메마름을 해갈시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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